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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 Jan 21. 2022

'화'내는 엄마의 '無화'로 보낸 11주

있는 그대로 아이를 바라봐 주기

어느덧 아이들에게 ''내지 않는 엄마로 산지  달이 지나간다. 방학이라는  고비가 있었지만 의외로  보내고 있다. 매번 '' 때마다 생각의 장치를 돌려본다. 나에게  방법은 가장 좋은 비법이다. 아직도 성격 자체는 감정적인 부분이 많기에 순간순간 화가 올라온다. 그때마다 내지르기보다는 말을 멈추고 마음속으로 한번  생각해본다. 아이의 입장, 지금 내가  감정이 격한 것인지, 훈육인 것인지 화풀이인 지를 생각한다.


며칠 전에 고성이 오간 일이 있었다. 작은 아이가 아빠랑 수학 문제집을 다 풀면 레고를 사준다고 했다며  방학 시작과 함께 한 3주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나는 검색이나 해볼까 하고 뒤져보니 한번 뜯어서 조립해본 중고와 새것은 10만 원이 넘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레고 중에서도 단종된 레고를 찾는 아이는 미리 새 물건도 찾아놓은 상태였다. 나는 아이에게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중고가 한번 조립한 거 말고는 차이 없어. 10만 원 넘게 차이나잖아. 너는 어차피 조립할 용도로 사니까 중고도 괜찮지?"

"아니! 새거 한 개씩 뜯으면서 해야 돼! 그때가 행복하다고! 아빠가 사준댔어!"


악을 쓰고 우는 아이는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이해가 안 갔다. 레고 수집가들은 뜯지 않고 재테크용으로 모으니까 희귀판은 새 거인 거라고 그렇게 말을 해도 듣지도 않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에게 거의 20만 원 가까이되는 레고를 사준다고 말한 애들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집에도 짝꿍이 맞지 않는 레고가 수백만 원어치가 넘는데, 구정도 다가오고 돈 쓸 곳도 많았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나름대로 딜을 했더니, 애는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소리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계속 우는 소리를 듣자니 나도 생각의 회로가 고장나버렸다.

"알겠어! 생각해본자나. 알겠으니까  울고 방에 들어가!"

아이는 방에서도 한참을 울었다. 처음에는 나도 씩씩거렸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의 입장이 이해가 가는 것이다. 그래, 손바닥 뒤집듯이 바꿀 거면 뭐하러 약속했어. 몇 주일 간 노력한 게 뭐가 되겠어. 당연히 속상하겠지. 덜컥 약속한 애들 아빠가 문제지 애들이 무슨 죄겠어.

갑자기 스멀스멀 미안함이 더욱 몰려왔다. 울고 소리 지를만했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조금 뒤 잠잠해진 방문 사이로 아이가 쏙 나왔다. 괜히 내 주변을 뱅글뱅글 돈다.


"엄마가 생각해보니까 잘못했어. 약속을 바꾸는 것은 잘못된 거야. 그 약속은 아빠랑 한 건데 엄마가 돈 아낀다고 중간에서 마음대로 바꾼 거야. 너도 그게 속상한 거지? 미안해"

"엄마, 내가 다음에는 중고 살게. 이번에는 약속한 거니까 지켜줘. 나도 미안해"

"아니야 너는 미안한 거 없어. 이번엔 엄마가 경솔했어"


나름 훈훈하게 마쳤다. 과거의 나라면 어땠을까? 사실 고작 3개월 지내놓고 예전에 내가 기억이 안 난다. 나는 기분파 엄마였다. 내 기분에 따라서 다정했다가 화를 냈다가 한 것 같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좋은 엄마로 살다가 욱 올라오는 화에 매번 졌다. 한주에도 한두 번 인적도 있고 한 달에 한두 번인 적도 있다. 한때는 호르몬 때문인가 싶어서 조금 진정되는데 도움이 된다는 마그네슘도 신나게 먹어봤다. 마찬가지였다. 나 스스로가 깨닫고 변하겠다고 다짐하지 않는 이상은 약도 소용없고 주변의 잔소리도 소용없던 것이다.

독박 육아에 지쳐서 이날까지 끌고 왔던 육아 습관은 한 번씩 고개를 내밀고 나를 붙잡았다. 그때는 나 자신 하나도 감당하기 힘들 때라 그렇다지, 지금은 대화가 통하고 충분히 말로 해결할 수 있는 때였다. 그런데도 내 멋대로 화가 나면 크게 소리 지르며 혼냈다. 지금처럼 조용히 말해도 다 이해하고 말을 듣는 아이들인데 말이다.


아이들과 겨울방학 여행으로 1박 2일 대천에 다녀왔다. 대천은 자주 안 오는 곳인데 7년 만에 방문하게 된 것이다. 어렸을 때 아이들이 생각나 자꾸만 웃음 짓게 되었다. 여기서 누가 뭐 사달라고 했다~, 여기서 외국인들 처음 만나고 무섭다고 울었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아이들은 못 믿겠다며 깔깔 웃었다. 겨울이라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바닷가 산책을 했다. 바닷가에서도 어렸을 적 아이들이 기억난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분명 지금의 나라면 그때도 힘들다고 징징댔을 텐데 자꾸만 어렸을 적 아이들이 눈물 나게 그립다. 남편과 아이들 둘이 앞서서 간다. 셋이 손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한다. 늘 있던 풍경인데 왜 그리도 고맙고 감사한지 사진을 수백 장 찍어두었다.

어느덧 아이들은 아빠 어깨만큼 자랐다. 생각도 마음도 자랐다. 이제는 아빠에게 자기들이 아는 걸 설명도 해주고 뭘 만드는 지도 이야기해준다. 바닷가에 도착해서는 모래놀이에 푹 빠졌다. 아직은 어린아이들이다. 바다를 보며 아이들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집에 오는 길에 아이들과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화를 안내서 좋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동안 예쁘게 말해주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했다. 지난 육아의 기간을 돌아보면 지금이 가장 평화롭다. 하루하루 아이들에게 치여사는 기분이었는데. 내 마음에 짐들을 덜었다. 그와 동시에 공부의 양과 해야 할 과제들에 대한 부담도 덜어놓고 있다. 아직 학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뒤쳐질까 봐 걱정돼서 감당하지 못한 양을 과제로 주고 혼낸 적도 있었다. 지금은 그냥 오로지 내 아이만 보인다. 못한 일은 내일 더 열심히 해보자 하고, 다 끝낸일은 칭찬해준다. 공부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냈고 그 해낸 일에 대해서 "나 열심히 살았어!"하고 하루를 보냈으면 그걸로 만족하는 것이다. 그러자 점점 아이들은 스스로 욕심내기 시작했다.

내가 주도로 아이들을 이끌었을 때와는 달랐다. 말이 자기 주도 학습이지 다 엄마 주도 학습이다 이런 말이 있는데, 우리 집도 비슷했을 것이다.

오로지 내 아이만 보기로 했다.

방학이 되고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계획표를 짜고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스스로 잘한 일과 못한 일에 체크하고 부족한 점은 내일 더 잘하자고 하며 계획표를 마무리한다. 아직 올해 3학년인 작은 아이는 꾸준히 적기 힘들어 하지만 큰 아이는 성실하게 잘하고 있다. 큰 아이가 고학년이라고 조급해했던 나 자신을 반성해본다. 이제는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공부를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니라 이렇게 스스로 자신의 하루를 계획하고 살아갈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란다면 어떤 일이든 잘할 것이다. 내 기준에서 아이를 재단하지 않기로 했다. 단순히 '화'내지 않는 엄마 되기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내 아이의 본체가 보인다. 아이의 장점이 보이고 그간 눈 감고 있었던 아이의 잠재력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 일찍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영원히 알아봐 주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해며 위로해본다. 앞으로도 흔들릴 날이 더 많겠지만 지금의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봐 주어야겠다. 나와 아이들은 함께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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