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서비스 네트워크 전략 (3)

by 성세윤

김 부장이 얘기했던 ‘취합’과 ‘분석’의 차이는 분석 결과가 목적 지향적이냐, 즉 뚜렷한 메시지가 있느냐였다. 매출과 비용을 취합해 평균 수익을 계산하는 게 아니라 수익구조를 분석하고 수익을 낼 수 있는 조건을 파악해야 했다.


만족도도 현재 운영 중인 서비스 센터에 대한 통계를 ‘취합’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신규 서비스 센터를 통해 만족도를 개선할 수 있는지 그 조건을 ‘분석’ 해야 했다. 이를 위해선 다양한 조건에 따라 만족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야 했다. 하지만 만족도를 비교할 수 있는 데이터는 없었다. 비교가 불가능한데 어떻게 개선 조건을 분석할 수 있을까?


깍지 낀 손바닥을 뒤집어 기지개를 쭉 한번 켜고 커피도 홀짝 한 모금 들이켰다. 가설 작업부터 출발해 보기로 했다. 막연히 만족도를 분석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만족도가 향상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검증 가능한 가설이 필요했다.


우선 내 경험을 돌이켜봤다. 쓰던 제품이 고장 나면 고장 났다는 사실 자체로 불만이 생긴다. 제품을 들고 서비스 센터까지 가야 하고 아마 서비스 센터에 가서도 꽤나 기다려야 할 것이다. 짜증은 쌓여간다. 내 순서가 돼도 한참 동안 제품을 고치지 못한다거나 고쳐온 제품이 다시 고장 난 다고 상상해 보자. 그때가 폭발 시점이었다.


서비스 만족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건 서비스 품질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비스 품질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건 서비스 기사의 역량이었다. 숙련도가 높고 경험이 많을수록 인건비는 높지만 서비스 품질 또한 높아질 거라 추측할 수 있었다.


테크원 서비스 센터 기사들을 보니 인건비 편차가 2만 루블부터 10만 루블까지 다양했다. 난 김 부장이 분석에 적용했던 논리를 그대로 재사용해 가설을 세워봤다. 서비스 기사 인건비와 서비스 품질에도 특정한 상관관계가 있어 어느 정도까지는 인건비가 올라갈수록 품질도 높아지지만 특정 수치를 넘기면 역량이 평준화되어 품질에 대한 기여도도 낮아질 거란 가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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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건은 인건비와 서비스 품질 사이 변곡점에 위치한 서비스 기사를 얼마나 많이 확보할 수 있느냐였다. 역량 있는 서비스 기사들을 충분히 확보한다면 서비스 만족도는 그만큼 향상될 것이다. 다만 그만큼 서비스 기사 인건비도 증가할 텐데 이는 앞서 분석한 최소 서비스 수량을 조정해 상쇄해야 했다.


분석 방향은 정해졌다. 우선 인건비와 서비스 품질 사이의 변곡점을 분석해 적정 임금 수준을 분석하고, 그다음 적정 임금을 상쇄할 수 있는 최소 서비스 수요를 분석해야 했다. 그렇게 나온 값을 종합하면 서비스 센터의 수익성 하면서 만족도를 얼마나 향상할 수 있는지 분석할 수 있었다.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는 모두 있었다. 해피콜 데이터는 서비스를 처리한 기사에 대한 정보를 포함했고, 서비스 처리 기사에 대한 임금 정보는 경영정보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었다. 두 데이터를 연결하면 서비스 별 만족도와 서비스 기사의 임금정보 테이블이 나왔다.


일순 머리가 맑아지고 숨이 차올랐다. 가벼운 흥분과 함께 피어오르는 기분 좋은 숨이었다. 이번에야 말로 김 부장에게 본때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분석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두어 시간 만에 데이터 취합과 분석이 끝났다. 만족도를 Y축에 정리하고 임금은 X축에 정리했다. 하지만 두 데이터 포인트로 산점도를 그려본 순간 내 가설은 우지끈 허물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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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결과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만족도와 임금 사이에선 그 어떤 상관관계도 찾을 수 없었다. 원본 데이터를 수없이 확인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맙소사, 그리 긴 시간을 투자해 분석했는데. 서비스 품질이 아니면 도대체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뭐란 말이지?



“가설이 틀린 거예요.”


앙칼진 목소리가 꼭뒤에 내리 꽂혔고 마우스를 움직이던 내 손은 움찔 멈춰졌다. 김 부장이었다. 한 걸음 다가선 김 부장은 내 손에서 마우스를 채가고는 데이터를 살폈다.


“분석은 가설에 맞춰 제대로 하신 것 같아요. 한데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면 가설이 틀렸다고 밖에 할 수 없겠죠.”


나는 입을 앙다물었다. 머릿속으로는 가설 어느가 잘못된 건지 생각의 쳇바퀴를 돌렸다.


“최선을 다하신 게 아니에요. 프로젝트 초반에 고동혁 과장 인터뷰 하셨죠? 회의록에 그렇게 쓰여 있더군요. 직영 서비스 센터는 수리 전문점과 차별화하기 위해서 고급 수리 기사들을 선별해서 고용한다고요. 수리역량은 이미 상향 평준화되어 있는 겁니다. 의미 있는 변수가 아닌 셈이죠. 그 정도는 귀담아듣고 가설에 반영했었어야죠.”


아차, 고동혁 과장은 직영 센터 서비스 품질은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고 누차 말했었다.


“지금 세윤 씨가 분석하려고 하는 건 서비스 만족도죠? 만족도 분석에서 저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데이터는 해피콜 데이터예요. 그게 직접적으로 고객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한 유일한 데이터니까요. 그런데 세윤 씨는 제일 중요한 데이터를 제대로 보지도 않았어요.”


“해피콜 데이터는 봤습니다. 이 분석도 그 데이터에서…”


“숫자만 데이터인가요? 만족도 수치를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인터뷰 내용도 같이 보셔야죠. 그거 몇 개만 읽어 봐도 수리 품질에 대한 불만이 없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요.”


김 부장은 신입사원 압박 인터뷰를 하듯 채근했다. 나는 헛숨을 내쉬며 끓어오르는 울화를 삭혔다.


해피콜 데이터에 인터뷰 내용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해피콜은 10점 만점 스케일로 만족도를 묻고 그 이유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내용은 자동 텍스트 변환 프로그램으로 기록되고 구글 번역기로 번역해 러시아어와 영어로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됐다.


결과적으로 남는 건 부정확하고 엉성한 텍스트에 불과했다. 분석이 불가능한 비정형 데이터였다. 김 부장이야 말로 데이터 한번 제대로 안 봤을 것이다. 나는 보란 듯이 해피콜 데이터 파일을 열었다.


“저도 분석을 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보세요. 텍스트 변환 프로그램에 자동번역기까지 사용한 거라 어떤 내용인지 판독이 안됩니다.”


“아. 그래서 세윤 씨는 이미 정리되고 정형화된 만족도 데이터만 분석에 쓴 거로군요.”


“…”


“있는 숫자를 분석하는 거라면 누가 못하겠습니까? 있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뿐만 아니라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것도 분석입니다.”


데이터를 만들어 내라니. 조작이라도 하란 얘긴가?


“다섯 번째 인터뷰 내용을 볼까요. 문장을 다 볼 필요도 없어요. 키워드만 뽑아내도 되죠. 친절도, 청결도, 대기경험 정도가 키워드가 되겠네요. 이 고객의 만족도는 뭐죠?”


“9점입니다.”


“그럼 이 고객은 매장 직원의 친절도와 매장의 청결도, 그리고 수리하면서 대기한 경험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 걸 까요?”


“대체적으로 만족하고 있는 거겠죠.”


“만족한 이유는요?”


“방금 친절도, 청결도, 대기경험이라고...”


“맞아요. 9점 수준으로 만족한다고 얘기한 고객이니 인터뷰에는 만족한 이유를 언급했겠죠. 이걸 정형화된 데이터로 변환하면 친절도 9점, 매장 청결도 9점, 대기경험 9점. 이렇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까요? 물론 더 깊이 들어가면 친절도, 청결도와 대기경험이 9점이란 점수에 미치는 영향도는 각각 다르겠지만 그 차이는 무시하기로 하고요.”


“네.”


“다음 데이터도 보죠. 점수는 6점이고 예약대기 시간, 서비스 센터 거리를 언급했네요. 마찬가지로 이걸 데이터화하면 예약대기 시간 6점, 서비스 센터 거리 6점이 되겠네요.”


“하지만 예약대기 시간과 서비스 센터 거리가 모두 6점이라고 단정 지으면 안 되지 않을까요? 예약대기 시간은 4점이지만 서비스 센터 거리는 8점으로 만족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틀린 생각이긴 하지만 생각은 하고 있군요.”


다시 발끈했다. 김 부장은 도무지 그냥 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부글거리는 속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내 눈빛을 보면서도 눈 한번 깜빡 않고 말을 이었다.


“해피콜 상황을 생각해 보세요. 첫 질문은 서비스에 대한 전체적인 만족도입니다. 전체 만족도에 대한 수치를 대고 나면 자연스레 자신이 왜 그 수치를 댔는지 설명하게 돼요. 전체적으로 만족했다면 만족한 이유를 대고, 불만족이라면 불만족한 이유를 댈 겁니다. 만약 전체적으로 만족했지만 특별히 하나가 불만족이었다면 그건 따로 언급을 하겠죠.


그러니까 6점이라고 전체 서비스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면 그 이유로 제시한 예약대기 시간과 서비스 센터 거리 모두 부정적이었다고 단정하는 건 어느 정도 합리적인 판단이 되는 겁니다. 개별 요소 간 차이는 있어도 모두 부정적이었다고 판단하는 게 근거 없는 ‘단정’은 아닌 거죠. 설명이 됐나요?”


“…”


“그럼 계속해볼까요?”


나는 맥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다음에 어떤 작업이 이어질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같은 방식으로 인터뷰 내용에서 키워드를 뽑아내고 이를 만족도 수치와 연결해 데이터 세트를 만들면 만족도에 영향을 주는 핵심 요인들과 어떤 요인에 따라 만족도 수치가 변화하는지 분석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서비스 품질이 핵심 요인으로 언급된 만족도 수치는 일괄적으로 높을 거라 예상할 수 있었다. 고 과장 말대로 서비스가 상향 평준화 되어 있다면 품질에 대한 만족도는 높을 거니 말이다.


관건은 만족도 수치가 높은 인터뷰와 낮은 인터뷰에 모두 언급되어 있는 변수를 찾는 것이었다. 만약 친절도가 그런 변수라면, 직원 별로 친절도가 상이하며 이로 인해 만족도가 크게 달라진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만족도 향상을 위해선 친절도 교육을 시키고 채용 조건에 친절도를 중요 항목으로 넣어야 했다.


“데이터는 기록입니다. 하지만 모든 기록이 의미 있는 건 아니겠죠. 기록을 의미 있게 만들려면 패턴을 파악하고 데이터를 정형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해요.


생각해 보세요. 저희가 서비스 센터에 앉아 진행되는 일을 계속 모니터링을 한다면 센터 내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기록할 수 있겠죠. 하지만 기록만 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답이 나오는 건 아니에요. 모니터링한 내용 속에 숨겨진 패턴을 추적하고 분석해야 가능하죠.


센터가 더러워서 눈살을 찌푸리는 고객이 몇 명인지, 대기 시간이 길어 짜증을 내는 고객이 몇 명인지 그런 걸 분석해야 하는 거예요. 여기 인터뷰 내용이 저희에겐 원자료에 가장 가까운 데이터입니다. 고객이 센터에서 경험한 사건의 기록인 거죠. 비정형 데이터라 이를 정제하고 또 정제해야 인사이트가 나오겠지만 그게 바로 분석의 핵심이에요. 답은 언제나 데이터 안에 있답니다!”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분석에는 자신 있었고 데이터베이스라면 논문까지 썼는데 실전에 응용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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