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전날 보지 못했던 난파 비행기를 다시 찾아보기 위해 눈을 떴다.
관람기를 보면 추천하지 않는 이들도 꽤 있었다. 사진 한 장 남기는 것 외엔 딱히 할 게 없고, 고작 사진 한 장 남기기 위해 가기엔 시간이 아깝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묘하게 끌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DC-3 비행기가 1973년 해변가에 불시착한 뒤 지금까지 방치되어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그 비행기가 별과 오로라로 가득한 아이슬란드의 밤하늘과 만나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궁금했다.
인터넷에서 찾아 본 대로 난파 비행기 주차장을 찾자, 끝에 비포장 도로 입구가 보였다. 도로는 사유지에 있어 구글맵에 표시조차 되지 않았지만 방향만큼은 명확했다. 일직선으로 뻗은 길. 그저 앞으로 걷기만 하면 됐다.
헤드랜턴을 켜고 한 걸음씩 어둠 속을 걸었다. 고개를 들면 랜턴 불빛은 깊은 어둠에 삼켜졌고, 내 발걸음이 앞을 향하고 있는지 뒤를 향하고 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간간이 구글맵을 열어 내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40분쯤 걷자 도로의 끝이 보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왼편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무심코 그 불빛을 향해 걸어가자 어둠 속에서 삼각대를 펼쳐놓고 손을 흔드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인사를 건네자 자신을 토마스라 소개했다. 독일에서 왔다고 했다.
일면식도 없는 독일인과 별다른 대화도 나누지 않았는데 묘한 친근감이 들었다. 새벽 두 시, 불빛 하나 없는 해변가까지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린 서로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된 셈이었다. 때론 말 한마디보다 행동 하나가 더 많은 걸 보여주니까.
나는 삼각대가 토마스의 화각에 들어가지 않게 조심스레 자리를 잡았다. 그는 내가 헤드랜턴을 끌 때까지 기다려줬다. 우린 서로 타이밍을 맞춰 촬영 위치를 바꿨고, 비행기의 안과 밖에 번갈아 빛을 비추며 함께 셔터를 눌렀다.
DC-3는 시간의 풍랑에 휩쓸린 난파선 같았다. 부서지고 찢긴 동체의 상처들은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관람대나 출입제한선 하나 없이 처연하게 모래사장에 박혀 있었다. 그곳엔 아무 소리도 없었다. 침묵 속에 어떤 무거운 기억의 울림만 존재했다. 그리고 그 울림에 풍미를 더한 건 역시나 오로라였다.
오로라는 강렬하진 않았지만 무지개빛으로 밤하늘을 배회하며 시선을 끌었다. 비행기 위로 하늘거리며 녹색 띠를 드리우다 붉게 물들어갔다. 녹색빛은 망자를 소환하듯 잊혀진 비행기의 존재를 밝혔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압도적이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토마스는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아침 비행기로 독일로 돌아간다고 했다. 본업은 IT 관리자고 사진은 부업이자 취미라 했다. 사진을 찍은 지 10년이 넘었다는데 그가 보여준 사진에는 풍경에 대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나 역시 백운대에서 촬영한 운해 사진을 비롯해 대한민국의 사계절을 담은 사진을 보여줬고, 그는 언젠가 꼭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토마스가 떠난 후에도 몇 컷을 더 찍었다. 혼자 있을 때는 그저 혼자 있는 게 좋았는데, 함께 있다 혼자가 되니 괜히 옆자리가 허전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서글프거나 음울한 기분은 아니었다. 이렇게 완전히 혼자가 되는 순간이 오면 외로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추억이 떠오르며, 세상에 나 혼자뿐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리움과 허전함이 밀려왔고, 동시에 기억 속에 새겨진 따뜻한 장면들이 떠올랐다. 하늘에선 오로라가 무지개빛 리본을 휘돌리며 춤을 췄고, 감정이 고조되며 풍경과 내가 하나가 된 듯한 몰입의 순간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온전한 풍경을 두 눈에 담아보려 모든 조명을 껐다. 눈은 곧 어둠에 적응했고, 난파 비행기의 깊고 검은 실루엣이 녹색 밤하늘 아래 선명히 그려졌다.
그 순간, 희미한 별무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대각선으로 하늘을 가르는 건 은하수였다. 멀찌감치 퍼져 있던 오로라는 뱀처럼 몸을 흔들며 은하수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녹색빛은 점차 진홍색으로 번지며 아치 형태를 이루었다. 그리고 오로라와 은하수가 평행을 이뤘다. 별과 빛이 무지개로 피어났다.
단번에 시선을 빼앗긴 나는 한참이 지난 뒤에야 카메라에 손을 뻗을 수 있었다. 타이밍이 조금 늦은 건 아쉬웠지만 오로라와 은하수를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었다.
50년 전 해변가에 불시착한 비행기 잔해. 어두운 밤하늘. 오로라. 은하수.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이동경로
난파 비행기: Parking for Sólheimasandur Plane Wreck
뷰포인트
비행기까지는 셔틀을 타거나 걸어서 갈 수 있다. 셔틀은 낮 시간에만 운영되기 때문에 야경을 보려면 걸어서 갈 수 밖에 없다.
걸어서 가려면 주차장에 주차를 한 뒤 경로를 따라 4km 정도 떨어진 해변으로 가면 된다. 1시간 정도 걸린다. 한 길로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길만 따라서 가면 된다.
조심해야 할 건 비포장 도로 끝에 가면 셔틀이 유턴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오고 거기서 난파 비행기까지는 길이 없다는 점이다. 낮에야 상관없겠지만 밤에는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기 쉽다. 지형지물도 없어 방향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