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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꽃 Nov 21. 2022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스며들다.

부부가 오랜 시간 맞춰 간다는 것_


19년 전 남편을 처음 만나 연애할 당시 우리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사람이었다. 그런 그와 나는 막 시작하는 여느 커플처럼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을 함께 먹으며 평범한 일상 데이트를 즐겼다.



"머 먹고 싶어? 배고프다. 맛있는 거 먹자!"



그의 말속에서 '맛난 거 먹으며 오늘 우리 즐거운 데이트 하자!'라는 자상한 표현이 보였다. 사실 그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를 가면서 이미 함께 가고픈 장소까지 찜해두었지만 잠깐 사이에 고민한듯한 말투로 그에게 말한다.



"피자에 파스타 먹을까?"



그는 나의 메뉴 선택에 "그래, 그러자"며 호응했고 아까 찜해둔 식당으로 그와 함께 향한다. 그는 분명히 메뉴 선택 전에 배고팠다고 했음에도 얼마 먹지 못하고 수저를 놓는다.



데이트 몇 번 후 꺼낸 얘기지만 그는 피자, 파스타 따위의 이탈리안 음식을 잘 못 먹는다고 했다. '연로하신 부모님과 살아서 많이 접하지 않았나?' 그는 전형적으로 토속적인 한식을 좋아했고, 활어회나 해산물을 좋아했다. 파스타나 피자는 음식에서 나는 향이 본인에겐 역해서 살면서 거의 먹지 않았다고 했다.



그에 비해 나는 '고기가 최고'라고 외치던 육식파 아버지의 식성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어릴 적부터 육식 위주의 식단으로 많이 접했던 터라 그런지 그와 데이트할 때 삼겹살 집에 가는 게 가장 좋았다. 하지만 그가 좋아한다는 활어회 그 날것의 식감과 해산물에서 나는 그 각각의 향이나 물컹한 식감이 싫어서 잘 먹지 않았다. 무난히 많이들 먹는 회는 그나마 뱃속 채우려고 먹기는 하는데 딱히 좋아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회는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데이트 초기 메뉴 선정에 제한이 좀 있었다. 그가 기본적으로 싫어할만한 음식점을 피하고, 내가 싫어하는 회 종류의 식당은 피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피하기만 하는 방식도 잠시였다. 어느 순간 그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음식을 나도 경험하며 같이 즐기고 싶었다. 기회가 있을 땐 나도 한 젓가락 한 젓가락 먹어보고, 또 그는 내가 좋아하는 피자, 파스타를 한번 먹어 보겠다고 했다. 많은 양은 아니어도 상대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부작사부작 그렇게 시작했다.



'이게 얼마나 맛있는 건데 못 먹어?' 따위의 상대방 마음 불편한 강요가 아닌 그저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조금씩 함께 접하고 있었다.



지금의 우리 부부는 피자도, 파스타도, 회도 없어서 못 먹는 식성까지 닮은 부부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가치관도, 취미도, 음악적 취향도, 노후에 그리고 싶은 그림까지도...

심지어 나는 고향이 강원도인데 가끔은 충청도 사람인 그의 말투까지 닮아 있다.



시간이 지나니 선명히 보인다.

그와 나는 그간 사부작사부작 서로에게 맞춰보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을...

가랑비 옷 젖는 줄 모르듯이

그는 나에게

나는 그에게 서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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