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끝에서 5/ 옳고 그름. 또는 바른 일과 사악한 일.
[일반적으로 악몽은 길고 정교한 꿈속에서 이루어지며 대부분 잠에서 깨어나면서 끝나게 된다. 꿈의 내용은 주로 추적·공격·손상 등 절박한 신체적 위험과 관계된 것이지만 실제적인 사건과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
"악"
실랑이가 벌어졌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아저씨와 어느 소년의 싸움이었다.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열일곱 무렵이었을까, 밤엔 제법 쌀쌀한 늦여름이었다. 일당을 받지 못한 채 거리를 나섰다. 미치도록 분하고 서러웠다. 집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빈손으로 들어가는 것이 죽는 것보다 싫은 나이였다.
가족이라고는 4살 터울에 남동생이 하나 있었다. 공사현장에서 훔친 담배를 입에 물고 아침을 차린다. 딱히 요리는 하지 않는다. 자원봉사자들이 3주에 한 번씩 반찬들을 가지고 온다. 집에선 밥을 잘 먹지 않으니 동생 혼자 먹기엔 거뜬하다. 집을 나가기 전 동생 녀석이 웬 종이를 한 장 건네었다. 취소 사인을 해달라는 것이다. 키가 작아서 놀이기구 탈 게 없다나 뭐라나..
딱히 이런 삶에 불만을 가진 적은 없다. 허리를 다쳐 걸음걸이가 이상하고 돈이 조금 부족하지만 동생 녀석이 제법 귀엽다. 부서진 오토바이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부서진 걸 알지만 다시 한번 쳐다봤다. 허공에 소리를 지르고 발길질을 해댔다. 그때 그 사고만 아니었더라면 일을 더 할 수 있었다. 돈만 있으면 더욱 행복해질 수 있을 거 같았다.
골목길 슈퍼 아저씨가 집을 찾아왔다. 동생이 물건을 훔쳤단다. 주머니를 보니 반쯤 먹다 남은 양갱이 하나 있었다. 아저씨 말로는 벌써 여러 번이라 한다. 지금은 돈이 없으니 다음 주에 돈을 드린다고 했다. 아저씨는 포기한 듯 길을 내려갔다. 얼굴을 보니 여러 할 말을 참은 거 같다. 나는 담배를 한대 물고 물이 반쯤 담긴 페트병에 재를 털었다. 동생을 꾸짖었다. 그리고 몇 없는 친구 놈들에게 돈을 빌려 동생의 수학여행 경비를 내어 주었다.
오늘은 동생이 돌아오는 날이었다. 아침을 차릴 필요가 없어 새벽에 상하차를 했다. 돌아오는 길, 한 손엔 내일 붙일 전단지들이 있었다. 오후가 되었고 모처럼 식재료를 샀다. 생수를 살까 하다 음료수를 하나 골랐다. 물은 근처 상가에서 페트병에 떠다 마시면 되니까. 기분이 좋았다. 양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집으로 들어오는 기분이라.. 집 앞에 쓰러진 오토바이를 보고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손을 씻고 나오니 전화가 울렸다. 병원이란다.
어지러웠다. 당장 보내준 주소로 달려갔다. 허리가 아픈 나머지 뛰는 모양새가 곡예를 하는 듯 했다. 어떠한 소리도 누구의 시선도 들어오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동생은 이미 수술 중이었다. 흰색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말을 걸어왔다. 동생이 위급하단다. 그분에게 모처럼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그 당시 상황을 물어보았다. 줄지어 횡단보도를 건너다 동생이 가방에서 다 마신 페트병을 떨어뜨렸고 다시 페트병을 주으려 도로로 뛰쳐나갔단다. 이야기를 끊었다. 사실 뒤에 말한 내용은 더 이상 내게 들어오지 않았다.
목이 메었다. 숨이 가쁘다 못해 쉬어지질 않았다. 소리를 악 지르고는 잠에 들었다. 기절을 한 것이다.
시간이 조금 지났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정신을 차리며 살고 있을 무렵은 나는 이미 성인이 된 후였다 . 허리가 완전히 호전되지 않았지만 빚을 갚기 위해 일을 하고 있다. 생활에 바뀐 것은 없다. 집은 그대로지만 혼자 살기 좁지 않다. 밥은 간단하게 해 먹는다. 하지만 요즘 잠자리가 좋지 않다. 악몽을 꾼다.
무엇인가에 쫓기거나, 약탈을 당하는 꿈을 꾼다. 쫓기다 막 다른 길,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저항했고 상처를 입었다. 꿈속에 나는 피를 흘리며 눈물을 쏟고 있었지만, 어디선가 나는 단내에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악"
소리와 함께 꿈에서 깨었다.
밖을 보니 깨진 창문사이로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