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교회, 빛으로 물든 블랙

by 성세윤

녹색빛에 휩싸인 키르큐펠 산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풍경을 담다 보니, 어느덧 새벽 6시였다. 차에서 잠깐 눈을 붙일까 했지만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차가운 아침바람을 맞으며 산 주위를 천천히 거닐었다. 일출은 9시. 여명도 시작되지 않은 어둠 속의 아침이었다.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업무에 시달리다 새벽까지 술로 하루를 마무리했는데, 눈 한 번 깜빡이고 나니 이세계에 와 있었다. 이리도 쉽게 올 수 있는 곳인데, 왜 그렇게 멀게만 느꼈던 걸까. 키르큐펠을 마주한 순간 무언가 큰 일을 이룬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여행이 아직 8일이나 남았다는 사실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곧 고민이 생겼다. 원래 키르큐펠에서 일출을 볼 생각이었지만 산을 한 바퀴 돌아보니 해가 뜨는 방향이 키르큐펠의 반대쪽이었다. 2월의 일출은 산 반대 방향에서 떠올라 정면에서는 태양을 볼 수 없었다. 산 뒤로 가면 멋들어진 삼각형 형태가 흐트러져 마름꼴이 돼 버린다. 게다가 이미 오로라로 충분히 감동한 터라 일출은 다른 곳에서 봐도 좋을 것 같았다.



곧바로 구글맵을 켰다. 스나이펠스네스 반도는 서쪽으로 뻗어 있었고, 그 안에서 동쪽이 트인 해안가를 찾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때, 반도 남쪽 끝자락에서 눈에 익은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검은 교회. 인터넷에서 여러 번 본 그 명소가 정확히 동쪽을 향해 있었다.

시간은 8시. 검은 교회까지는 약 30분 거리. 일출은 9시. 마음이 급해졌다.




북에서 남으로, 스나이펠스네스 반도를 가로질렀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곡예 운전을 하며 핸들에 바짝 몸을 붙었다. 어느 순간 시야가 탁 트이며 바다가 보였고, 붉은빛 여명이 하늘에 스며들고 있었다. 눈 덮인 산맥과 바다, 그리고 구름은 여전히 블루아워에 잠겨 있었지만 그 사이로 떠오르는 붉은 여명이 강렬하게 피어올랐다. 그 광경에 정신이 아득해져 차가 미끄러질 정도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검은 교회는 해안가 끝에 서 있었다. 투박한 나무 외벽은 장식 하나 없이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누군가 기도를 나무에 새긴 것처럼 작고 단순했다. 성대한 성가대도, 웅장한 조각도 없었지만, 그 침묵 속에 말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마치 바람과 하늘을 바라보며, 오래된 믿음을 묵묵히 품고 있는 존재처럼.



여명이 퍼지기 시작할 무렵 아직 꺼지지 않은 전등빛이 교회를 비추고 있었다. 고도로 절제된 형태의 건물이 황량한 자연 한가운데 놓여 있었고, 그 모습은 오히려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마치 밀라노 성당이나 쾰른 성당을 향해 조용한 일침을 놓는 듯한 감성이 느껴졌다. ‘크고 웅장한 것만 감동을 주는 건 아니다’라는 걸, 아무 말 없이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그 소박한 풍경이 내가 쫓던 것, 바라던 것, 불안해하던 모든 것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소박하다는 생각은 잠시였다.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구름은 많았지만 수평선 바로 위는 맑게 뚫려 있었다. 해가 떠오르며 구름은 점점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곧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예술보다도 화려한 하늘의 그림이 펼쳐질 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교회가 서 있는 땅은 오래전 화산이 흘린 용암이 굳어 형성된 대지였다. 울퉁불퉁한 용암석 위에는 초록 이끼가 융단처럼 덮여 있었고, 그 풍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선을 사로잡았다. 타오르는 하늘, 검은 교회, 거친 용암석. 이 모두를 한 프레임에 담고 싶었다.


500mm 망원렌즈를 챙겨 들고 달렸다. 모든 요소를 압축해 담으려면 망원렌즈가 정답이었다. 바위를 뛰어넘으며 구도를 찾아 헤매다, 마침내 머릿속 그림이 화각 안에 차츰 들어왔다. 교회와 그 옆의 호텔, 용암석, 하늘. 상상하던 장면이 하나씩 현실이 되어갔다. 떠오르는 태양의 마법이 사라지기 전에 셔터를 눌렀고, 숨이 차오를 때까지 뛰었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심장이 터질 듯 고동쳤다.



마침내, 수평선 위로 빛이 올라왔다. 하늘은 붉게 달아올랐고, 검은 교회의 윤곽이 부드럽게 드러났다. 그 순간, 교회는 새벽의 경계에 서 있는 통로처럼 느껴졌다. 빛과 어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나와 아직 만나지 못한 나 자신 사이의 틈. 그 틈새에서 나는 조용히 하지만 뜨겁게 깨어나고 있었다.





이동경로

검은 교회: Búðakirkja


검은 교회 뷰포인트

검은교회는 교회 주차장에 주차해서 바로 앞에서 보거나 교회에 도착하기 전 도로에 차를 대고 용암대지를 전경 삼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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