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은정 Oct 27. 2024

동우와 재한 (2)

소설 연재

“저는 형이 교대에 계속 다녔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재한이 흠칫 놀라 고개를 갸웃했다. 동우는 생각에 잠긴듯 안주를 오물오물 씹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수정할 부분이 있는 건가, 재한은 가만히 동우를 기다렸다.


"아, 아니다. 그럼 형을 모르게 되니까, 한국대 1년 다니고 나랑 인생과 진로 설계 수업 듣고, 다음 해에 다시 교대로 돌아가는 거지."


미간을 잔뜩 찡그린 동우의 표정은 퍽 진지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재한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다만 그런 마음이라면 재한도 마찬가지였다. 상대가 동우라면, 인연을 맺기 위해 1년 정도는 헤매도 괜찮았다. 기꺼이 그럴 수 있었다. 재한은 동기 중에도 가장 나이가 많았고 왠만하면 어딜가나 연장자였다. 재한은 고작 네 살 차이로 유세를 부리고 싶지 않았다. 물론 상대가 네 살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다른 문제였지만. 재한은 만나는 모두에게 말을 편하게 해라, 존댓말을 쓰지 말라고 습관처럼 말했다. 처음에는 대부분 어려워하면서도 이내 말을 편하게 해주었다. 동우만 예외였다. 처음에는 내가 불편한가, 하고 재한이 동우를 어렵게 생각했는데, 인생과 진로 설계 수업으로 꽤나 친해진 이후에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다. 재한은 동우의 꾸준한 존대가 타인에 대한 조심스런 태도, 선을 지키려는 노력 같은 것의 토대로 작용하는 건가 싶어 그 뒤로는 언급하지 않았다. 동우가 편하다면 그 방식은 어느새 재한에게도 편한 것이 되어 있었다.


"교대?"


재한이 물었다.


"형이 잘하는 걸 알거든요. 그리고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게 뭔데?”


내가 잘하는 걸, 좋아하는 걸 타인에게 알려달라고 하다니. 말하면서도 어딘가 머쓱했지만 재한은 그렇게라도 알고 싶긴 했다. 정확하게는, 지금 재한이 잘하고 또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타인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형은 좋은 보호자 같아요. 행정적인 의미로 보호자가라기 보단… 상처받거나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 품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 그래서 저는 형이 교대다녔다고 했을 때 정말 잘어울리는데 굳이 여길 왜 왔지 하는 생각부터 들었거든요. 공부도 잘 가르쳐주겠지만, 한 명의 어린 마음도 어긋나거나 소외되지 않도록 정서까지도 잘 챙길 것 같아서요.”


동우는 약간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시선을 떨구었다. 재한은 동우의 말이 고마워 가슴이 뜨끈해지다가도 이내 답답해왔다. 아주 현실적인 문제 하나가 마음에 걸려서였다. 사실 그 문제야말로 동우의 발목을 묶고 있는 가장 무거운 추이기도 했다.


"한국대 오려고 4년을 돌아왔는데 다시 교대로 돌아가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을까?"


“4년. 뭐 이런 숫자는 사실 아무런 상관없어요. 그건 이미 지나간 거고, 매몰비용이애요. 현재의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어요. 미치게 해서도 안되고. 학교 이름값 같은 건 더더욱 상관없어요. 뭐 살다보면 어딘가에선 졸업장 덕을 볼 수도 있겠죠. 근데 그거 하나 붙잡고 있기엔 기회비용이 너무 크잖아요. 만약 그 대가가 진짜로 꿈을 잃는 거면 어쩌려고요. 특히 우리같은 반골 기질들은 하고 싶은 걸 해야 해요. 우리 인생과 진로 설계 수업에서 그런 이야기 많이 했잖아요. 고등학생때 까진 선생님한테 뭐든 물어보고 행동하라고 해놓고 학교 하나 상급으로 진학했다고 전공까지 결정하라고 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고. 그래봤자 고작 스무살. 많아봤자 이십대 초반들인데. 누군 스물에 다 결정할 수도 있겠죠. 또 다른 누구는 더 걸릴 수도 있는 거고. 아마 우리는 후자인 것 같지만, 그냥 좀 돌아왔다, 그라고 마는 거죠."


재한은 순간, 동우에게 무언가를 들킨 것 같아 가슴 저변이 서늘해왔다.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는 거지? 뭘 알고 하는 말일까? 재한에게는 동우를 포함하여 그 누구에게도 털어 놓지 않은 속마음이 하나 있다. 내면 저 깊은 곳에 꽁꽁 숨겨 놓고 자기 자신 조차도 외면하고 있는 마음이. 요즘 재한은 그의 첫 번째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스무 살에, 재한이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했던 그 선택이. 다시 교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고민하고 있는 요즘이 재한의 인생에 닥친 가장 큰 난관이었다.


누군가 이런 재한의 마음을 듣는다면 바보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럴거면 왜 굳이 사수 씩이나 했대? 하고 비웃음 짓더라도 재한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할 것이다. 성인 씩이나 되어서 남 탓을 할 수는 없으니까. 그건 정말로 비겁하니까. 그땐 나도 사정이 있었어,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변명이라면 구구절절 밤을 새서도 할 수 있지만 결론은 같을 것이다. 남 탓 하지마. 설령 그런 날이 오더라도 벽을 보고서나 하겠지. 아마 그건, 동우에게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전 09화 동우와 재한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