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상실된 언어를 찾아서
그녀의 한국행은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큰 짐은 해상운송 서비스로 일찌감치 보냈지만 매일 써야 할 연서 물건이 문제였다. 기본적으로 유모차를 가져가야 했고 기저귀부터 젖병, 소독기와 장난감 몇 개만 챙겨도 캐리어 하나가 가득 찼다. 그녀는 짐을 캐리어에 욱여넣으며 끙끙 앓는 소리를 내다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당신이 같이 가는 건 어려운 거지?”
“새로운 프로젝트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회사가 좀 어수선해. 그래도 꼭 가야 하면 가야지. 혼자는 힘들 것 같아?”
“모르겠어. 연서하고 같이 가야 하니까 조금 불안해.”
“너무 걱정하지 마. 장모님 나오시기로 했으니까 어떻게든 공항만 빠져나가면 될 거야.”
“응. 그럼 되겠지?”
“그래도 못하겠으면 얘기해. 주말 끼고 휴가내면 같이 갈 수는 있으니까.”
“오래도 못 있는다며. 정말 짐만 날라주고 와야 할 텐데, 괜찮아. 내가 혼자 해 볼게.”
“휴. 추수감사절이나 연말이면 갈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항공료로 백만 원을 넘게 지불하고 한국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이틀 남짓이었다. 차라리 나중에 휴가를 끼워 넉넉하게 갔다 오는 게 그녀에게도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지금 나가 봐야 공항에서 짐을 나르는 일밖에 해 줄 수 없었다. 한번 그렇게 판단을 내린 그는 같은 문제에 대해선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비행기가 도착한 후 스카이 브릿지까지 나온 그녀가 연서를 안고 어깨에는 가방을 걸친 채 잘 다루지도 못하는 유모차를 어떻게 펼 건지 따위의 문제는 애써 무시했다. 한 손에는 유모차를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공항을 어떻게 빠져나갈 거며 혹시나 마중 나온 장모님과 길이 어긋나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지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방파제를 쌓고 사고의 흐름을 막아 버렸지만, 그녀는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불안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불안을 그에게 발산하기도 싫었다. 그는 이미 회사에서 충분히 고생하고 있으니까, 그녀가 한국에 가면서 그도 힘들어할 테니까, 더 부담을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국에 들어갈 때도, 한국에 들어간 후에도 그녀는 불안과 걱정의 소용돌이가 그녀 내면에 시나브로 침투하는 상황을 우두망찰 지켜보기만 했다.
그녀가 한국에 정착하고 3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그녀는 혼자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고, 입주 도우미를 고용한 후 강의도 나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날 때면 아버지 병원에 들러 병 수발로 지친 어머니를 도왔다. 연서와 아버지. 이제 갓 태동하는 삶과 죽음을 목전에 둔 또 다른 삶을 매일 동시에 마주해야 하는 일상은 고달프기만 했다. 자지러지는 듯한 연서 울음소리가 기억을 잃어 가는 아버지 모습과 중첩될 때면 죽음의 그림자가 언제고 연서까지 덮쳐 버릴 것 같았다. 이불을 머리 위로 뒤집어쓰고 귀를 막아도 이명처럼 연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숨이 막히고 폐가 터질 것 같아 덜컥 거실로 나가면 입주 도우미가 고개를 빼꼼히 들며 미친년 보듯 그녀를 쳐다봤다. 애를 보는 건 난데 힘들게 뭐가 있느냐는 듯한 비웃음과 조롱의 눈빛이었다. 그럼 그녀는 무안한 듯 괜히 냉장고에서 물을 한 잔 마시고 다시 어두운 방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와 싸우고 있었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육아와 시시각각 다가오는 아버지의 절망적 죽음 앞에 무력함을 느끼며 매 순간 불안에 떨었다. 며칠째 인지도 모를 만큼 밤을 지새웠고 끼니를 걸러 몸은 앙상해져만 갔다. 그러면서 신경질이 잦아졌다. 갑 티슈 주문해 달라고 했는데 왜 세 겹짜리가 아니라 한 겹짜리 티슈를 주문했냐며 따지거나, 물티슈는 한 박스만 시키지 왜 다섯 박스짜리 묶음을 시켜 사람을 힘들게 하냐고 불같이 성을 냈다. 재활용 쓰레기 분리배출하는 일요일이면 시간을 잘 맞춰 전화해야지 마침 분리수거를 한 직후 전화했다간 뭐든 꼬투리를 잡혀 핀잔을 들어야 했다.
처음엔 그도 그녀를 이해하려 애썼다. 육아가 힘든 거야 당연할 테고 아버님 상황도 알게 되어 최대한 그녀를 배려했다. 그녀가 막말하며 전화를 끊어도 그녀 화가 가라앉을 때 맞춰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따금 그녀는 마치 스스로 버림이라도 받고 싶다는 듯 매몰차게 굴었는데, 그럴수록 그도 더욱 확고히 그녀가 버림받지 않을 거란 사실을 확인해 줬다. 어떤 절대적 구원자처럼 말이다.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진정 그는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어떤 상황인지, 그녀의 정신이 얼마나 곪아 가고 있는지 말이다. 그녀에겐 이미 세상이 안전하고 살 만한 곳이라는 기본전제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그가 주려 했던 확신이란 불치병을 앓는 환자에게 괜찮을 거라 다독이는 공허한 말일 뿐 통증이라도 잊게 해 주는 모르핀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녀와 그 사이의 거리가 문제였다. 그 먼 거리 탓에 그와 그녀를 연결해 주는 건 말뿐이었다. 전화로 전달되는 ‘말’을 통해서만 그녀의 상태가 전달될 뿐 그로선 그녀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전무했다. 그가 불안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전화기 너머로 지속되는 침묵에 담겨 있는 울분과 고통은 그들 사이 긴 거리를 지나오며 여과되고 희석되어 의미를 잃었다. 이따금 울음기 섞인 불안한 말투나 폭발하듯 쏟아 내는 성화로 그녀가 겪는 온갖 고초를 어림짐작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순간 모든 건 쉬 잊히기 마련이었다. 그녀의 심장은 썩어 문드러지고 피부에선 진물이 나고 있었지만, 그는 그녀가 어떤 상태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드라마나 소설에서 흔히 봤던 ‘산후우울증’이라 이름 붙여진 증상들이 나타나는 것뿐일 거라 생각했다. 참 신기했다. 그 병명이 붙여지자 병은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됐고, 그 병명이 등장하는 수많은 사례 때문인지 누구나 겪는 평범한 무언가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그 이름 밑에 은폐됐던 참혹한 현실은 한 사건으로 인해 활화산 같은 재앙으로 폭발했다.
“있잖아….”
그녀는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 이내 아무것도 아니라며 말을 돌렸다. 하지만 그녀의 떨리던 목소리를 들으면 부쩍 잦아진 한숨 소리가 떠올랐고 아무리 눈치 없는 그였지만 무언가 일이 있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처음 떠오른 건 아버님 상태였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상황이 악화한 걸까? 아니면 연서가 아프기라도 한 걸까? 그는 무슨 일이냐며 얘기를 해야 알 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그가 그녀의 변화에 익숙해져 이제 더 이상 캐물으려 하지도 않을 무렵 그녀는 검센 각오를 다진 듯 또렷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 산부인과 갔었어.”
“산부인과? 왜?”
“...임신이래.”
“뭐? 진짜?”
그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울렁이는 감정을 애써 억눌렀다. 지금 상황에선 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기보다는 부쩍 예민해진 그녀 상황에 맞게 반응해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처음 보여 줬던 반응은 ‘놀람’이었다. 마치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듯,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듯 말이다. 그건 누가 생각해도 타당하고 어떻게 들어도 기분 나빠 할 구석 없는 안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은 아니었다. 그는 그녀가 임신했을 가능성에 대해 꽤 오래전부터 기대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샌프란시스코 맥키트릭 호텔에서 피임에 대한 그녀 말을 묵살했을 때부터였다. 그녀가 한국에 들어가 버리면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 모르니까, 너무 늦기 전에 둘째를 가지고 싶으니까, 라고 그는 생각했다. ‘임신’이란 상황은 그날 그가 마음속에 품었던 어렴풋한 의도가 현실이 된 것이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기쁨’이었다. 단번에 그렇게 임신이 되리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두 달 전부터 생리 얘기를 불안스레 꺼냈을 때나 요즘 들어 부쩍 피곤하다 말하고 자주 투정 부리던 그녀 행동을 볼 때마다 그럴 가능성을 상상했다. 물론 그는 환절기 때면 생리가 늦어져 설마 했던 게 한두 번이냐며 별거 아닐 거라 그녀를 진정시키곤 했지만 말이다.
‘진짜?’라는 되물음을 담아 표현한 놀람까지는 쉬웠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마음 깊은 곳에선 정말 둘째가 생겼다며 쾌재가 솟아올랐지만 그 기쁨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줄지는 고민이었다. 전화로 짧게 전해 들은 몇 마디로는 그녀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감지할 수 없었다. 물론 그녀가 임신에 대해 기뻐한다면 그 또한 아무런 거리낌 없이 기쁨을 표현할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기쁨보다 그녀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더 적절한 반응일 수도 있었다.
그는 숨을 죽이며 그녀 반응을 살폈다. 수화기 너머로 그녀 감정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았다. 숨소리는 차분해 보였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아직 스스로 뭘 느껴야 할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기뻐하고 싶지만 기쁨만큼 불안도 컸던 것이다. 그가 기쁨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면 그녀는 그가 자신과는 전혀 공감을 못 한다고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보단 나았다. 그마저 걱정이나 불안을 표현한다면 그녀는 대번에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장고 끝에 그는 자신에게 선택지란 한 곳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녀가 이 상황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선 그가 먼저 나서서 기쁨이야말로 지금 느껴야 할 감정이라고 그녀를 설득할 필요가 있었다.
“와, 연서 인제 동생 생기는 거네!”
“좋아?”
“당연하지.”
“너무 빠르지 않아? 연서 아직 돌도 안 지났는데.”
“아니야. 그렇긴 해도 잘됐어. 어차피 둘 낳을 거면 빠른 것도 좋지.”
“너무 힘들 것 같아.”
툭 던지듯 내뱉은 그녀의 한마디가 건조한 숲에 던져진 불씨처럼 들렸다. 그 불씨가 화마로 번지기 전 그녀 의식을 어둡고 침울한 생각들로부터 구제해야 했다.
“우리 그런 건 조금 나중에 생각하자. 나도 어떻게 할지 방법을 생각해 볼게.”
“이거 정말 잘된 거 맞겠지?”
“당연히 잘된 거지. 우리 둘째 생기는 거야. 잘된 거 맞아.”
“그래, 당신이 좋으면 나도 좋아. 알았어.”
그는 생기 넘치는 목소리와 활력으로 그녀의 불안을 씻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불안이 이미 그녀 무의식 깊숙이 자리 잡아 버렸다는 건 모르고 말이다. 전화를 끊고 그는 피어나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고 불끈 쥐어진 주먹을 뒤흔들었다. 둘째가 생길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실제로 아내가 임신했다니 믿을 수 없었다. 드디어 가족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토록 꿈꾸던 네 명으로 이루어진 가족 말이다. 연서에게는 남동생이 좋을까, 여동생이 좋을까? 사실 연서가 딸이라 둘째는 아들이건 딸이건 상관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딸이라면 그녀가 좀 더 좋아하긴 할 것 같았다. 그 역시 딸이 좋긴 했다. 그를 조금 더 많이 닮은 연서와 달리 그녀를 꼭 빼닮은 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같은 듯 다른 두 자매는 얼마나 티격태격하며 집안을 시끄럽게 할까. 뭐, 그녀의 오뚝한 코를 꼭 빼다 박은 남자아이도 나쁘진 않겠지만 말이다. 그는 온종일 그런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혼자 실실 웃기도 하고 업무를 보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거리기도 했다.
그런 그였으니 그녀가 느끼는 ‘임신’이라는 상황은 그와의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가 괜찮을 거라며 미국에서 매일 새벽에 일어나 전화하고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선물 공세를 하는 덕에 며칠간은 그가 그녀 상황에 공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가 하는 건 말뿐이란 걸 깨달았다. 스스로 자기 자신의 아픔을 느낄 수는 있지만 말한다고 타인이 그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가 그녀의 ‘아픔’이라 말하는 건 그 자신의 아픔에 견주어 이해하고 있는 자신의 척도에 의한 아픔일 뿐, 그녀가 느끼는 고통과 통증은 그가 그녀에게 ‘아픔’이란 단어로 표상하며 소통하는 무언가와 일치하지 않았다. 아니, 일치할 수 없었다. 아픔이란 건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픔을 그녀 스스로에게도 설명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건 그녀 앎의 영역에서 벗어나 무언가였다. 그녀 심중 깊은 곳에 구들장 같은 불안이 달궈져 있었지만, 그녀는 무슨 이유에 열이 나는지 알 수 없었다. 장에 바이러스가 득실대며 속은 울렁이고 매일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아팠고, 고로 존재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통증과 불안을 느끼며 그녀는 그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느꼈다. 한데 그는 고작 위로의 한마디로 그녀를 이해하는 듯, 그녀 처지에 공감하는 듯, 그래서 마치 그녀에게 어떤 특별한 존재라도 되는 양 가식을 떨고 있었다. 지금 그녀가 겪고 있는 아픔은 일도 이해 못 하면서 이해하는 양, 공감하는 양 말이다. 역겨워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그녀는 스스로가 자신 안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고통을 누군가와 나누려, 소통하려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만 갑갑해졌다. 자신 안에 갇혀 버려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초상화 속 인물처럼 사면이 가로막힌 벽에 갇혀 홀로 절규하고 있었다. 스스로의 프레임에 고립돼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도축된 고깃덩어리처럼 그로테스크한 색과 일그러진 형체로만 고통을 표현할 뿐이었다. 고통 그 자체보다 더 큰 고통은 아무도 그녀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이란 존재가 본질적으로 잘못된 무언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가장 가깝고 그녀가 가장 의지해야 할 사람은 바로 그였는데, 그조차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면 세상에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그녀가 그런 고민들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을 때, 그는 그녀의 고민을 확인이라도 해 주려는 듯 전혀 예상치 못한 얘기를 꺼냈다.
“마들렌 어때?”
“마들렌?”
“둘째 태명 말이야.”
“태명이라니?”
“연서는 태명 없었잖아. 둘째는 마들렌이라고 부르면 좋겠어. 내가 옆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하니까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
“당신 옆에 없는 거하고 태명하고 무슨 상관이야? 달라질 건 없잖아.”
“달라질 게 왜 없어? 그래도 이름을 짓는 건데. 이름으로 부르면 좀 더 가깝게 느껴질 거야.”
“이름은 왜 마들렌인데?”
“그냥. 어감이 좋잖아. 부르기도 편하고.”
“그런가?”
“그리고 마들렌이라고 하면 절대 안 잊어버릴 것 같아. 계속 떠오르는 이름이라서. 왜, 별로야?”
“아니. 난 상관없어. 근데 연서는 태명이 없었어서. 마들렌만 태명이 있으면 연서한테 미안하잖아.”
“흐흐. 봐. 이름이 벌써 입에 붙지? 너도 마들렌이라고 불렀잖아.”
“내가? 아, 그랬구나.”
“’아, 그랬구나’가 뭐야? 힘 좀 내.”
피식, 웃음이라도 터트릴 줄 알았지만 들리는 건 시르죽은 한숨뿐이었다. 그들 삶에 뜻깊은 무언가를 공유하는 순간이 이렇게 맥없이 지나갈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그때만 해도 그는 시간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다. 아직 마들렌을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시간만 지나면 모든 게 정상으로 되돌아올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녀와 심하게 싸웠던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그 역시 너무 화가 나 한동안 그녀에게 전화도 안 할 생각이었다. 반나절이 지나 그녀에게 전화가 왔을 때 그는 바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 버렸다. 여전히 화가 안 풀리기도 했고 회의 중이기도 했다. 길어진 회의 탓인지 아니면 전화를 안 한다던 다짐이 무의식중 남아 있었는지 그는 회의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했다. 한숨 자고 나니 기분은 어느 정도 풀렸고 평소처럼 그녀가 미안하다고 카톡을 남겼을 테니 바로 전화를 걸 참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온 메시지는 없었다. 전화를 해 볼까 하던 그는 이제 회사에 간다며 카톡만 남겼다. 피곤해서 잠이 들어 버렸거나 연서와 한참 씨름을 하는 중일 수도 있으니까. 일을 하며 중간중간 확인했지만 그녀는 메시지를 읽지도 않고 있었다. 그날 저녁엔 이제 잘 거라 카톡을 보냈고 다음 날 아침엔 다시 회사에 간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그녀는 메시지는 읽었지만 여전히 답을 하진 않았다. 이번엔 정말 화가 난 건가? 그는 그제야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문득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지 겁이 덜컥 들었다. 그는 운전하다 말고 허둥지둥 전화기를 꺼냈다. 다행히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그녀 목소리는 차분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
“무슨 일 있어?”
“아무 일 없어.”
“정말 괜찮은 거야?”
“어, 괜찮아.”
아무 일 없는 거면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된 거야, 그는 목구멍까지 치솟는 화를 억지로 집어삼켰다. 그리고 한동안 이어진 침묵 속에 마음을 진정시켰다.
“나 연말 되면 좀 길게 갈 수 있을 것 같아. 얘기해서 한 한 달 정도는 한국 사무실로 출근하려고.”
“그렇게 해도 되는 거야? 그럼 좋지.”
연락조차 안 됐던 것 치고는 그녀의 반응에서 호전적인 기세는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힘이 너무 없어 안쓰러운 느낌마저 드는 말투였다.
“어, 잘 얘기되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잘됐다.”
“그래, 빨리 마들렌도 보고 싶고 말이야. 이제 좀 움직여?”
“....”
“아직 움직임은 안 느껴지나 보네.”
“....”
“연서는 이맘때쯤 많이 움직였던 것 같은데. 마들렌은 얌전한가?”
“나... 병원에 갔었어.”
“병원? 왜? 어디 아파?”
“몸이 안 좋았어.”
“진짜? 말하지 그랬어.”
“이제 괜찮아졌어.”
“마들렌은?”
“....”
“마들렌은 괜찮지?”
“한 번만 얘기할게 잘 들어. 앞으로 내 앞에서 다신 마들렌 얘기 꺼내지 마!”
“어? 그게 무슨...”
“마들렌 얘기 꺼내지 말라고!”
“....”
“아무리 멍청해도 이 정도 얘기했으면 알아들은 거지?”
“...몸은 괜찮아?”
“엄마 집에 와 있어. 일주일 정도 쉬면 괜찮을 거래.”
“그래, 좀 쉬어.”
그녀 목소리는 무거웠다.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심연의 깊이가 담겨 있었고, 그래서 그는 머릿속 가득한 의문 중 어느 것 하나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 후로 며칠간 그들은 전화 통화를 하긴 했지만 길어야 일이 분이 전부였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 그녀는 어머니에게 유산했다고 말씀드렸다고 얘기했다. 다시 또 일주일이 지나고 그녀는 일상으로 복귀했다. 한편으론 연서와 부대끼고 다른 한편으론 병마와 싸우는 아버지를 지켜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마들렌이란 이름은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혼란스러웠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가 이미 마들렌에게 ‘마들렌’이란 태명을 붙였고 그 이름은 마들렌이 존재했었다는 무엇보다 확고한 증거가 되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건 껍데기뿐인 증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에게 마들렌은 ‘마들렌’이란 이름에 불과할 뿐 그는 초음파로 그려진 아이의 모습을 보거나 불쑥 나오기 시작한 그녀 배를 어루만지며 아이의 심장 박동을 느껴 본 적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흘렀고 마들렌과 관련된 그의 혼란은 점차 이름과 대상 간 관계에 대한 철학적 고찰로만 남게 됐다.
언젠가 그녀는 ‘유산’한 후로 체력이 회복되질 않는다고 말했고 그도 그 일에 대해 얘기할 때는 ‘유산‘한 거라고 말했다. 누군가 둘째를 왜 안 갖느냐고 물을 때면 유산한 후로 생각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녀에게 정신과에 가자고 처음 설득할 때 했던 말은 ‘유산’ 때문에 힘들었으니 치료받자는 거였고, 그녀가 공황 증상을 보일 때 무람없이 뇌까린 말도 ‘유산’이 힘들었던 건 알지만 이제 좀 이겨 내자는 말이었다. 그렇게 그는 그녀가 한국에 홀로 있던 6개월간의 고통과 상처를 ‘유산’이란 하나의 단어로 축약해 버렸다. 그건 그에게 ‘마들렌’ 만큼이나 공허한, 껍데기뿐인 단어였다.
그때 다시 암전된 듯 어둠이 시선을 감쌌다. 그녀는 사라졌고 그는 순간 이동을 한 듯 뮤어 우즈로 돌아와 세쿼이아 나무둥치 위에 앉아 있었다. 사방이 어두웠지만 차가운 공기와 나무둥치의 촉감 그리고 흙냄새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들렌’과 ‘유산’이라는 단어가 타자기로 찍어 낸 것처럼 한 문자씩 어둠 위로 새겨졌다. 글자가 시야에 잡히려는 순간 어둠은 물에 풀어진 한지처럼 녹아내렸다. 형태가 허물어진 문자들이 공중에 떠오르더니 세쿼이아 나무둥치 위에 새겨진 나이테처럼 나선 모양을 만들었다. 나선형으로 꼬인 문자들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다 곧 소용돌이에 휩싸인 듯 현기증 나게 돌아가며 영사기를 튼 듯 하나의 영상을 투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