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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세윤 Oct 16. 2024

17. 너의 기억 속

3부 상실된 언어를 찾아서


그날 너는 수술실에 홀로 누워 있었다. 흰 가운을 입고 다리걸이에 두 다리를 걸치고 가랑이를 벌리고 있자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조금 있으니 간호사가 수술 도구가 올려진 카트를 끌고 왔다. 경부를 넓히는 스테인리스 스페큘럼과 주걱모양으로 된 큐렛이 카트 위에서 달그락거렸다. 숨이 콱 막히며 눈물이 핑 돌았고 구토가 나올 듯 속이 울렁였다. 곧 청록색 수술복을 입고 마스크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의사가 들어왔다. 코팅 렌즈가 형광등을 반사하며 너를 주시했다. 의사는 아무 말 없이 너를 한번 쳐다봤을 뿐인데 너는 그 무언의 시선을 견딜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관둘 수 있어. 여기서 입만 열면 돼. 지금 그만둔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너는 생각했다. 하지만 몸은 수술대에 결박된 듯 옴짝달싹할 수 없었고 입에는 가재를 물린 듯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숨은 점점 막혀 왔다. 어느덧 시야에서 사라진 의사는 눈앞을 가린 하얀 면포 뒤로 검은 그림자가 되어 나타났다. 잔상으로 남겨진 의사의 시선이 면포 뒤에서 번쩍였다. 두 눈을 부릅뜨고 너의 음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던 너의 귓가에 희미하게 띠, 띠 소리가 울렸다. 세상 모든 게 어두웠다. 시공간에 틈이 생긴 듯 괴리감이 들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너는 자신이 눈을 감고 있어서 어둡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제야 너는 자신이 마취에서 깨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수술은 이미 끝났던 것이다. 기억과 시공간 사이 연속성이 회복되며 차츰 의식이 돌아왔다. 의식을 잃기 전 보았던 수술 도구들과 의사의 부릅뜬 두 눈이 단절됐던 15분간의 시간을 채워가며 머릿속에서 재현되려 했다. 마침 덜컥하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너는 각막에 힘을 잔뜩 주어 머릿속에서 재현되려던 장면을 멈춰 세웠다.


“몸은 어떠세요?”


간호사가 네 몸 상태를 살피며 물었다. 너는 괜찮다고 조용히 답했다.


“어지럽고 메스꺼울 수 있으니까 조금 누워 계세요.”


간호사는 이불을 덮어 주고는 회복실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겨지고 적막이 흐르는가 싶더니 둑이 무너진 듯 툭 하고 눈물샘이 터졌다. 수치심과 분노와 죄책감이 한여름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고 멈췄던 영상이 다시 떠올랐다. 스페큘럼으로 벌어진 경부를 비집고 석션 튜브가 무작스레 들어왔다. 네 의식은 튜브를 따라 네 안으로 들어갔다. 마들렌이 보였다. 자신에게 다가올 운명을 아는지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몇 번 피했던 석션 튜브는 이내 마들렌의 두개골을 찔렀다. 석션기의 공기음이 대기를 갈랐고 마들렌의 뇌는 두부처럼 으스러졌다. 침묵의 절규가 들렸다. 석션기는 수 차례 마들렌의 몸을 파고들었다. 뼈는 으스러지고 몸이 토막 났다. 스페큘럼 틈새로 피가 홍수처럼 쏟아졌다. 곧이어 큐렛이 들어와 자궁을 헤집고 살덩이를 긁어냈다. 마들렌이 처분해야 할 쓰레기라도 되는 듯 살덩이와 핏덩이가 몸 밖으로 흘러나왔다. 구토가 식도를 타고 역류했다.


울음이 멈추질 않고, 숨이 막혔다. 폐 위에 바윗덩이를 올려놓은 듯 숨을 들이켤 수 없었다. 비바람이 되고 파도가 되어 버린 눈물이 네 폐와 기도가 막힐 때까지 가득 차올랐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전신을 강타했다. 머릿속에선 공포 영화의 한장면처럼 도륙된 마들렌의 사체가 계속 떠올랐다. 파편화된 기억의 잔상이 너를 지배했다. 차가운 스테인리스 집게, 찢긴 살점, 무음의 비명, 처절한 발버둥. 그런 것들이 네 의식을 겁탈하듯 헤집고 다녔다. 너는 어떤 압도적 세력에 의해, 힘에 의해 무력화되어 있었다. 병실 한편에 있던 거울로 고개를 돌리자 무력한 이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자화상이 보였다. 마들렌은 일종의 병 같은 것이었다고 자연재해처럼 네가 피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고, 병 때문에 유산한 것과 다름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싶었다. 너를 병들게 하는 바이러스 같은 것이었다고 수십 번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건 초음파로 봤던 마들렌의 모습이었다. 마들렌의 망령이 귀신처럼 따라붙으며 떠올랐다. 몽글한 가슴을 부여잡고 심장을 죄는 듯한 그 고통을 참아내야 했다. 잠을 잘 때면 몽마가 붙은 듯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렸고 깨어 있을 땐 악몽 자체를 살고 있는 듯했다. 더 이상의 저항이 불가하다고 느낄 때쯤 네 방어체계는 와해됐다. 마들렌은 거침없이 네 육체를 장악하고 네 정신을 좀먹었다. 살인자라는 낙인을 주홍 글씨로 온몸 곳곳에 새겼다. 그 각인은 네 감각, 감정, 정서, 기억, 인지 작용 속에 자리 잡고 꿈틀거리며 끝없는 악몽을 재생했다. 이성이나 분별은 공포에 압도당해 무력화됐다. 너는 아무런 상황 판단도 할 수 없었다. 고장 난 자율 신경계는 툭하면 경보음을 울렸고 조그만 불안 하나도 기폭제가 되어 폭발을 일으켰다. 너의 의식은 지뢰가 가득 깔린 대지였다.


폭발이 일 때면 ‘마들렌’이란 이름 세 글자가 귓가에 이명처럼 울렸다. 마들렌이라니. 차라리 이름이나 짓지 않았다면. 마들렌이란 이름이 죄책감으로 따라붙었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직 형태도 잡히지 않은 태아일 뿐인데 마들렌이란 이름과 그 음성이 불리는 순간 머릿속에서 너무도 또렷이 턱선과 콧대와 눈매가 살아나며 그 앙증맞은 손가락을 입에 물고 빠는 모습이 그려졌다. 탁구공만 한 머리에 손과 발까지 온전히 갖춘 모습이었다. 얼굴엔 솜털이 났고 눈꺼풀은 눈을 덮으며 형태를 잡아갔다. 조막만 한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섬세히 움직이는 모습은 영락없이 살아 있는 생명체였다.


너는 그런 마들렌의 모습을 보고도 수술해 달라고 말했다. 매몰차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그때 그렇게 말한 건 너 자신이 아니라고, 고통을 못 이겨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울부짖던 네 신체가 잔혹하게 유린당한 후 쏟아낸 신음과 같은 거라고 외치고 싶었다. 너는 머리를 움켜쥐고 미친 듯 고개를 흔들었다. 쿠션에 머리를 처박고 아니라고 수십 번을 외쳤다. 아무런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게, 아무도 네 외침을 들을 수 없게 숨이 막힐 정도로 쿠션에 머리를 꼭 처박고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미친 듯 울부짖던 너는 어느 순간 정신을 잃고 그대로 실신했다.


너의 한 맺힌 절규가 소리 없이 공간을 흔들며 울려 퍼졌다. 감히 들여다볼 생각도 못 하고 귀 한번 기울여 보지 못했던 너의 음성과 언어가 심장과 영혼을 뚫고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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