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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꽃 Mar 03. 2023

남편이 내게 정색한 날


아마도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 때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남편인 그가 내게 정색하던 날.



나른한 주말 오후 남편이 욕실에서 한참을 있다가 나오던 날. 욕실 매트 바로 옆에는 늘 아침마다 자극받기 위해 둔 체중계가 있었는데 문득 그 체중계를 보면서 그에게 다가가 싱거운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우리 돼야지~ 몇 근이나 나가나 보자."



내 딴에는 장난을 친다고 그런 소리를 했는데 남편이 나의 그 짧은 한마디에 정색했다. 그는 내게 잔소리를 하거나 특별히 싫은 티를 사람이 아닌데 순간적으로 그의 표정이 굳은 게 보였다.



"OO아~ 아무리 장난이어도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말을 조심히 가려서 해야 하고 선을 지켜야 해. 한번 말이 잘못 나가면 다음엔 더 심해져. 애초에 그런 말을 안 해야 해. 나 당신한테도 아무리 5살이 어리다고  한 번도 야! 너!라는 표현 안 쓰는 거 알지? 항상 말 예쁘게 하려고 하는 거 알지? 가까울수록 예의를 지키자."



그의 몇 마디에 내 눈동자가 흔들렸다. 단 한마디의 변명도 없이 내가 실수했다며 수긍하고 그에게 사과했다. 그의 앞에서  특별히 표정 변화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가 내게 평소에 하는 언행을 떠올려보니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생각해 보면 남편은 연애 기간을 포함해서 현재까지 단 한 번도 나의 외모 등으로 빈정 상할 장난 친 적이 없다. 아무리 내 몰골이 흉한 날에도 그날의 나의 컨디션을 살펴주는 사람이었지 외모 등으로 나라는 존재 자체를 얕잡아보는 언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 먹을수록, 함께한 세월이 더 늘어날수록 그는 항상 기분 좋은 말씨를 쓰고 내가 늘 존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 당시 남편이 내가 한 장난에 "그럼 너도 한번 몸무게 재보자~ 이 돼지야~" 이런 식의 대화가 오고 갔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그 이후로 우린 서로 장난인 듯 장난 아닌 진담 같은 말새로 점점 서로를 할퀴며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지인들과 가볍게 장난으로 시작한 '야자타임'도 어떨 때는 어딘가 모르게 씁쓸하고 떨떠름한 마음으로 끝났다. 애초에 한 번 튀어나가면 다시 주워 담을 수없는 언행은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가까울수록 더더욱.



그런 그의 마인드에 긴 세월 함께하면서 나도 그에게 많이 스며든건지,  남편에게 장난을 치고 싶다며 내뱉은 그날의 그 한마디는 나의 뇌 전두엽 거치지 않은 채로 내뱉은 말이었고, 경박하기 짝이 없는 언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 장난스러운 한마디가 머가 문제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부부 간에도 항상 서로 예를 갖추어야 하고 막역한 관계라 하더라도 항상 기본적으로 존중하는 언행을 하는것이 진짜 중요한 포인트라는 데에 있다.



남편이 나에게 정색하며 말했던 그 일을 그가 현재까지 기억을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에게 들은 말로 인해 나의 어떠한 다짐을 하게 되는 계기였기에 그 날의 다짐을 떠올리며 이 글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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