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나만을 위한 가죽공예 작업기
우연히 트래블러 다이어리를 빈티지하게 꾸미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파스락 소리를 내며 빈티지한 종이들을 오리고 붙이며 다이어리 꾸미기를 하는 영상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자꾸만 보게 되고 영상이 주는 매력에 흠뻑 빠졌다.
빈티지 트래블러 다이어리 영상을 본 후로 근 한 달째 열심히 빈티지 스티커며 꾸미는 도구들을 열심히 사들였다.
나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불타 올랐다. 그런데, 열심히 이것저것 사들이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트래블러 다이어리는 안 샀다.
“이까짓꺼 뭐 대충~ 굴러다니는 가죽으로 만들면 되지~”
하면서 다이어리 속지만 사서 쓰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아이들의 방학기간 동안 나도 강제 방학이 되며 손 놓고 있었던 가죽공예를 다시 시작했다. 막상 시작하려니 은근히 손이 가는 일이었다. 집에 다이어리 묶는 고무줄도 없고 멋지게 달아줄 펜던트도 필요했다. 또 오랜만에 가죽공예 물품을 사는 사이트에 들어가 이것저것 사들였다. 이쯤 되니, 그냥 사는 게 돈이 덜 들었겠다 싶었지만 창고에 널리고 널린 게 가죽인데~ 하면서 스스로를 위안했다. 재료 준비가 다 되고 눈대중으로 대충 도안도 짜냈다.
가장 중요한 가죽을 고르는 시간!
가장 싸고 가장 흠이 많은 것을 골라보기 시작했다. 가중 중에 제일 안쓸 걸로 해야지. 질 좋고 비싼 가죽들은 언제 사용하게 될지 모르니까. 제일 싸고 후진 걸 고르자는 결심에도 불구하고 막상 고르려니 마음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요동친다.
‘이건 다음에 작은 가방 해야지, 아 이 색깔 가죽은 별로 없으니까 아끼자. 아 이건 꽤 비싼 건데… 아껴놓자….’
결국 가죽 고르다가 포기했다. 뭘 해도 아깝고 뭘 봐도 마땅치가 않았다. 아무래도 창고에 가야겠다 싶어서 다음날로 미뤄뒀다. 작년부터 가죽 손상과 집의 평화를 위해 집안 가득 쌓아놓았던 가죽들을 집 근처 유료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다. 한 칸 빌리는데 한 달에 6만 원? 넘게 비용을 지불하고 있지만, 지난여름 피 같은 내 가죽들이 자기들끼리 붙어서 한 뭉텅이 버리고 나서는 미련 없이 돈을 지불하기로 큰 맘먹고 얻은 창고였다. 가죽공예를 쉬면서 창고도 오랜만에 들렸다. 큰 아이 첼로 교습소 근처라서 다음날 바로 가봤다.
창고 문을 여는 순간! 가장 비싼 베지터블 모차르트 가죽과 푸에블로 가죽에 눈에 확 들어왔다.
(*모차르트 가죽 : 최근에 생산된 기법의 가죽인데 유럽에선 이미 인기 있는 가죽이다. 바케타 가죽에 사람이 일일이 핸드페인팅을 하고 푸에블로 기법을 처리한 뒤 손으로 일일이 선을 그어서 완성한 가죽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가죽마다 같은 무늬가 있을 수 없고 이탈리아 테너리들의
장인정신으로 만들어낸다. 마지막을 유광으로 피니싱 해서 정말 고급스럽고 정갈한 느낌이다.)
(*푸에블로 가죽 : 미네르바 민자 가죽에 은구슬이나 쇠구슬을 굴려서 인위적으로 스크래치를 낸 가죽으로 투톤 느낌에 빈티지함이 느껴지는 멋스러운 가죽이다.
내가 느끼는 가장 좋은 점은 사용할수록 반들반들해지고 색이 짙어지며 엔틱하고 고급스러움이 묻어난다. )
살 때도 손을 떨며 샀는데, 그냥 나 혼자 막 쓰는 다이어리에 이걸 쓴다고???!!! 가격이 기억조차 안 난다. 다이어리 할 정도로 사용하려면 가죽 값만 족히 몇만 원은 넘을 것이다. 나도 나 자신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주섬주섬 모차르트와 푸에블로를 꺼내 들었다.
다른 가죽은 꺼내보지도 않고 바로 모차르트와 푸에블로를 들고 창고 문을 닫아버렸다.
왜 그랬을까?
오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가죽공예를 하며 선물도 많이 하고 여러 작품도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나를 위한 작업을 한 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은 실수가 나서 누구 줄 수도 없는 작품이 나올 때 내가 쓰거나, 플리마켓에서 안 팔리거나 너무 많이 만들어서 집에 남은 것들 위주로 내 것을 했다. 나를 위해서 오롯이 무엇인가 만든 적은 없었다.
이번 기회에 오로지 나만을 위한 다이어리를 만들기 위해서 새 마음 새 뜻으로 트래블러 다이어리 만들기를 시작했다. 하는 김에 영상도 찍어봤다. 엉성한 촬영과 예쁘지 않은 손이 마음에 걸렸지만, 조용히 혼자 오랜만에 작업과
새로운 도전에 가슴이 설레었다.
가죽을 고를 때는 살짝 충동적인 선택이긴 했지만, 한번 마음이 정해지고부터는 마음속에 요동이 사라졌다.
가장 고급스럽고 멋지게 오로지 나만을 위해 만들자.
그동안 수업하면서 강조해왔던 "나다움"이 드러난 다이어리를 만들어보자.
그간 나다움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나다운 가죽공예를 해본 적이 많지 않다. 늘 나 자신을 위해 만든 가죽공예품은 거의 없었고 있다고 해도 제일 싼 가죽이나 자투리 가죽으로 그냥 대충 만든 것이 다였다.
그러고 보면 나는 살면서 지금까지 늘 나 자신을 아껴주며 살지 않았다.
결혼 전에는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을 걱정하면서, 대학 때 늘어난 학자금 대출에 전전 긍긍해서 화장품 하나 좋은 옷 하나 맘 편히 산적이 없다. 나를 답답하게 생각한 엄마 손에 이끌려 반강제로 사는 것이 고작이었다.
결혼 후 신랑과 떠난 미국에서의 1년의 신혼생활도 겉으로 멋지게 포장되어 있지만 그 속은 가난으로 얼룩져있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는 더욱 빠듯해진 살림살이에 더욱 나 자신에게 박하게 대했다.
'나 혼자 먹는데 뭘, 애들 잘 때 빨리 대충 먹자.'
'나갈 일도 없는데 대충 제일 싼 거 입자'
나를 위한 선택이라며 가죽공예를 야심 차게 시작했다. 공구나 가죽 사는 값에 아끼지 않고 투자했다. 그런데, 인간의 습성이 바꾸기 어렵나 보다. 있는 재료로도 내껄 만들 때는 비싼 가죽이 썩어가도 쓰지 못한다니 말이다.
이번에는 크게 마음먹고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며 제일 고급 가죽으로 바느질도 정성 들여서 한 땀 한 땀 예쁘게 했다. 한과정 과정을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영상에 담고 정말 열심히 만들었다.
나를 대접해주는 느낌이 넘치게 들어서 스스로 자아도취에 빠진 것인지 사실, 찍어놓은 영상을 보니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민망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 서툴고 민망한 영상조차도 예쁘게 보였고 내가 기특하게 느껴졌다. 나에게 주는 선물을 이토록 정성 들여 만드는 '나' 자신이 눈물겹게 예뻐 보였다.
처음 가죽공예를 택할 때도 온전히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처음 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이제야 내가 스스로 선것 같고 기뻤다. 도구를 살 때 가죽을 살 때도 나를 위한 투자라며 신나게 샀다. 하지만 정작 사용할 땐 손을 떨었고 나에게는 더더욱 인색했다. 심지어 다룬 가죽 공예인들이 다 가지고 있는 가죽 칼 덮개도 대충 자투리로 막 만들어서 쓴 게 다였다. 내 걸 만들 때는 왜 그리도 아깝고 나중에 쓸 것만 같은지......., 앞으로는 내가 쓸 가죽공예용품은 제일 좋은 가죽으로 가장 정성 들여 만들 것이다.
나를 세워주고 나를 찾아준 가죽공예에서 만큼은 꼭 나를 대접해주고 아껴줄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 삶이 나 자신조차도 나를 대접해 주지 않았다면, 이제 하나씩 정말 작은 한 가지씩이라도 실천해보길 바라본다! 해보고 나니, 정말 행복해졌다. 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알고 나를 제일 아끼고 보살펴줄 사람은 '나'자신뿐임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