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부장님, 성 대리님 원정 좀 보내야겠어요.”
임정혁 부장과 제안서 작업을 하며 사무실로 출근한 지 일주일 째 되던 날 이주완 대표가 다가와 말했다.
“원정요?”
“부장님 하고만 너무 붙어 다니시는 것 같아요. 제가 질투가 나서 참을 수가 있어야죠. 이제 놓아드릴 때도 되지 않았나요?”
“대표님도 무슨 말씀을 참. 러시아 프로젝트 수주했나 보죠? 김한겸 부장이 한 건 했나 보네요.”
임정혁 부장이 말했다. 러시아 프로젝트라면 중견 전자업체 테크원사 고객 서비스 전략 프로젝트였고 김한겸 부장은 어센트 재원으로 소문난 인재였다. 재미교포 2세인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다 스탠퍼드 경영학 대학원을 나와 컨설팅을 시작한 지는 3년 차 정도 됐다. 실리콘밸리에 있을 때 이미 회사를 2개나 팔아치운 연쇄 창업가이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 말로는 마지막 회사 매각 후 휴식 삼아 스탠퍼드에 다녔고, 어센트 한국 사무소에는 한국말과 한국 문화를 익힐 겸 지원했다고 한다.
“그러니까요. 가뜩이나 인력도 없는데 김한겸 부장이 덜컥 맥킨지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 버렸지 뭡니까. 그런데 막상 김한겸 부장은 이전 프로젝트 마무리가 덜 돼서 손발이 다 묶여 있고요. 성세윤 대리가 원정을 좀 가줘야겠어요.”
이주완 대표는 얘기하며 나를 돌아봤고 임정혁 부장은 그렇게 하라는 듯 고개를 살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원정이에요. 내일 바로 러시아로 출국하셔야 합니다.”
“네, 러시아요?”
테크원은 TV, 홈시어터 등 영상 및 음향 가전제품을 만드는 제조업체다. 테크원은 세계 60여 개국에 제품을 판매하는데, 최근엔 신흥 시장에 집중해 성장을 도모했다. 특히 러시아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판매량에 비해 서비스 센터 등 고객 서비스 관련 투자가 미흡해 불만이 증가했다.
“러시아에선 서비스가 쉬운 일이 아니에요. 러시아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 집에 오는 걸 싫어해서 대부분 서비스 센터에 직접 방문해 수리를 맡기는데, 한국처럼 센터 수가 많은 게 아니거든요.”
공항에 마중 나온 테크원 러시아 주재원 고동혁 과장이 말했다. 고동혁 과장은 숙소까지 이동하는 동안 현지 상황에 대해 설명해 줬다. 첫 출장이라 잔뜩 긴장한 나는 이국적 풍경에 눈 돌릴 틈도 없이 고 과장의 말에 귀 기울였다.
“여긴 직영 센터가 많지 않습니다. 가전업체들은 보통 러시아인이 운영하는 수리 전문점을 통해서 서비스를 제공하죠. 수리 전문점은 여러 제조사 제품을 수리하는 가전수리 전문업체인데 옛날 전파상 생각하시면 됩니다.”
“프로젝트는 직영 센터만 보는 거죠?”
“맞아요. 직영 서비스 센터가 품질 관리에 유리하거든요. 수리기사도 신경 써서 뽑고 성과관리도 철저히 해서 직영 센터에서 품질에 불만을 품는 고객은 거의 없어요. 그래서 직영 센터를 늘리려는 거기도 하고요.
그런데 수리 전문점과 관계 때문에 무작정 확장할 순 없어요. 경쟁력을 갖추려면 모스크바 번화가에 플래그십 센터 정도는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러면 수리 전문업체하고 마찰이 생길 수 있거든요. 업체들끼리 노조도 결성돼있고 해서 힘이 대단합니다. 잘못 건드리면 외국 업체들은 바로 보이콧 해버리고 그런다니까요. 그렇다고 수리업체 눈치만 볼 수는 없으니 난감합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해야 하는 건 수리 전문업체와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직영 서비스 센터 확장 계획을 세우는 거네요.”
“맞아요. 그게 핵심입니다. 본사에서 예산은 재가됐으니까 계획만 세워주시면 돼요. 번화가에 플래그십 센터를 하나 짓 건 외곽에 조그만 센터를 몇 개 짓 건 상관없으니까 그게 최적의 계획이란 것만 설득해 주시면 됩니다. 마찰에 대한 리스크도 없어야 하고요.”
프로젝트는 다음 날부터 시작됐다. 프로젝트 멤버는 총 4명이었지만 러시아에서 직접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건 나와 김한겸 부장뿐이었다. 게다가 김한겸 부장은 일주일 후에나 도착할 예정이라 일주일 간은 나 혼자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했다.
비록 일주일이지만 혼자 프로젝트를 끌고 나간다 생각하니 묘한 흥분이 느껴졌다. 난 바로 고 과장을 비롯한 모스크바 현지인들을 인터뷰하고 가설 작업에 착수했다. 몇 개 프로젝트를 거치며 가설 수립에 대해선 엄혹히 훈련받은 터라 혼자서도 예사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테크원 요구조건을 보면 답의 구조가 투영됐다. 센터 위치와 형태 그리고 운영모델까지 알려줘야 했다. 우리가 제시한 계획이 최적이란 것도 증명해야 했다. 센터 위치는 말 그대로 위치고 형태는 프리미엄 고객 대상의 고급 서비스 센터, 처리 건수를 최적화한 공장형 서비스 센터 등 어떤 형태의 서비스 센터가 적합한 것인가에 대한 답을 뜻했다. 최적이란 건 비용효율성을 의미했고 투자 대비 고객 만족도 향상 효과가 가장 크다는 걸 검증해야 했다.
이런 기본 정보를 바탕으로 몇 개 가설을 수립할 수 있었다.
서비스 수요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공장형 서비스 센터를 세우는 것이 가장 비용효율성이 높다.
부유층이 거주하는 지역에 프리미엄 서비스 센터를 세우는 것이 가장 비용효율성이 높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공장형 서비스 센터를 세우는 것이 가장 비용효율성이 높다.
세 가설 모두 가능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첫 번째 가설이 답이 될 확률이 높았다. 테크원이 서비스 센터를 확장하려는 이유는 최근 급격히 늘어난 수요 때문이었다. 따라서 프리미엄 서비스 센터보다는 수요에 초점을 맞춘 공장형 서비스 센터가 필요했다.
테크원 제품이 영상, 음향가전제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휴대폰이나 노트북처럼 평소 들고 다니다 수리를 맡기긴 어려웠다. 크고 무거운 제품을 직접 들어 나르려면 센터가 집에서 가까울수록 좋았다. 따라서 유동 인구보다는 서비스 수요가 밀집된 주거지구를 기준으로 위치를 선정해야 했다.
인터뷰와 초기 분석 결과, 테크원 관계자들도 첫 번째 가설이 답일 확률이 높다는 점에 동의했다. 나는 우선 첫 번째 가설을 기반으로 가장 효율적인 서비스 센터 위치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분석은 분석모델 설계, 데이터 수집, 분석 이렇게 3단계로 진행했다. 분석 모델을 설계하기 위해선 분석에 핵심이 되는 변수를 정의해야 했다. 변수는 크게 독립변수와 종속변수로 나눌 수 있다. 독립변수는 다른 변수의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에 해당하는 변수고, 종속변수는 독립변수에 영향을 받아 변하는 결과에 해당하는 변수다. 가설을 보면 독립변수와 종속변수를 정의할 수 있었다.
서비스 수요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공장형 서비스 센터를 세우는 것이 가장 비용효율성이 높다.
내가 궁극적으로 증명하고 싶은 건 특정 ‘지역’에 특정 ‘형태’의 서비스 센터를 설립했을 때 ‘비용효율성이 가장 높다’라는 가설이었다.
‘지역’과 ‘형태’는 설립할 서비스 센터의 속성으로 볼 수 있었다. 이미 ‘형태’는 공장형 서비스 센터가 최적이라고 판단했으므로 실질적으로 분석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지역’이었다. ‘지역’은 우선 모스크바라는 범위는 정해졌으니 한국 식으로 생각하면 모스크바 내 ‘구’가 될 수도 있고 ‘동’이 될 수도 있었다. 지역에 따라 서비스 수요가 바뀌고 이에 따라 비용효율성도 변하게 됨으로 지역은 독립변수고 비용효율성은 종속변수였다. 서비스 수요도 중요한 변수이긴 했지만 지역이란 원인과 비용효율성이란 결과를 연결시켜 주는 매개변수일뿐이었다.
비용효율성은 비용과 효익으로 나누어 분석할 수 있었다. 비용은 서비스 센터를 운영하며 발생하는 비용 일체고, 효익은 유상 서비스로 얻는 매출과 얼마만큼 고객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느냐 인 만족도 향상 치를 포함했다.
매출을 계산하기 위해선 유상 서비스 수량과 유상 서비스 당 평균 매출을 알아야 했다. 만족도는 전체 서비스 수량과 서비스 당 평균 만족도 향상 치를 통해 구할 수 있었다. 비용은 임대료와 인건비 등의 고정비가 있을 것이고 유상 서비스를 위해 필요한 부품비 등의 변동비도 있었다.
나는 분석을 위해 필요한 인풋과 아웃풋을 정의하고 트리 형태로 구조화했다. 이슈트리가 명제와 가설에 기반한 정성적 프레임워크였다면 이건 정량적 가치 분석을 위한 가치트리(value tree)였다. 가치트리를 따라 한 항목씩 데이터를 대입하고 계산을 진행하면 궁극적으로 비용효율성을 분석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됐겠지? 일주일 밤을 꼬박 새우며 애면글면 작업한 덕에 김한겸 부장 도착 전에 작업은 갈무리했다. 프레임워크는 완성됐으니 김한겸 부장이 도착하면 리뷰하고 분석만 진행하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