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비

흑백의 끝에서 4/ 옳고 그름. 또는 바른 일과 사악한 일.

by 하노


[흔히들 말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작은 사랑일지 모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 사랑이 아닐까]

-이기주 <언어의 온도> 中




조용한 새벽이었다. 하늘을 보고 있었지만 별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변두리 주유소, 건너편 풀숲에 둘은 누워 있었다.


"앗 차가워"


빗방울이 떨어졌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늦었다. 데려다줄게"


아쉬웠다.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다. 소년은 발걸음을 늦추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소녀는 작은 목소리로 고백했다.


"난 말이야.. 새벽 비보다는 아침 무지갯빛이 더 좋더라."


잠에 취했는지, 저녁에 마신 맥주 때문인지 무심하게도 그녀의 말이 머릿속에 깊게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4년이 지났을까. 둘은 주변인들 사이에서 나름 알만한 장수커플이 되었다.


물론 좋기만 한 4년은 아니었다. 싸우고 성장하며 서로가 돈독해졌다고 믿고 있었다.


"헤어지자"


그의 양쪽 볼이 시뻘게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하지만 소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지 않았다.


항상 무엇을 하면 좋아할지 고민했다.

소녀의 그림자를 밟고, 네가 사랑하던 것이 나와 같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생각이 다르면 고쳤고, 입맛이 달라도 맞추었다. 그녀의 생일과 기념일엔 좋아할 선물을 고르느라 밤낮을 지새웠다. 노력이었고, 사랑이라 생각했다.


소녀는 말했다.


"서서히.."


서서히라는 말에 소년은 침묵했다.

산수가 내려 바위를 가른다는 말이 있다. 서서히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세상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말 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우리는 항상 고민한다. 그 사람은 무엇을 좋아할까? 그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반대로 그 사람이 무엇을 싫어하는지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또 그것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적이 있는가?


소년은 다짐한 듯 헛기침을 하고는 웃음을 지었다.

4년 전 같이 풀숲에 누워 서로를 마주 보던 그 웃음이었다.


새벽 비 보단..
아침 무지갯빛이 더 좋다고 했지?
정말 미안해, 눈치채지 못했구나
왜 이렇게 젖었어..



keyword
이전 03화짧아지는 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