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장은 언 수탉 같이 서있는 나를 뒤로 한 채 볼펜을 딸깍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남은 건 분석이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자리에 앉아 김 부장 말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김 부장과 논의할 때만 해도 답이 눈앞에 놓여 있는 듯했는데 막상 분석을 시작하려니 다시 망망대해를 휘젓는 기분이었다.
비용 분석은 어렵지 않았다. 이미 상당 부분 분석해 놓기도 했고 관련 데이터도 모두 경영분석 시스템에 있어 시간이 걸릴 뿐 분석 자체가 어렵진 않았다. 문제는 만족도 분석이었다. 해피콜 데이터는 만족도와 설문 결과가 있을 뿐 추가적으로 얻을 수 있는 데이터는 없었다. 김 부장이 세워 놓은 프레임워크를 활용하려면 거리 데이터가 필수였지만 그런 데이터는 없었다.
‘설계된 분석에 맞춰 데이터를 만들어 보는 것도 방법인데 말이죠.’
김 부장 말이 이명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데이터를 어떻게 만들어 낼 까? 깊은 숨을 한번 내쉬고 다시 데이터를 살펴봤다. 엑셀에 정리된 내용은 해피콜 ID, 방문센터, 수리상품, 만족도, 설문이 다였다. 해피콜 데이터는 센터 평가를 위해 익명으로 통계만 뽑았기 때문에 데이터라곤 그것뿐이었다.
필요한 건 만족도와 연결시킬 수 있는 방문거리 데이터였다. 데이터를 얻으려면 거리 때문에 불만이었다던 설문자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서비스 센터까지 오는데 얼마나 걸렸는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데이터를 만들려면 정말 설문을 다시 하는 방법밖에 없을 까?
콜 센터 직원이 수 천 명이니 천 개 정도 데이터를 샘플링해 설문을 하는 게 어렵진 않을 것이다. 기존 설문할 때 걸었던 번호에 그대로 전화만 걸면 된다.
잠깐, 근데 전화번호는 어디 있지? 번개가 치듯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다. 전화번호만 있다면 경영지원 시스템에 있는 고객정보와 연결시킬 수 있었다. 엑셀로 추출한 데이터는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전화번호가 제외했지만 해피콜 시스템 원본 데이터에는 전화번호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급히 몇 군데 전화를 돌리니 데이터는 쉽게 뽑을 수 있었다.
다음은 전화번호를 기준으로 해피콜 데이터를 워런티 시스템 (warranty system)에서 추출한 고객 데이터와 연결시키는 작업이 필요했다. 수리를 맡기려면 워런티 등록이 필요했기 수리를 맡겼던 대다수 고객의 워런티 정보가 있었다.
정보는 고객 신상정보, 제품정보, 불량 코드, 유료 서비스 여부 및 지불금액이었다. 신상정보에는 고객 주소와 전화번호가 포함되어 있었다. 엑셀 기능을 활용해 데이터를 꿰매니 만족도 수치부터 개인별 신상 정보가 모두 엮인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완성됐다.
약 10초 정도 만족감에 넋을 놓고 엑셀 화면을 바라봤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정작 필요한 거리 데이터는 여전히 실마리조차 없다는 사실이 뇌리를 강타했다. 이 부분만큼은 정말 답이 안보였다. 신상정보에 주소가 있긴 했지만 러시아어로 적혀있어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거리 계산은 고사하고 주소를 읽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한숨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일단 위치라도 확인하려는 심정에 주소를 복사해 구글 맵에서 검색했다. 위치는 모스크바 외곽이었다. 데이터 베이스에 있는 주소 만으로 어디 사는지 위성사진까지 볼 수 있다니! 인터넷이 좋긴 좋다. 그렇게 물끄러미 위 모니터 화면을 보는데 문득 숫자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위도. 경도.
침이 꿀꺽 넘어갔다. 마우스를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검색창에 서비스 센터 주소를 넣었다. 역시나 위도와 경도가 표시됐다. 바로 인터넷에서 위도와 경도를 기반으로 두 지점 사이의 거리를 구하는 공식을 찾았다. 공식을 입력하고 고객의 위도와 경도, 서비스 센터의 위도와 경도, 이렇게 네 개 숫자를 입력했다.
3.48435km
정확하게 거리가 계산되어 나왔다. 나도 모르게 코웃음이 터져버렸다. 이렇게 쉽게 방법을 찾아내다니 말이다. 꼬박 삼일 밤을 새우며 위도와 경도를 검색하고 데이터를 한 줄씩 채웠다. 정확히 천 건의 데이터를 만들었다.
결과를 확인할 차례였다. 거리 계산 수식을 넣고 천 개 열을 선택한 후 컨트롤키와 ‘D’를 를 눌렀다. 맨 윗 열부터 순차적으로 셀들이 점멸되며 천 개의 데이터가 채워졌다. 0.1 km부터 50 km가 넘게까지 숫자가 표시됐다.
다음엔 전화번호를 이용해 거리 데이터와 만족도 데이터를 매핑했다. 눈어림으로 데이터를 스캔해 보니 분포는 예상치와 비슷한 것 같았다. 가까운 거리일수록 만족도 수치 또한 높았다. 마우스를 몇 번 조작하자 마술처럼 정확히 예상했던 그래프가 그려졌다.
서비스 센터에서 멀어질수록 평균 만족도도 감소했다. 그리고 정확히 6km가 넘는 지점에서 변곡점이 보였다. 만족도는 평균 8.6에서 6.1로 급락했다. 손끝부터 정수리까지 짜릿한 전율이 솟았다. 이동거리가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라는 가설이 적중했다.
수리에 대한 만족도라면 당연히 수리품질이 가장 영향을 미칠 거라 추측했지만 중요한 건 수리가 아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테크원은 수리 자체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품질관리를 하고 있어 수리품질을 개선시키기 위해 더 이상 투자하는 건 효율적이지 않았다.
테크원에게 필요한 건 모스크바 도처에서 증가한 서비스 수요를 6km 이내 거리에서 대처하는 것이었다.
“이번엔 정말 최선을 다하신 건가요?”
어깨너머로 김 부장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프에 혼이 팔려 그가 서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자신 있게 의자를 옆으로 빼며 손으로 그래프를 가리켰다.
“넵.”
“결과는요?”
“예상했던 대로 나왔습니다.”
입가에 차오르는 미소를 멈출 수 없었다.
“그럼 좀 볼까요?”
김 부장은 긴 팔을 뻗어 낚시질을 하듯 프린트된 장표를 가져갔다. 의자를 끌어 앉은 김 부장은 다리를 꼬고 앉아 볼펜을 딸깍거리며 장표를 살폈다. 펜대로 관자놀이를 두어 번 긁적 댄 김 부장은 그래프 프린트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별건 아니에요. 메시지 몇 개만 뽑아내면 좋을 것 같아서요. 이번엔 정말 최선을 다하신 것 같네요.”
김 부장은 그때 내게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보이며 장표를 건넸다.
예전 임정혁 부장이 했듯 김 부장은 그래프 위로 선 몇 개를 그려 넣었다. 분석을 통해 얘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 선 몇 개로 인해 놀랍도록 명확해졌다. 전에 임정혁 부장이 박스 하나와 화살표 세 개로 메시지를 드러냈듯이 말이다.
“결론적으로 서비스 센터 위치선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반경 6km 내 수요가 얼마나 밀집되어 있느냐겠네요. 그게 만족도 향상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원인인 거죠. 분석 잘하셨어요. 이건 장표로 만들어 주시고 이제 서비스 센터 위치를 어떻게 선정할지 고민해 보시죠.”
김 부장의 선 두 줄이 그려진 분석결과를 보니 두 개의 변곡점이 눈에 뚜렷이 들어왔다. 첫 번째 변곡점은 1 구역과 2 구역 사이의 고객 만족도였다. 서비스 센터와의 거리가 6km가 넘어가는 순간 만족도가 급격히 감소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수리의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거리가 멀면 불만을 갖는 것이었다.
두 번째 변곡점은 2 구역과 3 구역 사이의 방문건수였다. 거리가 10km가 넘어가면 방문 횟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수요 자체도 적겠지만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직영 서비스 센터보다는 좀 더 가깝게 있는 수리 전문점을 찾는다고 볼 수 있었다. 테크원 평균 만족도가 7.5점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6km 반경 내의 수요 만이 만족도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따라서 결론은 6km 내 수요가 가장 많은 곳에 서비스 센터를 건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 부장이 그은 선 덕분에 6km라는 답이 명확히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자세를 가다듬고 책상에 앉았다. 귀로에 오른 오디세이아처럼 긴 여정을 거친 것 같은데 아직도 끝은 아니었다. 거의 다 오긴 했지만 아직 가장 중요한 관문이 남아있었다. 이제 지금까지의 분석 결과를 종합해 실제 서비스 센터 위치를 정해야 했다.
시작하려니 벌써부터 머리에 쥐가 나는 듯했다. 지금까지 분석은 천 건의 데이터가 현재 서비스 센터 위치로부터의 거리와 만족도를 기준으로 진행했다. 이걸 어떻게 일반화해서 모스크바 전역에 적용할 수 있을까?
답은 보이지 않았다. 두어 시간 책상에 앉아 있자니 수십 년은 묶힌 듯한 묵직한 체증이 온몸을 짓눌렀다. 포기할 순 없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 어떻게든 답은 나오기 마련이었다. 김 부장에 수십 번 깨지면서 이것 하나 만은 제대로 배웠다. 바로 고민의 깊이만큼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답이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최선을 다해, 멈추지 않고, 모지락스레 뇌를 괴롭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