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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꽃 Dec 07. 2022

만삭 몸으로 강남역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남편 앞에서 꺼이꺼이 눈물 쏟은 날_


공무원으로 재직 할 당시, 같은 사무실에서 친하게 지낸 두 명의 임용 동기 언니들이 있었다.  신입으로써 상큼하게 하고 다닐 의지도 바로 꺾인 채, 우리 셋은 첫 발령지에 투입되자마자 정말 하루하루가 멘붕의 나날들이었다. 누가 공무원을 편하다고 하는가. 예쁘게 화장하고 출근했음에도 오후엔 그 화장이 다 무너져내려도 잠시 고칠 새 없을 정도로 다들 너무 고생하던 우리.  그 전쟁터 같은 일터에서 우린 전우애로 더 끈끈해졌다.  그 사이 하나둘씩 결혼하기 시작했고, 약속이나 한 듯 나 포함 세명이 두 달 사이에 모두 비슷하게 임신을 한 거다. 그렇게 일터와 임신, 출산으로 우리는 더 까워졌다.



하지만, 그 둘은 인사교류를 통해 본인들이 살던 서울시로 전출을 했다. 이곳에 남은 자인 나는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린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그들과의 각별한 인연의 끈은 놓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둘째를 임신을 했다. 출산 한 달 남짓 남았을 시기, 점점 배는 불러오고 둘째를 낳으면 당분간 그녀들을 못 볼 거 같아 비슷한 시기 낳아놓은 4살 꼬맹이들과 같이 어울릴 겸 둘째 출산 전에 꼭 보기로 했다.



한 명은 영등포구, 한 명은 광진구. 나는 화성시 동탄.



언니들이 이이들을 데리고 운전해서 고속도로를 달려 동탄으로 오기에는 너무 위험해 보이고, 나만 큰애를 데리고 서울 가는 광역버스를 타면 그래도 언니들이 수월할 것 같았다. 만삭인데 몸이 너무 힘들지 않겠냐는 언니들의 말에 괜스레 나 때문에 신경이 쓰일까 싶어 먼저 나서서 괜찮다며 내가 가면 된다고 걱정 말라고 했다.



남편은 내게 4살인 첫째까지 데리고 가면 몸이 너무 힘들지 않겠냐고 우려스러워했다. 나는 언니들과의 모임에 아이들도 나올 텐데, 같이 가면 아이도 사회성(그놈의 얼어 죽을 사회성...)에 좋고, 남편도 아이 없이 오롯이 편하게 주말을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 몸이 많이 무거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일석삼조 같은 이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다행히 우리 집 근처에 강남역으로 바로 가는 광역버스가 있어서 문제 될 게 없다.  4살 꼬맹이 큰 애 손을 잡고 서울로 향했다. 강남역에서 내려 잠시 택시를 타고 이동해서 만난 키즈카페. 오랜만에 보고싶은 언니들도 보고, 불쑥 큰 언니들의 미니미 아이들을 봐서 너무 반가웠다. 아주 잠시...



그 후 즐거운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은 순식간에 착각으로 돌아왔다. 유난히 아이가 힘들게 하는 날이 있는데 내게 그날이 그랬다. 키즈카페에 아이들이 서로 재밌게 노는 사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도란도란 언니들과 수다를 떨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말았다. 당시 내 아이는 너무 엄마 껌딱지였다.



"엄마~ 일루와 바~"

"엄마~ 일루와 봐~"

"엄마~ 일루와 봐~"



나를 쉴 새 없이 계속 불러댔다. 아이는 앉아서 뭔가를 먹을 틈도 안 주고 계속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몸이 점점 지쳐갔다. 배뭉침이 심해지고 아랫배가 슬슬 아파왔다. 집에 빨리 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럴 땐 또 애들이 집에 가지도 않는다. 내 몸은 점점 힘든데 자꾸 먼가 시간이 늘어진다.



겨우 헤어진 후 강남역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한겨울이라 감기 걸릴새라 아이 점퍼, 목도리, 모자, 내 점퍼, 바리바리 애 짐가방. 너무 무겁고 몸이 둔했다. 동탄 가는 버스만 올라타면 되는데. 정류장까지 걷기도 너무 힘에 겨웠다. 도저히 이제 한 발자국도 못 걸을 정도로 몸의 한계에 다달았다. 급작스레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배가 더더욱 뭉치고 밑이 빠질 것만 같았다. 식은땀이 나고 한 발짝씩 내딛는데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천방지축인 아이 손을 잡은 채 결국 집에 있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나 너무 미안한데 도저히 못 걷겠어. 와 줄 수 있을까? 얘(4살 큰애)도 나를 너무 힘들게 해."

 


다행히 남편은 바로 출발하겠다고 했고, 그 사이 바로 앞에 보이는 도넛 가게로 겨우 몸을 이끌고 들어갔다. 앉아서 초콜릿 잔뜩 묻은 도넛 먹는 아이의 모습이 오늘따라 너무 미워 보이고, 이곳은 어디,  나는 오늘 뭐한 건가 싶은 생각에 온 몸에서 짜증이 올라오고 망부석이 돼버린 내 몸과 배를 바라보며 영혼 털린 채로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남편이 총알같이 왔다. 어디로 찾아와 달라고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는데도 정말 귀신같이 우리를 찾았다. 길에 서서 남편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 강남역 한복판에서 갑자기 드는 여러 복잡한 감정에 남편을 보자마자 그의 양팔을 붙잡고 꺼이꺼이 울었다. 내 눈에선 눈물이 흐른 게 아니라 마치 멈출 수 없는 댐 수문이 터진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남편을 부여잡고 울었다. 내가 오늘 뭘 한 건가 싶기도 하고, 이 주말에 이곳에 오지 않아도 될 남편을 불러들인 내가 너무 한심하고 그지 발싸개 같았다. 남편은 그 사람 많은 강남역 한복판에서 우는 만삭인 나를 한참을 끌어안아줬다. 그리고 내게 나지막이 귀에 대고 말했다.



"색시야~ 누가 보면 임산부인 당신 때리기라도 한 줄 알겠다. 나 지금 사람들 눈치 보고 있다?"



남편의 또 그 싱거운 개그에 울다 말고 창피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남편 덕분에 그래도 집까지 안정을 취하며 편하게 왔다. 돌아와서 언니들에게 카톡을 했다. 빙구 같이 질질 짜며 남편까지 불러들인 일은 괜스레 언니들한테 얘기해봐야 그들이 혹여나 미안해할까 봐 함구했다.



"언니들~ 잘 들어갔지? 오랜만에 봐서 너무 좋았다. 그치?




강남역 한복판에서 꺼이꺼이 울었다.

그 사람 앞에서.

나의 진짜 민낯을 보는 사람.

늘 무장해제된 나를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사람.

나 스스로 자책하며 심적으로 힘들었던 그날.

강남역에서 그가 나를 다그쳤거나 잘잘못을 따졌다면,

그날의 하루는 내게 지우개로 박박 지우고 싶은 날일 거다.

그렇지가 않아서 너무 고맙다.



부탁 받으면 거절 잘 못하고, 남한테 부탁하는 건 너무 어려운 내 거지 같은 성격 탓에 착하고 친절하다는 평은 받지만 가끔은 내가 나 스스로를 너무 챙기지 못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날은 내가 조금 더 나를 신경 써줬어야 했다. 거두절미하고 그냥 잠자코 집에 있었어야 했다. 내가 나를 신경 쓰지 않은 여파가 너무 컸다.



그날 아무말 하지 않고 나를 온전히 받아줘서 너무 고마워요.

이미 나 스스로도 내가 못났다고 생각한 날.

당신까지 내게 화살을 날렸으면 나 정말 힘들었을 텐데.

한겨울 강남역 길거리 한복판에서

당신 품에서 펑펑 울고 마음 추슬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날 만큼  진짜로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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