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서비스 네트워크 전략 (2)

by 성세윤

다음 날 아침, 김한겸 부장은 공항에서 바로 사무실로 나왔다. 모발이 완전히 오그라진 짧은 곱슬머리를 가르마 타 넘긴 그는 훤히 내놓은 이마만큼이나 호방한 목소리로 나를 맞았다. 곤색 양복에 조끼까지 맞춰 입은 복고풍 의상이 곱슬머리와 묘하게 어울렸다. 양복저고리를 젖히면 회중시계라도 튀어나올 판이었다. 밤새 비행기를 탔을 텐데 얼굴엔 생기가 돌았다.


일주일 만에 선임을 만나게 된 나는 살갑게 그를 마주했지만 그는 퉁명스레 인사만 건네고는 테크윈 내부 문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내가 책상에 올려놨던 가치트리 장표는 쓰레질을 당한 듯 구석으로 밀려났다. 데이터 분석의 대가로 알려진 김한겸 부장이 프로젝트를 리드한다고 잔뜩 기대했는데 그는 빗장을 걸어 잠근 솟을대문처럼 좀처럼 틈을 내주지 않았다.


“부장님, 이대로 모델 만들고 분석하면 될까요?”


직진 밖에 답이 없었다. 나는 테크윈 문서를 내려놓고 숨을 돌리려는 김한겸 부장에게 가치트리 장표를 들이밀었다. 김 부장은 희뜩 나를 한번 보고는 무표정히 장표를 받아 들었다. 그는 눈동자를 희번덕대며 별다른 피드백 없이 볼펜만 딸깍거렸다. 나는 한참 동안 벌을 서듯 기다린 후에야 그의 입에서 첫마디를 들을 수 있었다.


“최선을 다하셨나요?”


“네?”


“최선을 다하셨냐고요. 저에게 결과물을 가지고 올 땐 세윤 씨가 할 수 있는 모든 생각을 다 해보고 가져오셔야 해요. 그래야 서로 시간 낭비를 안 하죠.”


야멸차고 태깔스런 말씨에 불끈 핏대가 섰다.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렇군요. 이게 세윤 씨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말이죠.”


“…”


“그런데 비용하고 만족도 위치를 바꾸는 게 낫지 않을까요?”


“비용효율성 관점에서 보면 매출과 만족도를 효익으로 볼 수 있어서 묶어 놓은 겁니다.”


“아. 그래서 굳이 데이터 성격이 다른 매출과 만족도를 묶어 놓으신 거군요. 매출과 비용이 아니라요.”


“…”


그게 무슨 상관이지? 반박해 볼까 했지만 귀에 거슬리도록 볼펜을 딸깍 대는 김 부장의 모습을 보고 이만 윽물었다.


“만족도는 만족도 향상치로 바꾸면 어떨까요? 만족도를 절대 수치로만 보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은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는데 데이터가 없습니다. 서비스 후에 해피콜한 데이터는 비교분석을 할 수 없어서요. 절대 수치를 분석해 보는 것도 도움은 될 것 같습니다.”


“가용한 데이터에 맞춰서 분석을 설계하신 거네요. 분석을 먼저 설계하고 데이터를 찾는 것도 방법인데 말이죠.”


“…”


“이건 세윤 씨가 하는 분석이니까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다면 일단 이렇게 진행해 보시죠.”


뭐지, 이 인간? 이렇게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비비 꼬는 그의 말투에 배알이 뒤틀렸다. 임정혁 부장과 일할 때처럼 무언가 유레카를 외칠 만한 통찰을 기대했는데 되돌아온 건 시망스런 난도질뿐이었다.


무언가 내가 하려던 분석에 대해 부언하고 싶었지만 김 부장은 무람없이 등을 외틀고 테크원 문서를 집어든 후였다. 나는 몇 초 정도 멍하니 서 있다 발걸음을 떼었다. 김 부장이 돌려 건넨 가치트리 장표는 나도 모르게 꽈악 틀어쥐었다.


김한겸 부장이 얄망궂다 설핏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자기 확신이 확고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의 에고이즘이 단순히 실리콘밸리나 스탠퍼드란 타이틀이 만들어낸 허울에 불과한 건지 철저히 파헤쳐 보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나를 무지렁이마냥 하대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나는 가치트리를 순서대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항목은 매출이었다. 서비스 센터의 본 기능은 만족도 향상이지 매출은 아니었다. 하지만 운영을 위한 최소 매출 확보는 센터 유지에 필수였다. 매출은 유료 서비스 수량과 유료서비스 당 매출을 곱해 구할 수 있었다.


테크원에 의하면 전체 서비스 중 유료 서비스 비율과 유료 서비스 당 매출은 지역별로 큰 편차가 없었다. 따라서 매출은 전체 유료 서비스 수량에 정비례했다. 작년도 전체 매출을 전체 유료 서비스 수량으로 나누면 유료 서비스 당 매출을 구할 수 있었고, 여기에 서비스 센터 구축으로 인해 추가적으로 제공 가능한 서비스 수량을 곱하면 센터 구축에 따른 매출 증가분을 계산할 수 있었다.


다음 항목은 만족도였다. 만족도를 계산할 때는 무료 서비스를 포함한 전체 서비스 수량이 필요했다. 이는 서비스 데이터를 관리하는 워런티 시스템에서 쉽게 뽑을 수 있었다. 서비스 당 만족도는 해피콜 데이터를 활용했다. 테크원은 서비스 제공 후 해피콜을 걸어 10점 만점 기준으로 서비스 만족도를 조사했다. 매월 1000건 정도 샘플링해서 만족도를 설문하고 이를 성과지표로 관리했기 때문에 데이터는 충분했다.


비용은 매월 필수적으로 발생하는 고정비와 서비스 수량에 따라 증가하는 변동비로 나누어 분석했다. 고정비는 임대료와 서비스 센터 직원 인건비를 포함한 센터 운영비였다. 서비스 센터를 증축하지 않는 한 운영비 변동폭은 크지 않았다.


반면 변동비는 대부분 수리비로 수리기사 인건비와 수리에 필요한 부품비가 포함됐다. 서비스 수량이 증가하면 수리비 또한 비례적으로 증가했다. 비용 관련 데이터는 자원관리 시스템에서 쉽게 취합할 수 있었다. 추가로 센터 건립 시 필요한 초기 투자가 있었지만 이 부분은 별도로 계산하기로 했다.



“분석은 잘 되고 있나요?”


웬일인지 김 부장이 먼저 날 찾아와 물었다. 마침 분석은 모두 끝난 상태였다.


“네, 마무리는 됐고 숫자 확인하는 중입니다.”


“세윤 씨가 설계한 대로 분석했으니 결과는 제대로 나왔겠죠?”


김 부장의 화법은 놀랍게도 일관적이었다. 내가 설계한 대로 분석한 것도 맞고, 설계한 대로 결과가 나온 것도 맞긴 했는데 그의 말씨는 손톱 밑 가시처럼 신경을 건드렸다.


“결과는 여기 보시면 됩니다. 평균 서비스 센터 매출은 4백만 루블, 만족도는 8.1 그리고 비용은 3백50만 루블 정도 됩니다.”


“그래서요?”


“서비스 당 매출이 천 루블정도 되니까 서비스 수요가 월 4 천대 정도 나오는 곳을 찾으면 비용은 감당 가능합니다. 수리 품질이 다른 센터와 동일하다면 만족도도 8 정도로 유지할 수 있고요. 관건은 서비스 수요가 월 4천대 이상 나오는 곳을 찾아보는 게 될 것 같습니다.”


“현황파악 정도는 된 건 같군요. 그런데 그게 최선인가요?”


“…”


분석은 다 끝났는데 뭘 더 해야 되는 거지? 머리가 멍해졌다. 김 부장은 볼펜을 딸깍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서비스 수요가 월 4천대 이상 나오는 곳이 어디죠? 그걸 분석해서 찾는 게 세윤 씨 역할 아니었나요?”


“네. 그러니까, 그건 이제…”


“그럼 세윤 씬 지금까지 데이터 취합을 한 거네요. 분석이 아니라요. 서비스 센터 운영 데이터를 취합해 평균 매출, 만족도, 비용 정도 찾은 걸 분석이라고 할 순 없잖아요. 그건 경영계획 문서만 봐도 나오는 통계인데요.”


김 부장은 손에 들고 있던 문서철을 뒤적거리다 프린트 한 건을 건넸다. 작년 센터별 매출과 비용이 모두 정리되어 있는 문서였다. 이미 분석된 데이터가 있으면서 나보고 뭘 분석하라고 했던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난 일주일 간 경영분석 시스템에서 쿼리를 만들어 뽑은 수만 행의 데이터와 씨름하던 나를 그는 보고만 있었다.


“데이터 취합이 분석의 전부라면 굳이 컨설턴트가 필요할까요?”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본인 직접 하던가. 화가 목구멍을 타고 정수리까지 뻗쳤다. 반격의 칼자루에 손을 대려는 찰나 그가 다시 쏘아붙였다.


“여기 서비스 별 단가까지 포함해서 유료 서비스 매출을 취합하셨잖아요. 유료 서비스 매출은 왜 분석하는 거죠?”


“수익 계산을 위해서죠. 유료 서비스가 서비스 센터 입장에서는 유일하게 낼 수 있는 금전적 수익이니까…”


“그렇죠. 서비스 센터는 코스트 센터로 분류해 비수익 부분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서비스 센터도 충분히 수익원이 될 수 있어요. 괜찮은 자동차 서비스 센터 같으면 20% 이상 마진을 뽑는 훌륭한 사업체가 될 수도 있죠. 그런데 수익을 계산하려면 매출 외에 뭐가 필요하죠?”


“비용이죠. 그래야 수익을 계산할 수 있으니까요.”


“맞아요. 마침 여기 비용도 계산해 놓으셨네요. 매출에서 비용을 빼면 수익을 분석할 수 있겠어요. 그럼 우리가 수익 분석을 해서 얻고자 하는 메시지는 뭘까요?”


“그거야 서비스 센터를 운영할 때 수익이 나는지 안 나는지 보려는 거죠.”


“그럼 그걸 분석해야지 왜 데이터만 취합해 놓으신 거죠?”


“…”


“저흰 작년 서비스 센터 평균 운영 수익 보고 싶은 게 아니에요. 앞으로 짓게 될 서비스 센터가 어떤 조건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지를 분석하고 싶은 거예요. 테크원이 제품은 다양해도 서비스는 비교적 단순해서 분석이 어렵진 않아요. 여기 비용에 고정비와 변동비를 분리시켜 놨던데 그건 왜 그랬죠?”


“서비스 센터별 비용을 보니 규모의 경제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서요. 기본적으로 월 임대료와 인건비가 고정적으로 발생했고, 서비스를 처리할 때마다 매출이 발생하는 구조여서 처리하는 서비스 수량이 많을수록 수익이 높아졌습니다.”


“맞아요. 세윤 씬 비즈니스 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아예 없는 건 아니군요. 정책적으로 서비스 가격을 부품비나 수리기사 인건비보다 높게 책정을 하니까 서비스는 처리를 할수록 수익이 높아지죠. 그렇게만 생각하면 서비스 수요가 가장 많은 곳에 서비스 센터를 세우는 게 맞을 거예요. 그런가요?”


“네.”


“그런데 세윤 씨는 테크원이 수익을 내려는 목적으로 서비스 센터를 세운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그렇죠. 테크원은 분명 수익이 아니라 만족도를 높이는 게 최우선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최적의 조건이란 단서를 붙였으니 수익이 마이너스라면 곤란하겠죠?”


“네.”


“종합해 보면 우리가 분석해야 할 건 수익이 0 이상이 될 수 있는 최소 유료 서비스 수량을 찾는 거예요. 그게 서비스 센터 건립을 위한 최소 조건이 되는 거죠. 세윤 씨가 ‘취합’한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이런 그림이 그려지겠죠.”


김 부장은 딸깍거리던 볼펜을 들고 A4지에 그림을 하나 그렸다.

그림23.png

“센터별 고정비가 있고, 서비스 별 평균 수익이 있으면, 처리한 서비스 개수에 따라 매출과 비용이 각기 다른 비율로 증가하면서 중간에 교차점이 나오게 돼요. 여기가 바로 서비스 센터 건립을 위해 필요한 최소 서비스 수요 X가 되는 거죠.


아까 얘기했듯 서비스 센터는 수익창출이 최우선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X만 넘기면 센터 건립에 따른 비용효율성은 성립됩니다. 그리고 남은 조건은 만족도를 얼마나 향상할 수 있느냐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1차적으로는 매출과 비용이 교차하는 지점 X를 분석해야 합니다. 만족도는 그러고 나서 따로 분석하면 되고요.”


‘비용 하고 만족도 위치를 바꾸는 게 낫지 않을까요?’ 김 부장의 말이 뇌리에서 메아리쳤다. 김 부장은 보란 듯 내가 그려놓은 가치트리 장표를 꺼내 비용에 동그라미를 치고 매출 밑으로 화살표를 그려 넣었다.

그림24.png

매출과 비용은 정량적 데이터로 서비스 센터 운영수익을 계산하기 위해 함께 분석해야 명확한 메시지가 나왔다. 만족도 역시 정량적 데이터이긴 했지만 매출과 비용처럼 금전적 가치를 다루는 데이터가 아니라 성격이 달랐다. 김 부장이 처음 지적했던 그대로였다.


“만족도’ 향상치’는 혼자 ‘분석’하실 수 있겠죠?”


“네…”


난 어깨를 웅숭그리며 기어드는 목소리로 답했다. 완패였다. 사무실을 빠져나와 분을 삭였다. 논리로는 누구에게도 안 질 거라 자신했는데 분석 하나로 이리 무능하게 무너질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동네에서 힘 좀 쓴다는 한량이 종합격투기 선수에게 알짱거리다 일격에 혼절당한 꼴이었다. 그래도 전장에 쓰러진 패잔병처럼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우선 패인을 분석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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