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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꽃 Dec 19. 2022

엄마는 내 남편이 이상형이라고 했다.


내 나이 사십, 기억을 더듬어 나의 22살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한다. 대학 다닐 시절, 집 근처 카페에서 용돈벌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손님으로 알게 된 남자. 현재의 내 남편이다. 학창 시절 소소한 썸이나, 연애는 해봤지만, 그를 한 달 정도 만나던 시점부터는 '결혼은 이 남자구나!' 하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분명 오랜 기간 연애를 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촉이 왔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기만 해 보이는 그 22살 나이에.



그전에 남들도 이런저런 연애를 하니까 나도 해보긴 했지만 누군가가 내게 정성을 쏟는 애정을 보여도 희한하게 특별한 감정이 올라오지 않았다. 연애란 게 원래 이런 건가 했지만 그 와의 연애는 달랐다. 연애 한 달쯤 지나서 엄마에게 나의 속마음을 꺼냈다.



"엄마! 나 만약 결혼하면 이 남자가 맞는 거 같아."



나의 엄마는 내가 어릴 적부터 이런저런 하는 말에도 아이라고 무시하거나 대충 듣고 흘리는 분이 아니셨다. 나의 중학교 시절, 첫사랑에게 차인 이야기도 엄마 앞에서 눈물 흘리며 얘기할 때도 나를 진심으로 따뜻하게 다독여주셨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엄마는 늘 나의 연애 감정을 어렵지 않게 오픈할 수 있는 분이셨다. 하지만 22살 대학생 딸이 '결혼'이라는 단어를 꺼내며 이러한 얘기를 할 땐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설 것이다.


 

22살 대학생 딸이 27살 직장인과 만난다는 점. 거기에 '결혼'이라는 단어를 꺼낸다는 점. 지금에야 5살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당시 학생 신분인 나의 상황을 보자면 현재 나도 딸 키우는 입장으로 더 언급 안 해도 그때 당시의 엄마의 감정을 충분히 알 것만 같다.



엄마는 그 전 나의 남자 친구 연애 때와 마찬가지로 자리를 만들어 그와 내게 밥을 사주셨다. 사실 이번엔 나이가 있는 청년이라 그와 처음 보던 날은 술을 한잔했다. 같이 만나기 전 걱정스러워했던 엄마가 그와 한참 나눠본 대화 이후 그가 썩 마음에 드는 눈치다. 내가 그를 향해 느끼는 포인트를 엄마도 느끼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건 '사람이 풍기는 따뜻하고 편안함'이다.



그 후 엄마는 며칠 후 내게 밑도 끝도 없이 점을 보러 가자고 했다. 나와 의 궁합을 보고 싶은 거다. 점집에서의 궁합은 어떻게 나왔을까? 거두절미하고 27살쯤 돼서는 더 좋은 남자가 나타날 터이니 적당히(?) 사귀라는 말을 들었다. 근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적당히가 가능하지 않았다. 이미 우리가 인연이 된 이상 달라질 건 없었다. 궁합을 본 후에도 엄마는 나의 연애에 이래라 저래라가 없었다. 그저 나의 선택을 믿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점집에 가자고 했던 이유는 내가  걱정스러워서라기 보다는 그에 대한 믿음과 확신은 드는데 먼가 주술적인 확인을 더하고 싶었지 않나 싶다.)



연애 당시 남편은 경기도 광주에서 서울 양재로 출퇴근을 했는데 그 교통지옥 구간을 지나면서도 성남에 살던 내게 자주 과일을 갈아서 스무디를 만들어 내게 전달해주고 출근을 했다. 그는 매사 자상하고 부지런했다. 가까운 지인의 장례식장에서 술도 안 먹고 날밤을 꼴딱 새고선 말도 없이 서프라이즈로 나의 집 앞에 기다렸다가 내 공무원 응시 시험장에 데려다주기도 했다. 이런 애정이 끊임없이 여러 모양새로 나왔다. (내가 그래도 시험에 합격했던 건 8할이 그의 덕분이다.) 그는 6년의 연애기간 동안 한결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정엄마 입장에선, 시부모님까지 모시겠다며 결혼을 시작한 딸이 어쩌면 안쓰럽기도 할 것이다. 내가 딸을 낳아보니 알겠더라. 하지만 당시, 그 부분에 대해선 엄마도 나도 특별히 크게 생각지 않았다.  사실 엄마도 나도 배우자라는 '사람 그 자체'만 봤다. 엄마에게 나의 결혼이, 나에게 나의 결혼이 '사람 그 자체'가 굉장히 중요했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으리라.)



몇 년 전부터 엄마가 내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엄마 이상형은 O서방이야. 다시 태어나면 O서방 같은 사람하고 결혼해보고 싶어."



친정엄마의 그 한마디가 평생이 마음 고단했을 엄마에게 나의 무탈한 결혼생활을 보여드리는 것 같아서 다행스러우면서도 조금은 내 가슴 한편이 시리기도 한말이다.






보름 전 미세먼지도 없던 화창한 겨울날. 친정엄마와 남편과 함께 셋이 관악산을 등산을 했다. 산행 중 남편은 친정엄마를 향해 넉살스러운 장난을 또 시작한다.  



"장모님~ 근데 장모님 오빠는 어쩌고 혼자 왔어요?"



엄마는 사위의 이런 장난 어린 말투에 또 한 번 웃는다.

친정엄마, 남편과 함께 한 번씩 웃어가며 했던 등산.

등산 중 느끼는 온도. 습도.

겨울이라 차갑지만 내겐 너무 따뜻하기만 한 공기.

완벽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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