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쿨살론, 잠든 호수의 노래

by 성세윤

얼음동굴 투어가 끝나니 하늘은 말갛게 개어 있었다. 산책로를 따라 요쿨살론 호수 주변을 걷는데 휘둥그레 눈이 번쩍 떠졌다. 멀리 설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호수엔 빙하의 반영이 고요히 깔려 있었다. 그 위로 푸른 하늘이 깊게 펼쳐졌다. 정오의 빛은 늘 기록적이고 건조하다고 믿어왔지만 내 편견을 보기 좋게 무너뜨리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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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감동에 사로잡혀 연신 셔터를 눌렀지만 마음에 차지 않았다. 일출이나 일몰의 붉은 색감과 질감은 눈길을 쉽게 끌지만 정오의 빙하 호수를 담는 일은 훨씬 까다로웠다. 푸른 빙하의 침정감이 투명한 대기의 청쾌함과 어우러지고, 안개가 개듯 영혼이 맑아지는 순간이었다. 그 경험을 어떻게 한낱 픽셀의 조합으로 담아낼 수 있겠는가. 잔잔한 파문같은 감정의 울림을 담아낼 사진은 없었다.

결국 카메라는 가방에 넣고 조용히 호숫가를 거닐었다.





차에 돌아와 잠시 눈을 붙였는데 어느덧 하늘이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허둥지둥 차 문을 열고 뛰기 시작했다.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아직 시간은 있었지만 서쪽 산맥이 해를 삼켜버리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낮에 미리 봐둔 일몰 포인트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15분쯤 걸렸다. 정비된 산책로가 없어 호숫가를 따라 걸어야 했다.


태양빛이 빙하 위로 비치며 만든 풍경은 장관이었다. 아침에 내린 눈이 살포시 내려앉아 풍경을 한층 더 고요하고 운치 있게 감싸주었다. 황금빛은 시선을 사로잡았고 사각사각 눈을 밟는 소리는 귀를 간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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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한 점 없었고 호수 위에 떠 있는 빙하 조각들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수면은 거울처럼 평평했고 하늘과 얼음과 빛이 하나로 섞여 환상의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한 조각 얼음처럼 고요해졌고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눈앞의 빛과 색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얼음과 호수가 해를 품고 가뭇해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누군가의 고백을 듣는 듯했다. 이 순간은 영원하지 않지만 찰나의 아름다움이야말로 가장 선명한 진실일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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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숫가 길을 따라 다이아몬드비치까지 천천히 걸었다. 해변을 거닐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막연한 감상부터 일상과 여행의 경계, 진부함과 특별함 사이의 생각들이 저녁놀에 비친 새털구름처럼 나풀거리며 머릿속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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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다시 요쿨살론을 찾았다. 이번엔 빙하호수 위로 펼쳐지는 오로라를 담기 위해서였다. 계획은 오로라를 찍은 후 잠시 대기하다가 전날 실패한 다이아몬드비치의 일출까지 보는 것이었다. 예보상으로는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다. 호숫가로 향하는 길, 간간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녹색의 오로라 물결과 별빛이 기대감을 더욱 키워주었다. 도로엔 차량 한 대 없었다.

주차를 하자마자 호숫가로 달렸다. 빠른 걸음 때문인지 아니면 벅찬 기대감 때문인지 심장이 쿵쾅거렸다. 둔턱을 따라 걷다가 비탈을 내려가 전날 봐두었던 지점에 다다랐고, 그제야 헤드라이트를 껐다. 잠시 시야는 어두워졌고 이내 녹색빛으로 물든 빙하호수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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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는 구름을 뚫고 강렬한 녹색 물결을 일으켰고 빙하는 그 빛을 받아 유령처럼 흔들거렸다. 투명한 호수엔 하늘의 녹색빛과 별들이 비쳤고, 그것은 마냥 아름다웠다. 이따금 오로라는 붉은 기운을 띠며 무지개빛으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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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로라의 물결을 따라 눈덮인 언덕 위로 올라갔다. 오로라는 산들바람에 나풀대는 커튼자락처럼 밤하늘을 감쌌고 무지개빛이 섞여 신비로움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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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하얗게 덮인 가운데 나 혼자 대자연과 마주하고 있었다. 쏟아지는 별빛은 첫 키스처럼 짜릿했고 그 감동은 쉴새없이 가슴속으로 퍼졌다. 자연의 경이로움이 내 안에 흡수되며 나 스스로 어떤 초월적 존재로 승화되는 듯 했다. 풍경과 하나가 되어 대자연이 연출하는 공연의 관객이자 배우가 되었다. 나는 한참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고개를 드니 선명한 초록빛 물결 사이로 북두칠성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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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나는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고 우주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세상이 이런 모습을 내게 보여줄 수 있을까. 어떻게 내가 이런 비경을 목격할 수 있을까. 모든 별빛이 나를 향해 쏟아졌고 오로라의 물결은 내 존재를 따스히 감싸 안았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는 상관없었다. 암흑천지 속에 혼자 서 있었지만 가슴 가득 넘치는 충만함 하나로 내 존재는 충분히 가치 있었다. 그렇게 온 우주가 나를 껴안고 내 영혼을 다독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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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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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쿨살론 주차장은 두 군데다. 주로 많이 가는 주차장은 1번 주차장으로 카페와 투어차량들이 있는 곳이다. 2번 주차장은 주로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주차장이다. 2번 주차장은 무료다.


주차장 #1: Jökulsárlón Glacier Lagoon Boat Tours and Cafe

주차장 #2: Alternative carpark to Jökulsárlón


요쿨살론 일몰 뷰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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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주차장에 주차를 하면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전망대에서 바로 일몰을 볼 수 있지만 사람이 많아 감상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다.

주차장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호수 바로 앞까지 갈 수 있는데 호숫가를 따라 걸으면 언덕 위에 있는 산책로로 이어진다. 여유롭게 일몰을 감상하고 싶다면 전망대 보다는 언덕 위를 추천한다.


요큘살론 오로라 뷰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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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를 보기엔 북쪽 전망이 트여있는 2번 주차장 쪽이 1번 주차장보다 낫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요쿨살론을 북쪽으로 바라볼 수 있다. 산책로는 언덕 위로 이어지는데 아래로 내려가 호수가 바로 앞에서 감상을 하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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