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정보통신기술 세미나 제안서 (1)

by 성세윤

“근데 너 계속 그렇게 회사만 다녀서 되니? 듣자니 컨설팅 계속하려면 MBA라는 것도 해야 한다던데…”


어디서 들었는지 누나가 갑작스레 전화를 걸어 물어왔다.


MBA (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는 경영학 석사 과정으로 전문 경영인력을 양성하는 교육과정이다. 기본적인 실무 역량을 갖췄다는 전제 하에 교육을 진행하기 때문에 몇 년간 경력을 쌓은 후 지원하는 게 일반적이다. 업계에서는 3, 4년 차 컨설턴트가 MBA를 수료하고 차장, 부장급으로 재입사하는 케이스가 많았다.


MBA가 필수는 아니었다. MBA 없이 진급한 케이스도 많았고, MBA를 한다고 절대비급을 터득한 듯 업무 역량이 배가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경영과 무관한 전공을 택했던 나로선 한 번쯤 정규 교육을 받는 게 좋을 수 있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미국이나 유럽의 최상위권 학교 정도에는 가야 했고, 학비와 생활비를 합치면 최소 2억은 필요했다. 내게 그런 여유는 없었다. 누나는 학비가 얼만 줄도 모르면서 MBA 얘기는 왜 꺼내는 건지 모르겠다.


“요즘엔 MBA 필요 없어. 실력만 있으면 MBA 없이도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데 뭐 하러 가.”


“그래도 학위 따서 나쁠 건 없잖니?”


“그렇겠지, 돈이 남아돈다면. 2년 동안 학비에 생활비까지 하면 2억이야, 2억.”


“2억? 그렇게 많이 들어?”


“그래. 배우는 것도 별로 없어. 요즘 MBA는 그냥 돈 있는 사람들이 쉬고 싶어서 가는 거라니까.”


“넌 무슨 말을 해도 그렇게 삐딱하게 하니.”


“사실이 그렇다고. 스티브 잡스는 MBA는커녕 대학도 안 나왔어!”


“네가 스티브 잡스는 아니잖아.”


“…”


“넌 돈 벌어서 뭐 하니? 모아서 준비하면 되지.”


쳇. 누가 모르나. 여유가 있어야 모으지. 맥킨지나 BCG 같은 전략 전문 펌에 비해 어센트 연봉이 높은 편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대기업 신입사원보다 조금 더 받는 수준이라 여느 사회 초년생처럼 나 역시 생활비에 여기저기 쓰고 나면 남는 돈은 거의 없었다.


“나도 모으고는 있어. 그냥 MBA를 꼭 갈 필요는 없다는 거지.”


“… 그래,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고 있을 텐데. 누나가 돼서 아무런 도움도 못주면서 너한테 이런 말할 처지

는 아니지. 이렇게 번듯이 직장 생활하는 것도 기특한데 말이야…”


도움을 못주긴 왜 못줘? 누나는 꼭 나와 얘기를 하면 감상적이 된다. 나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탓에 어릴 때부터 본인이 내 보호자라도 되는 냥 그래왔다. 내 학비를 내줬던 것도 진작 사회생활을 시작한 누나였는데 난 누나에게 선물 한번 해준 적 없었다.


젠장, 현실은 언제나 찢긴 피부처럼 아렸다. 아픔의 근원은 결국 돈이었다. 돈만 있다면 누나가 10년째 들고 다니는 낡아빠진 핸드백도 명품으로 바꿔주고, MBA도 고민해 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게 내 탓이었다. 공부한답시고 연구실에 처박혀 허송세월만 보내지 않았어도 돈 모을 여유는 생겼을 것이다. 철저히 속물로 살아도 생존할까 말까 한 판에 선비놀음만 했던 거다. 현실이란 어쩌면 이렇게 사람을 구차하게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전화를 끊고 뒤숭숭한 마음으로 사무실에 돌아온 순간 나는 한번 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함께 제안서 작업을 하고 있던 유형식 차장 때문이었다. 유형식 차장은 미국 코넬대 MBA 재학생으로 2년 과정 중 1학년을 마치고 서머인턴으로 채용됐다.


처음 유 차장과 작업을 한다고 들었을 땐 코넬대 MBA 출신이라고 나름 기대됐다. 하버드나 스탠퍼드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코넬 역시 아이비리그 명문대 아니던가! 하지만 그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대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사실 MBA에 대해 부정적 선입견을 갖게 된 것도 유 차장 때문이었다.



1주 전, 제안서 작업을 위해 회의실에 들어서자 유 차장이 대뜸 물었다.


“세윤 씨. 근데 제안서가 뭐예요?”


“네?”


“저희 지금 제안서 작업해야 한다면서요. 제안서가 뭐냐고요.”


“프로젝트 제안 문서요. 고객사에서 RFP 나오면 제출하는...”


“알. 에프. 피. 요?”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MBA를 하고 컨설팅 인턴을 지원했을 정도면 컨설팅 업무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하긴, 대한통신 프로젝트 때 내 상황도 별반 다르진 않았다. 안 해봤다면 모르는 거다. 난 당황함을 티 내지 않으려 애써 눈웃음을 짓고 차분히 설명했다.


“알. 에프. 피는 ‘리퀘스트 포 프로포절’이라고 해서 제안요청서예요. 고객사에서 어떤 어떤 문제를 풀어달라고 하는 요청서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저희는 요청 항목을 기반으로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하겠다고 제안서를 쓰고요. 그럼 고객사에서 각 사에서 보내온 제안서를 평가해서 어디와 프로젝트를 진행할지 결정하는 거죠.”


“아, 그렇군요. 그럼 그걸 먼저 봐야겠네요.”


“보통 때라면 그럴 텐데 이번 프로젝트에는 제안요청서가 없어요.”


“왜요? 방금 제안요청서가 있어야 제안서를 쓴다고 하셨잖아요.”


“이번 프로젝트는 저희가 선 제안을 하는 거니까요.”


“선 제안이요? 그건 또 뭐죠?”


유형식 차장의 질문은 끝이 없이 이어졌다.



우리가 할 작업은 현대통신 제안서였다. 무선시장에서 대한통신을 압도한 현대통신은 그 기반을 바탕 삼아 눈이 핑 돌아갈 속도로 사업을 확장했다. 특히 재작년 선대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40대 초반에 불과한 최연우 회장이 취임한 뒤론 더욱 확장 속도를 높였다.


그런 만큼 신사업을 비롯해 컨설턴트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프로젝트도 다수 발주했지만 현대통신은 전통적으로 맥킨지 고객사였다. 맥킨지에 대한 현대통신 회장실의 신뢰는 남달랐고 프로젝트도 수의계약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센트처럼 연줄이 없는 회사에겐 제안 요청서조차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대한통신과 온세통신에서 대형 프로젝트 몇 개를 성공적으로 이끈 덕에 입소문이 퍼졌고, 현대통신도 어센트에 관심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최연우 회장도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센트 같은 신규 파트너사를 통해 자신만의 업적을 쌓고 싶어 한다는 얘기도 들렸다.


기회를 잡기 위해 어센트가 선택한 전략은 ‘선 제안’이었다. 현대통신에서 프로젝트를 의뢰하기 전에 우리 쪽에서 회장 어젠다로 가져갈 만한 아이템을 모아 제안을 하자는 것이었다. 말이 좋아 제안이지 아무런 단서 없이 최연우 회장과 회장실 구미에 맞을 만한 토픽을 찾아야 하는 답답한 상황이었다.



유형식 차장은 어센트 인트라넷에 익숙지 않아 난 리서치를 하고 유형식 차장은 리서치 결과를 문서화하기로 했다. 난 벌써 일주일째 어센트 프로젝트 데이터베이스를 쥐 잡듯 뒤지며 증강현실이나 A.I. 같은 제안서 토픽 후보군을 만들고 있었는데, 유 차장은 10분에 한 번씩 날 찾아와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나는 갑갑한 마음에 일주일 전부터 ‘참을 인’ 자를 수십 번 되새기며 그의 질문에 일일이 답해주고 문서작업 요령부터 리서치 방법까지 가르쳐 줬다. 물론 직급도 나이도 유 차장이 위였기 때문에 가르쳐 주는 티를 너무 내서는 안 됐다. ‘그건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하며 그를 배려했다. 그런데도 발전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MBA에서는 도대체 뭘 배우는 건지.


내 심기가 다시 틀어졌던 건 유형식 차장이 작업하던 문서가 눈에 띄어서였다. 유 차장은 모니터에 파워포인트를 띄워 놓고 엉성한 손놀림으로 마우스를 움직이며 슬라이드를 만들고 있었다. 유 차장은 파워포인트 단축키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박스 사이즈는 제각기 달랐고, 불릿은 들여 쓰기를 못 맞춰 들죽날죽이었다. 그보다 더 한심한 건 내용이었다. 독수리 타법으로 적는 내용은 원본 문서를 짜집기 한 수준으로 논리도 없고 스토리도 없었다.


“차장님, 박스 사이즈는 맞추는 게 보기 좋아요. 복사해서 붙이시거나, 컨트롤키 누른 상태에서 박스 클릭하고 드래그하면 바로 복사돼요.”


나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 그래. 성 대리가 전에 얘기했었지. 미안. 또 깜빡했네.”


일주일이면 이 정도는 쉽게 할 법도 됐건만, 뭐가 어려운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 불릿 내용도요. 헤드라인하고 안 맞아요. 헤드라인은 ‘혁신 요소 부재’라고 쓰셨는데 그럼 어떤 요소가 어떻게 부재했는지 얘기지 그냥 랜덤 한 이슈를 쓰면 안 되죠.”


“그렇네. 세심하게 읽어보질 못했나 봐. 다시 볼게. 내가 워낙 워드문서만 작성했다 보니 파워포인트는 익숙지가 않아. 이해 좀 해줘.”


난 내용의 로직을 지적했는데 그는 워드와 파워포인트 사이 형식을 논했다. 이러니 대화가 안 통하는 것이다. 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작업을 마무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을 제안할 수밖에 없었다.


“저한테 보내 주세요. 제가 다듬을게요.”


“아니야, 성 대리. 이건 내가 할 게.”


“오후에 김 부장님이 리뷰하자고 했잖아요. 시간은 맞춰 끝내야죠.”


“아, 오후에 리뷰가 있었지. 그래, 그럼. 지금 보내줄게.”


차라리 처음부터 내가 했었으면 오전 내에 다 끝내고 여유 있게 리뷰를 준비했을 텐데. 내 자리로 돌아가려 발걸음을 돌리는데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왔다. 등 뒤로 머리 긁적이는 소리가 들렸다.



10분 뒤, 유 차장에게 메일이 왔고 유 차장은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그도 나름 쌓인 게 있을 것이다. 나이도 어리고 직급도 낮은 나에게 매번 잔소리를 듣는 게 편한 일이겠는가. 그것도 짜증과 조소가 반쯤 섞인 불만 가득한 어투로 말이다. 커피를 마시러 갔겠거니 하는 생각에 나도 탕비실 쪽으로 나갔다. 탕비실 쪽 코너를 돌아 유 차장 목소리가 들렸다.


“미치겠다니까. 컨설팅은 진짜 나하고 안 맞나 봐.”


유 차장은 누군가와 전화를 하는 것 같았다. 돌아 서려는데 내 얘기가 들려 발걸음을 멈췄다.


“같이 일하는 애? 아니, 애는 착해. 그래, 막 하거나 그런 스타일은 아니야. 내가 더 잘해야지 뭐. 그리고 입사한 지 일 년 밖에 안 됐다는데 이 정도 일하는 거면 대단한 거지. “


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직급과 나이로 자존심을 내세우려 한다거나 하면 짜증이라도 내지. 그래도 하려는 의지는 있고 나름 존중도 해주는 터라 내 분통만 터지는 거다. 한편으론 짠한 생각도 들었다. 저런 실력으로 입사는 고사하고 앞으로 한 달도 넘게 남은 인턴생활을 어떻게 버텨낼지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다음 한 마디는 그런 연민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근데 여기 사원들 보면 좀 불쌍하긴 해. 얘들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거의 매일 새벽 1, 2시까지 일하거든. 그래봤자 연봉은 오천도 안된다더라. 완전 착취 당하는 거지.”


‘착취’란 단어가 비수처럼 가슴에 박혔다. 그때까지 난 내 노동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 주어진 대로 업무를 수행했을 뿐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나를 착취나 당하는 불쌍한 인간으로 보고 있었다니! 유 차장은 내가 듣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눈치채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이래서 MBA라도 하라고 하나 봐. 우린 인턴이라도 연봉으로 따지면 1억은 넘게 받잖아. 졸업하면 더 받을 거고.”


1억? 유 차장은 분명 1억이라고 했다. 어센트에서 사원부터 차근히 올라가 차장이 되면 7천에서 8천 정도 연봉을 받았다. 그런데 MBA가 뭐라고, 그 알량한 타이틀 하나 붙었다고 덜컥 1억이 넘는 연봉을 준단 말인가? 컨설팅 업무의 기본도 모르는 유 차장 같은 사람들에게 말이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내가 우쭐거리며 업무를 알려줄 때 유 차장은 얼마나 측은지심으로 날 바라봤을까?


‘네가 스티브 잡스는 아니잖아!’ 누나 말이 떠올랐다. 스티브 잡스가 학위나 MBA 없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스티브 잡스였기 때문이다. 특출 난 사람은 어떤 환경에 있더라도, 그 무엇을 하더라도 성공한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평범하다. 이력서에 별다른 인턴 경력 하나 쓸 수 없던 나처럼 말이다.


MBA는 그런 평범한 사람에게 일종의 보험과 같았다. 내가 아무리 특출 나지 못하더라도 MBA를 했다는 사실은 내 역량에 대한 보증서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보증서가 있는 한 여느 보증된 상품과 같이 그에 걸맞은 가격표가 붙었다.


결론은 명확했다. 스티브 잡스가 MBA 없이 성공했기 때문에 MBA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티브 잡스처럼 특출 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MBA가 필요한 것이었다. MBA란 타이틀 하나면 ‘억대 연봉’이란 가격표가 자동으로 붙었다. 명품도 사고 여행도 다니며 여유롭게 살 수 있었다.


대학시절 치수가 사다리 타기를 하듯 커리어 패스를 그리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가 가장 전형적이라 얘기했던 커리어는 대학 졸업 후 컨설팅에 취업해 3년간 다니고, 미국 톱 10위권 MBA를 갔다 와 다시 컨설팅을 한 후, 10년 차 팀장급이 됐을 때 대기업 임원으로 발탁되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인생을 무슨 답이 정해진 것처럼 계획하는 그가 한심해 보였다. 하지만 실로 그게 진리였다. 천재도 아니고 금수저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그런 현실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얼마 전 치수는 어센트에서 운영하는 MBA 스폰서 프로그램에 지원할 거라 했다. 스폰서를 받게 되면 회사에서 MBA 학비를 지원해 줬다. 치수는 졸업 후 5년간 이직을 할 수 없다는 근속 조건이 붙긴 했지만 학비 안 내는 게 어디냐며 수다를 떨어댔다.


그때만 해도 남 얘기 같았는데 유 차장의 얘기를 듣고 나니 치수가 MBA를 가고 싶어 한 이유가 대번에 이해됐다. 그 녀석이 움직였다면 분명 그만큼 계산을 했으니까 움직였을 텐데 말이다.


그래봤자 나에겐 꿈같은 얘기긴 했다. MBA 스폰서 프로그램 지원 자격은 과장부터였고, 난 과장이 되려면 2년은 더 있어야 했다. 지나간 세월에 대한 아쉬움이 한숨으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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