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동굴, 파란 숨결의 성소

by 성세윤

낮이 되자 차츰 하늘이 밝아졌다. 세상은 전날 낮에 보았던 청쾌한 풍경으로 변해갔다. 이제 곧 얼음동굴 투어가 시작될 참이었다.


사실 나는 오로라보다도 에메랄드빛 빙하에 더 깊이 매료되었다. 빙하는 눈이 압축되어 형성된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높은 압력은 기포와 결함을 지워버리고 다이아몬드처럼 순수한 얼음 결정만 남긴다. 그런 결정에 빛이 스며들면 긴 파장의 붉은 빛은 흡수되고, 짧은 파장인 푸른빛만이 산란된다. 결정이 두텁고 조밀할수록 파장이 더욱 정제되어 푸르고 영롱한 색이 드러난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하얀 얼음과는 전혀 다른, 짙고 깊은 푸른색의 빙하는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의 시간이 만든 예술작품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유료로 예약한 일정이 바로 얼음동굴 투어였다. 빙하 트레킹을 할까 고민도 했지만 결국 얼음동굴을 택했다. 빙하를 온전히 보기 위해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직접적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투어 집결지는 요쿨살론 주차장이었다. 거대한 바퀴를 단 오프로드 밴들이 일렬로 서 있었고, 그 앞에 각 업체들이 배너를 세워놓고 예약자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문득, 불안감이 밀려왔다. 앞으로 펼쳐질 일정이 뻔히 그려졌다. 그룹별로 시간차를 두고 같은 동굴을 방문해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주요 포인트만 둘러보고 돌아오는 식상한 투어.

하지만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얼음동굴을 보려면 투어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링로드에서 비포장도로로 들어가 10분쯤 덜컹거리는 언덕길을 달리니 주차장이 나왔다. 얼음동굴은 주차장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가볍게 언덕을 오르자 곧 입구가 나타났다. 사실 나는 드넓은 빙하지대와 크레바스를 지나 장엄하게 도착하는 장면을 기대했기에 이 다소 소박한 시작이 실망스럽게 느껴졌다. 출발 전의 불안감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실망을 느낄 틈도 없이 시야가 환하게 열렸다. 몇 걸음 들어서자 빛은 금세 사라졌고, 어둠에 눈이 적응되자 강렬한 푸른빛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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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한 그룹씩 차례로 이동하며 동굴을 둘러보는 전형적인 형식이었지만, 그 몽환적인 색채는 그런 형식을 무색하게 만들 만큼 압도적이었다. 고밀도의 얼음 결정이 가시광선의 스펙트럼을 흡수하고, 푸른 파장만 남겨 산란시키며 만들어낸 빛은 초현실적이고 신비로웠다. 그 빛은 마치 빙룡의 비늘처럼 얼음의 표면에 스며들었고, 두께와 각도에 따라 명암과 채도가 달라졌다. 영롱한 푸른빛은 현실 너머의 세계로 날 이끌 듯 유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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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를 따라 우리는 점점 동굴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한쪽 벽면은 푸른빛이 흐르고 있었지만 반대편은 어둠뿐이었다.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 속에서 에메랄드빛은 점점 진해졌고, 동굴의 풍경은 더욱 신비로워졌다. 투어의 마지막 지점에 다다랐을 때, 나는 출발 전 품었던 걱정과 회의가 모두 씻겨 내려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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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동굴은 매년 겨울 새롭게 만들어졌다가 여름이면 사라진다고 한다. 이 동굴 또한 작년 가을에 처음 발견되었고 5월이면 폐쇄된다. 매년 똑같은 투어라 해도 같은 동굴을 다시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심지어 같은 동굴이라도 같은 모습은 없다. 얼음은 조금씩 녹고, 동굴의 형태는 매일 조금씩 변한다. 시간대에 따라 빛이 달라지고, 그로 인해 내부 풍경도 매 순간 달라진다. 이 세상에 단 한순간도 같은 동굴은 없다.


생각해보면 세상의 모든 순간이 그렇다. 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지구는 자전과 공전을 멈추지 않고 나는 매 순간 다른 위치에 서 있다. 태어나 지금까지 나는 단 한 번도 같은 자리에 서 있던 적이 없었다. 태양조차도 팽창하는 우주의 흐름 속에선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화 속에 있다. 모든 순간은 단 한 번뿐이다.

하지만 내 인식은 그중 반복되는 패턴을 기억하고 그 안에서 '익숙함'과 '특별함'을 나눈다. 그래서 우리는 반복 속에서 단 하나의 특별한 순간을 찾고자 한다. 해가 뜨는 순간,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오후, 별이 쏟아지는 밤. 심장이 두근거리는 그 순간을 찾아 일상을 떠나고 여행을 떠난다.

어쩌면 진부함과 특별함의 차이란 순전히 인식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서울에서의 진부함을 피해 아이슬란드로 날아왔고, 그 아이슬란드에서도 다시 얼음동굴을 찾았다. 그리고 나는 동굴을 걸으며 더욱 특별한 한 장면, 황혼빛이 입구에 비치며 황금과 푸름이 섞인 환상적인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다.

진부함과 특별함이 인식의 산물이라 해도, 외부의 자극은 그 인식을 흔들고 때로는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시선이 바뀌면 익숙한 것도 새로워지고, 본질적으로 새로운 풍경 앞에서는 인식이 바뀐다. 그러니 같은 것을 새롭게 보려는 시도든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여정이든, 둘 다 의미는 있다.


어느덧 동굴의 끝에 다다랐다. 반원형의 틈새를 통해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 끝은 황금빛으로 반짝이다가 서서히 에메랄드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빛을 따라 걸었고 출구 너머에 해가 걸려 있었다. 앞서 출발한 팀이 동굴 밖에서 서성이며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빛은 지는 해와 만나고 물방울에 반사되어 황금색으로 번쩍이다 이내 푸른빛으로 산란됐다. 내가 아이슬란드 행 비행기표를 예약하며 상상했던, 바로 그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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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동굴의 출구가 하나의 눈동자처럼 보였다. 동굴 안과 밖의 경계, 세상과 나의 경계. 빛을 투과시키는 눈동자, 그 빛에 반응하며 의미를 만들어내는 나. 그 모든 과정이 너무도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세상을 이해하고, 그 속의 나를 이해하려는 갈망. 그것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인간의 본능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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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동굴 투어는 요쿨살론에 있는 투어차량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어떤 투어를 이용하건 같은 주차장을 이용하기 때문에 출발점은 같다.

주차장에서 얼음동굴 진입로는 8km 정도 링로드를 따라 동북 방향으로 가면 된다. 링로드에서 F로드로 빠지는 길이 있는데 안내판이나 도로번호가 없기 때문에 잘 보면서 가야 빠질 수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투어차량이 출발할 때 따라가면 된다.

진입로에 들어서면 투어차량들은 F로드를 따라 들어가는데 일반차로 들어가면 웅덩이에 빠지거나 언덕길에 미끄러지기 쉽상이다. 하지만 몇몇 군데를 제외하면 비교적 평지라 걸어갈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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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간다면 진입로 바로 앞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길을 따라 쭉 들어가면 된다. 투어차량들이 주차하는 주차장까지는 7km로 1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다.

얼음동굴과 빙하 트레킹은 모두 주차장 인근에서 하게 된다. 위치는 매년 바뀌지만 입구까지 길을 다져놓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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