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서비스 네트워크 전략 (4)

by 성세윤

모든 걸 제쳐두고 엑셀 열을 따라 죽 늘어선 해피콜 인터뷰 데이터를 읽기 시작했다. 작업이 어렵진 않았다. 인터뷰 몇 개를 읽고 키워드를 뽑아낸 후 그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전체 인터뷰 내용에서 몇 번 언급됐는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언급된 수가 많다면 정말 키워드라고 할 수 있어 만족도 수치와 함께 추출해 따로 기록해 두었다.


키워드를 분류하는 작업은 필요했다. 예를 들어 센터 직원을 언급하며 ‘상냥’, ‘다정’, ‘도움’과 같은 키워드를 쓴다면 이는 모두 ‘친절도’로 정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인터뷰에서 언급된 키워드를 발췌하고 조율해 가치트리를 조금 더 정교히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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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도는 크게 봤을 때 ‘서비스 품질’과 ‘서비스 시간에 영향을 받았다. ‘서비스 품질’과 관련된 키워드는 수리기사의 역량, 수리 속도 등 ‘수리품질’과 안내 직원의 친절도 등 ‘수리 외 서비스 품질’로 나눌 수 있었다. ‘서비스 시간’은 서비스 센터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이동 시간’과 서비스 센터 내에서의 ‘대기 시간’ 그리고 ‘수리 시간’으로 분류됐다.


김 부장이 지적했듯 서비스 품질은 중요한 변수는 아니었다. 만족도의 한 축을 이루는 항목이긴 했지만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수리품질과 수리 외 품질이 자주 언급이 되긴 했지만 모두 높은 만족도를 보이는 인터뷰 내용이었다. 고동혁 과장 말대로 직원 교육을 워낙 철저히 시키다 보니 상향 평준화된 걸로 보였다.


하지만 서비스 시간은 달랐다. 인터뷰 내용에는 센터까지의 이동시간과 수리하기까지 대기 시간 그리고 수리에 걸리는 시간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특히나 센터까지의 이동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이 언급됐다. 그리고 시간을 언급했던 고객들은 대부분 7점 이하의 낮은 만족도 수치를 보였다. 나는 인터뷰 내용을 기반으로 ‘서비스 시간’과 관련된 가치트리를 다시 만들어 보기로 했다.


‘서비스 시간’ 중 ‘대기 시간’은 서비스 수량과 수리기사 수에 영향을 받았다. 서비스 수량 대비 수리기사 수가 부족하면 대기시간은 길어졌다. 또한 서비스 수량은 항상 일정한 게 아니라 일과 후 시간 혹은 주말 등 피크(peak)가 생기는 시간대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수리기사 수는 평균 수요에 맞추게 됨으로 이 피크 시간대에는 대기시간이 길어졌다. 결국 대기시간은 서비스 수량과 수리기사 수 그리고 시간대에 따라 변하는 함수로 나타낼 수 있었다.


그래프를 그린다면 특정 시간대에 대기시간이 피크까지 치솟다가 다시 줄어들기를 반복하는 삼각함수 형태로 나타났을 것이다. 몇 가지 변수를 추가할 수도 있었다. 제품 별 판매수량과 연계하여 예상되는 서비스 수량을 추정하거나 수리기사의 숙련도에 따라 처리할 수 있는 서비스 수량을 다르게 가정할 수도 있었다.


계속 생각을 전개하다 보니 가치트리는 정교해졌지만 그만큼 필요한 데이터도 많아지고 분석은 난잡해졌다. 내 머리도 혼곤해졌다. 답은 데이터에 있고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것도 분석이라는 김 부장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하지만 제대로 분석하려면 데이터 수집부터 다시 해야 할 판이었다.



“분석은 최선을 다해 하고 계신가요?”


머리를 쥐어뜯을 듯한 표정으로 엑셀 시트에 시선을 파묻고 있던 나에게 김 부장이 다가왔다.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김 부장은 손을 뻗어 키보드 방향키를 만지작 거렸다. 그의 손은 수식이 참조하는 셀들을 따라 부산히 움직였다.


뽑아낸 키워드들을 살피며 만족도와 상관관계 분석한 부분까지 검토한 그는 별다른 얘기 없이 새로 작업하고 있던 가치트리로 넘어갔다. 그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수식들을 따라 분주히 눈동자를 움직였다.


“꽤나 정교하게 만들었네요. 삼각함수까지 쓰면서 말이죠.”


김 부장은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김 부장에게 처음 들어보는 칭찬에 감응해 그 말 깊숙이 숨겨진 냉소를 알아채지 못했다. 김 부장의 평소 화법을 생각하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말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기까지 오래 걸리진 않았다.


“비즈니스란 건 말이죠, 언제나 효율성의 문제예요. 그건 가치트리를 만들 때나 모델링을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김 부장은 헛기침을 하며 뜸을 한번 들이고 말을 이었다.


“이 모든 변수들과 상관관계를 고려해야만 비용효율성을 계산할 수 있을까요? 현실엔 너무 많은 변수들이 있기 때문에 모든 변수를 고려해 모델링을 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해요. 더 많은 변수를 고려하고 더 복잡한 분석방법을 적용한다고 해서 더 현실적이고 정확한 분석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죠. 피크 시간대를 고려한 삼각함수로 대기시간을 계산한다 한 들 평균 대기시간을 이용한 결과와 차이가 얼마나 있을까요?”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김 부장은 내가 작업을 하며 품고 있던 의구심을 정확히 지적했다. 개별 고객의 만족도를 분석하려는 의도가 아닌 이상 분석을 더 정교히 한다 해도 큰 차이는 없었다. 오히려 세부적인 변수와 난해한 분석법을 쓰면 연산이 지나치게 복잡해져 비현실적인 값이 나올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정작 데이터에 답이 있다며 ‘최선’을 다해 데이터를 보라고 했던 건 김 부장 아니던가? 김 부장은 뒤죽박죽 진탕이 된 내 심간을 꿰뚫어 본 듯 옅은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내 눈엔 사려라곤 일도 없는 체수 없는 조소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제가 데이터에 답이 있다고 했었죠? 그런데 그 말이 이렇게 데이터만 파고 들라는 말은 아닙니다. 데이터에 답이 있는 건 맞지만 저희는 그 답을 누구나 이해하고 직시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할 필요도 있어요. 과제를 하나 드려보죠. 지금 분석한 내용으로 제게 엘리베이터 피치를 해보세요.”


엘리베이터 피치라면 스타트업 창업자가 같은 엘리베이터에 탄 투자자에게 사업기획을 발표하는 것으로 1, 2분 내 전체 사업을 짧고 간결히 설명해야 했다. 김 부장 말은 가치트리를 최대한 간단히 설명해 보라는 것이었다.


시작부터 막혔다. 만족도가 서비스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을 하려는데 머릿속에선 대기 시간을 계산하는 삼각함수 생각만 맴돌았다. 과학적이고 설득력 있는 분석을 했다는 걸 증명하려면 어떻게든 ‘삼각함수’에 대한 언급이 들어가야 한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가치트리의 맨 꼭대기에 있는 ‘만족도’와 가장 아랫단에 있는 ‘대기시간’ 사이 간극은 1분에 설명하기엔 너무나 컸다.


김 부장은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머뭇거리기만 하는 내 모습에 다시금 냉소를 보냈다. 만족도 분석만큼은 나 스스로 해낼 수 있을 거라, 아니 해내야 한다고 다짐했는데 다시 한번 백기를 들어야 했다. 김 부장은 쓰러진 적 앞에 승기를 꽂고 관용을 베풀 듯 말을 꺼냈다.


“세윤 씨는 지금 본인이 왜 분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죠? 비즈니스 분석은 답을 찾기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답을 말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해요. 연산을 통해 답을 찾아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가설이 왜 사실인지 그 스토리도 얘기할 필요가 있죠.


분석이 답을 찾기 위한 도구가 아닌 스토리텔링의 도구가 되는 순간, 핵심은 연산의 정교함이 아니라 얼마만큼 이해하기 쉬운가, 즉 직관성이 돼요. 직관적이다라는 건 일괄적으로 단순하다는 게 아니라 분석 자체가 우리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변수에 초점이 맞춰져 이해하기 쉽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직관적인 트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변수가 우리 스토리상에서 실제 중요한 변수인지 혹은 가정을 통해 단순화시키거나 제외시켜도 되는 변수인지 끊임없이 판단을 해야 해요. 생각을 게을리 해선 안됩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건 어떤 방법이 가장 효율적 일지 항상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한다는 겁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방향으로 돌진만 한다고 최선을 다하는 건 아니에요.”



김 부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꽂혔다. 나는 김 부장의 말을 곱씹으며 내 분석을 돌이켜봤다. 서비스 품질은 단순화시킬 수 있는 변수였다. 김 부장이 지적했던 대로 서비스 레벨 관리를 통해 평준화 가능했다. 수리기사와 센터 직원 채용과 교육에 조금만 신경 쓴다면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수리시간도 컨트롤 가능했다. 수리기사 역량이 출중하다면 수리시간 자체가 짧을 것이고 교체 부품 재고가 없다거나 해서 오래 걸리더라도 예상 시간을 공지하고 상황을 설명해 불만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기 시간은 컨트롤 가능한 변수일지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대기 시간은 컨트롤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고객이 특정 시간대에 몰리는 건 테크원이 조정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수리 기사 수를 조정할 수 없다면요.”


아차. 수리기사 생각을 안 했다. 수리기사를 늘린다면 대기시간도 조정 가능한 변수가 됐다.


“예산이 제약이 있어 수리 기사 수가 정해져 있다면 의미 있는 변수가 될 수 있겠죠. 하지만 테크원이 만족도 개선을 목표로 투자를 하려 하고 있는 만큼 수리 기사 수를 조정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대기시간을 서비스 레벨 지표로 관리할 수도 있어요. 서비스 수요가 늘면 기사를 추가 채용해 대기시간을 유지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피크 시간 대에는 비정규직을 고용해 수요를 감당할 수도 있고 서비스 예약제를 통해 피크를 낮출 수도 있죠.


비정규직 기사라면 품질이슈가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역량 있는 관리자 한 명만 있으면 돼요. 수리 난이도에 따라 할당만 잘하면 될 테니까요. 완벽히 제어되진 않겠지만 어느 정도 수준으로는 유지할 수 있죠.


그래서 대기시간도 컨트롤 가능하고 분석에 의미 있는 영향을 주는 변수는 아니에요. 제가 보기엔 세윤 씨 가치트리에서 의미 있는 변수는 하나입니다.”


김 부장 손가락을 따라가던 내 시선은 ‘이동시간’에서 멈췄다. 이동시간은 새로 도로를 만들지 않고서는 바꾸기 어려운 지역 고유의 속성이었다. 만족도 향상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단순히 지역별 서비스 수요가 아니라 수요가 발생한 지점과 서비스 센터 사이의 거리까지 고려해야 했다.


특정 거리를 벗어나면 아무리 빨리 수리를 해주고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해도 평균 만족도보다 높은 만족도를 얻기 힘들었다. 이 거리를 x km라고 한다면, 비용 대비 만족도를 극대화할 수 있는 지점은 ‘x km 내 서비스 수요의 밀도가 가장 높은 지점’이 됐다. 김 부장은 볼펜을 두어 번 딸깍거리더니 내 책상 위에 놓인 이면지 한편에 그림을 하나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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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까지 이동하는 거리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질 거예요.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까요.”


“다른 변수들은 고려할 필요 없을 까요? 이동할 때 교통상황 같은 것도 영향을 줄 것 같은데요.”


“맞아요. 출퇴근 시간이라면 거리대비 이동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겠죠. 하지만 교통상황은 시내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기대치를 가지고 있을 테니 크게 영향을 미칠 것 같진 않아요.


그리고 제가 얘기했죠. 분석을 정교히 하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분석은 어디까지나 답을 말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요. 그런 관점에선 이 그림 정도면 충분해요. 이 그림대로만 분석하면 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이동시간이고 지역별 서비스 수요를 고려해 최적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는 결론을 유도할 수 있으니까요.


결론적으로 세윤 씨가 분석해야 하는 건 이 숫자들을 찾는 거죠. 만족도가 최적화되는 거리 Y와 거리 Y 내 수리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을 말이에요. 그럼 어떤 분석을 해야 하는지 정리해 볼까요.”


김 부장은 비용 차트를 만족도 차트와 나란히 놓으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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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매출과 비용 분석을 통해 최소 수익성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서비스 수량 X를 분석합니다. 그다음엔 만족도를 최적화할 수 있는 서비스 센터로부터의 반경 Y km를 찾아야 하고요. 우리가 찾아야 할 곳은 Y km 내 서비스 수요가 최대치인 곳입니다.


이때 서비스 수요는 수익성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최소 수요 X보다 높아야 하겠죠. 만약 X보다 높지 않다면 서비스 단가를 조정하거나 할 필요가 있을 테고요.


이제 결론을 내려볼까요?”


나는 굳게 다문 입을 삐쭉 내밀고 고개만 끄덕였다. 지금 상황에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저라면 결론을 이렇게 얘기하겠어요.


‘고객 서비스 만족도 향상을 위한 최적의 서비스 센터 위치는 Y km 반경 내 서비스 수요가 최대치인 곳입니다. 수리 품질처럼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가 상향 평준화 되어 있는 상황에서 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서비스 센터까지의 ‘이동거리’입니다.


저희 분석에 따르면 이동거리가 Y km라는 임계치를 넘어갈 때 타 변수와는 상관없이 서비스 만족도가 일괄적으로 급감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Y km 내에서 처리할 수 있는 서비스 수가 많을수록 만족도는 높아집니다. 이때 서비스 수량이 X 이상이라면 서비스 센터의 운영 수익성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이게 세윤 씨가 얘기해야 할 스토리가 되는 거예요. 분석해서 스토리를 만들지 말고, 스토리로 분석 결과를 말하세요. 분석이 바로 스토리인 겁니다.”



분하긴 했지만 난 그의 얘길 듣는 내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귀살스레 뻗어나가던 생각들이 단박에 정리됐다. 쓸데없이 복잡하기만 했던 변수들은 가지치기를 한 듯 잘려 나갔고 정확히 필요한 변수만 남았다.


김 부장은 애초부터 답을 알고 있던 걸까? 어쩌면 이리도 간결히 분석을 단순화시킬 수 있을까? 단순하면서도 충분했다. 이대로만 분석하면 우리가 선정할 위치가 가장 비용효율적이란 걸 증명할 수 있었다. 가용한 데이터와 할 수 있는 분석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 스토리와 메시지에 출발하니 분석이 이렇게 단순하고 명료해질 수 있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분석은 답을 찾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답을 말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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