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 탈모증은 나의 20년 동반자? 친구? 그 이상?
아침에 브런치 조회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나의 원형 탈모 이야기가 기대 이상으로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나에게 원형 탈모증은 이제 20년 동안 함께 해온 삶의 일부분이라 이제 특별할 것도 없고 신기할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특별한 이야기가 된 것 같다.
기억을 곱씹어 나의 20여 년의 원형 탈모증의 세월을 돌아보니, 10대와 20대 때에 속상했던 경험들이 꽤 많았던 것이 떠올랐다. 한참 예민할 10대 때, 처음 원형 탈모증 발병 사실을 알고 난 후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병원에서 주사치료를 병행하며 학교에 다녔다. 다행히 어릴 적부터 다니던 피부과가 있어서 편하게 진료받을 수 있었지만 일주일에 몇 번씩 주사를 맞을 생각을 하면 절로 스트레스가 쌓였다. 병원에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동그랗게 벌거숭이가 된 두피를 보여드리며 주사를 맞는 것도 왠지 모르게 부끄럽고 창피했다. 덤으로 주사가 정말 정말 많이 아팠다. 동전만 한 환부에 수십 번 군데군데 나누어서 주사로 찔러서 치료해 주시는데, 손에 식은땀이 날 정도로 아팠다.
매일 아침 학교 갈 때면 보이지도 않는 뒤통수에 머리가 한 뭉텅이 빠진 부분을 확인하며 얼마나 자랐나 확인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습관적으로 늘 머리를 뒤적거리며 더 이상 생긴 곳이 없나 확인하기도 하였다. 이때 당시에 늘 손이 머리로 가있던 것이 기억난다. 나도 모르게 손이 비어있는 곳은 없나 더듬더듬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혹시나 옆이나 뒷자리 친구가 이런 내 모습을 보다가 원형탈모증 부위를 발견하면 깜짝 놀라서 말했다.
"너!!! 어릴 때 땜빵 생긴 적 있어??"
아, 그렇다. 땜빵이라 불린 적도 참 많았었다. 땜빵처럼 보일 것이다. 부끄러운 게 아닌 걸 알면서도 드러내고 싶지도 않았다. 구구절절이 설명하기도 하고 싫어서 그냥 어영부영 넘어가거나 그냥 스트레스 때문에 생겼다고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미용실에서도 늘 관심 대상이었다. 요즘은 조금 나아져서 미용사분들 중에도 아시는 분이 계시는데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대부분의 반응들이 비슷했다. 나이가 어린데 무슨 스트레스가 이렇게 많으냐? 땜빵 아니냐? 없어지는 거 맞냐? 등등 네네, 하고 웃으며 대답했지만 속에서는 천불이 났다. 적어 내려가다 보니 정말 자존감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무디고 외모에 관심 없다 해도 그때는 마음 여린 소녀였을 테니까 말이다.
조금 더 커서 대학 시절에도 바람 부는 날은 늘 초긴장 상태였고 누가 물어볼까 봐 조마조마했다. 가장 예쁠 때 하고 싶은 헤어 스타일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가리는데만 급급한 20대를 보내고, 어느덧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지내면서 원형 탈모증 따위, 웃으며 농담거리로 말할 수 있는 경지에 까지 이르며 원형탈모증과 함께 동거 동락했다.
그렇게 십몇년을 지내다가 딱 몇 년간 없어지고 나서는 정말 행복했다. 혹시 몰라서 스트레스 좀 받고 난 뒤에는 더듬더듬 머리를 매만져보곤 꽉 차 있는 머리카락을 느끼며 행복해했다. 행복은 잠깐, 또 뻥~ 맨질맨질한 원형탈모증이 생겨버렸을 때의 그 허무함....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한창 머리 잘 기르고 파마도 했다. 미용사 선생님의 지적도 받지 않고 듬성듬성 구멍이 난 머리를 길이 맞추려고 자를 필요도 없었다. 혹시나 원형탈모증 환부가 앞머리로 오면 어쩌나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또 나에게 원형 탈모증이 배신을 한 것이다. 어느 날부터 머리를 감을 때 하수구가 막히고 싸한 느낌이 들었는데........ 역시나 몇 년 만에 뻥 뚫려 있었다. 하아.........
스트레스 없어지면 낫는 줄 알았는데 스트레스 없이 생각해보니 살아본 적이 없네?
게다가 하루 이틀 스트레스 없다고 낫는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큰 스트레스로 생기지만 이후부터는 조금만 신경 쓰는 일이 생겨도 바로 나타난다. 심할 때는 두 군데 세 군데 나타나기도 한다. 부위가 여러 군데에 동시다발적으로 생길 때면 초긴장 상태가 된다. 다행히 이번에는 크게 뻥~ 뚫린 부위 하나다. 그래, 불행 중 다행이네?
이런 세월을 겪으며 지금까지 대략 2년?을 제외하고는 20년째 원형 탈모증과 동고동락 중이다. 예전에 아침방송에 원형 탈모증에 대해 나왔는데, 오래될수록 잘 낫지 않고 지속된다고 했다. 이제 내 친구라고 여기기로 했다. 나의 동반자 원형 탈모증이다. 때로는 도움도 된다. 나도 모르는 나의 스트레스를 알게 한다던가? 길이를 맞추려고 자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시크한 커트머리 여인이 되어 있다던가? 더 나아가 작가를 꿈꾸는 내게 브런치에 처음으로 조회수 5천을 돌파한다던가 등등?
모든 일은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그냥 동반자? 친구?로 여기고 살기로 했다. 나쁜 친구든 좋은 친구든 살면서 다 만나는 것처럼 나도 이 친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목숨을 건 병도 아니고 미적 감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만 (혹 어떤 사람은 자존감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나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