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양식을 준비한다.
칠월칠석이 지나면 배추를 심어야 한다.
어제는 퇴근길에 퇴비와 비료, 살충제를 뿌리고 밭을 갈고 비닐까지 씌웠다. 일을 다 끝내고 시간을 보니 벌써 19:00인데 그래도 아직 해가 길어 3 ~ 40분은 더 해도 될 것 같다. 옷은 땀으로 흥건하고 흘러내린 땀이 장화 속까지 적셔버렸다. 몸은 기진맥진이지만 세탁기에 옷을 넣고 샤워를 하니 조금 살 것 같다.
배추 모종은 공짜다.
농협에서 조합원을 대상으로 배추 모종 한 판씩 무상으로 나누어 준다. 배추 한 판은 100 포기 정도가 되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한 판을 심어도 생육이 부진해 고사하는 것을 제외하면 8 ~ 90 포기 정도가 된다. 배추를 심을 때는 양념 채소로 무와 청갓과 쪽파를 심고 총각무 씨도 뿌려야 한다.
김장 준비는 8월부터 한다.
김장용 대파는 지난달에 심어서 잘 자라고, 고추는 두 번을 따서 말려놨으니 이만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느 정도 된 것 같다. 이제 새우젓이나 까나리액젓 등 젓갈 종류는 부녀회 등에서 판매하는 것을 사던지 아니면 몇몇이 모여 광천에 가서 직접 구입하면 된다.
김장도 옛날 얘기가 되었다.
예전 같으면 가을배추 김장은 한 겨울 식량이나 마찬가지로 여겼다. 동절기에는 야채를 재배할 수 없어 먹을 반찬이 마땅치 않았던 시절 김장김치만 있으면 국도 끓이고 찌개도 할 수 있는 중요한 반찬이었다. 그래서 식구가 많은 집은 김장하는 날짜를 정해 놓고 객지에 사는 가족들까지 모여서 김장을 했었다. 그런데 이제 굳이 가을에 담그는 김장김치가 아니더라도 반찬거리가 풍부하고 저장한 배추 등 한 겨울에도 배추가 나온다.
제철 야채가 무엇인지 모를 지경이다.
농업 기술의 발달에 따라 마트에 가면 계절에 관계없이 과일이나 채소가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또한 열대 과일 등은 종류별로 너무 많이 공급되다 보니 우리 농업에 위협을 가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거기에 가까운 중국에서 대량 재배로 수입되는 각종 야채는 가격 경쟁력에서 상대할 수 없을 만큼 위기에 처한 실정이다. 아마 수박이나 참외가 언제 제철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야채뿐만 아니라 김치를 포함한 각종 반찬도 문제다.
김치도 중국산이 우리나라는 접령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음식점 등은 우리나라 김치로는 가격 대비 경제성이 떨어져 영업 이익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중국 김치를 써야 한다. 이런 현상은 김치뿐만 아니라 식재료나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점점 우리 영역이 침범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김장 안 하면 왠지 허전하다.
그렇다고 아예 김장을 안 할 수도는 없다. 그나마 김장 김치라도 있으면 지지고, 볶고, 찌개 끓이고 다양하게 먹을 수 있는 반찬이다. 특히 국이나 반찬 문화인 우리에게 있어 김치는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기 때문에 김장 담그는 양을 줄었을지언정 대부분 가정에서 김장을 한다. 물론 직접 심어서 하기보다 간편하게 절임 배추를 구매해서 담그는 가정이 많아졌을 뿐 겨울을 준비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벌써 김장 배추를 심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폭염이 기승을 부려도 절기를 거역할 수 없음을 방증한다. 내일이면 24 절기 중 열네 번째인 처서다. 그러니 다음 주 칠월칠석을 전후해 배추도 심고 무 씨도 뿌려야겠다. 한 겨울 잘 익은 김장김치에 돼지고지 숭덩숭덩 썰어 넣고 김치찌개를 끓여 먹을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