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이다.
직장인들은 말하는 월요병이 다시 도지는 날이다.
이 월요병은 일주일 간격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만성적인 병이다.
만성이기 때문에 특별한 치료와 약도 없고 다음날이면 자연스레 증상이 완화되기 때문에 늘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 일쑤다.
그런 직장인 중에 나는 주말이 되면 직장을 벗어나 논밭을 돌아다니며 잡초와 한 판 전쟁을 펼치는 농부가 되어야 한다.
봄부터 텃밭에 정성껏 심어 놓은 양념류 채소들은 일주일만 방치해도 잡초에 기가 눌려 채소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못해 주말만이라도 내가 돌봐줘야 한다.
비록 작은 면적이지만 종류는 다양하다. 소규모 주말 농부인 나는 생산성이나 품질에 대하여 구지 다른 사람과 경쟁할 필요는 없다. 절기에 따라 씨를 뿌리고 가꾸어 우리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식탁까지 공급하기 위한 노력과 정성만 필요할 뿐이다.
요즘 같은 여름철 농사는 물을 많이 필요로 한다.
특히 논농사는 더 그렇다. 내가 짓는 논은 저수지 물을 품어 올려야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예당저수지 물이 예당평야로 다량 공급되는 시기에는 저수지 물이 줄어들고 나는 물이 줄어드는 거리만큼 양수기를 옮겨 놓아야 한다.
아마 금년 장마처럼 비가 적고 무더위가 지속된다면 몇 번을 더 옮겨야 하는지 모른다.
혹시라도 하늘의 도움이 있으면 어려움이 덜하겠지만 별다른 방법은 없다.
요즘말로 하면 나는 늘농(늘 농부)이 아니라 어농(어쩌다 농부)이다.
어농인 나는 늘농 보다 의욕만 앞서지 성과는 별로 없다.
늘농은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감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절대 무리하게 하지 않고 서두르는 일이 없다. 시기적절하게 필요한 만큼 일을 해도 성과는 나보다 항상 좋다.
어농의 농사일에는 요령도 필요하지만, 일주일 물량을 한꺼번에 몰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더 힘들고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또한 작물마다 심고, 거름 주고, 소독하고, 수확하는 시기가 다 다르기 때문에 주말마다 일을 해도 새로운 일거리가 계속해서 생기는 것이 농사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 세대는 늘농을 초월하여 평농(평생 농부)이 아니었나 싶다.
나 같은 주말 농부는 그래도 여건이 좋은 편이다. 오래전부터 부모님을 도와가며 그럭저럭 농사일을 해 본 경험이 있어 일에 대한 부담감이나 걱정은 별로 없다.
이렇게 어수룩한 어농도 주말이면 이른 새벽부터 일을 시작해야 한다.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농사일을 하려면 항상 도구를 사용하고 풀밭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손을 다치거나 뱀에 물릴 수도 있어 작업복과 챙이 넓은 모자와 장갑과 장화 착용은 필수다.
또한 농사일에도 그날그날에 따라 순서가 있다.
다양한 작물들이 있기에 나름의 경험을 바탕으로 순서를 정해야 한다.
우선 논두렁이나 밭두렁에 제초제를 해야 할 시기라면 가장 먼저 새벽에 해야 한다. 제초제는 잡초만 잡는 농약으로 다른 작물에 피해가 있을 수 있어 바람이부는 한 낮에는 피하는 것이 좋다. 물론 농약이나 화학적 비료 사용을 자제해야 하지만 주말 농부는 어쩔 수 없이 과학의 힘을 빌어야 그나마 편하게 할 수 있어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다음은 힘을 쓰는 일인 양수기를 저수지 가까이 옮겨야 한다.
그렇게 힘을 빼고 나면 그럭저럭 오전 10시가 훌쩍 넘어간다. 작업복은 이미 땀에 흠뻑 젖었고, 안경에도 땀과 진흙탕이 범벅이 되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옷을 휘지르고 나면이 일을 다 끝나기 전까지는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집밖 냉장고에서 물 한 병 꺼내 마시며 잠시 숨을 돌리고 땀을 훔친다.
이쯤 되면 몸을 써서 힘으로 하는 일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간다.
그렇게 한참을 쉬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몸이 무거워지고 동작이 느려지기 시작한다.
이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손쉬운 일을 한가. 여름 반찬거리 오이, 가지, 풋고추, 호박을 따고 덤으로 토마토, 참외, 수박은 잘 자라고 있는지 둘러본다. 이런 와중에도 눈에 보이는 잡초는 호미나 손으로 뽑아줘야 한다. 이렇게 수확한 채소가 대바구니에 한 가득이다. 바구니를 들마루에 쏟아 놓고 종류별로 나누면 부자가 된 기분이다. 이 맛에 땀 냄새가 풀풀 나고 몸은 힘들어도 주말 농부는 혼자서도 흡족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일 할 근력이 없다. 여기까지가 주말 농부의 한계인가 보다.
드디어 5 ~ 6시간 동안 신고 있던 장화를 벗는 순간 발에서 느껴오는 시원함과 편안함은 그 어떤 말이나 글로는 적절한 표현을 못하겠다.
그렇게 주말 어농의 열정은 오후까지 이어지지 못한고 한나절 만에 마무리가 되었다.
주말 농부인 어농도 나름의 규칙을 정하고 일을 한다.
부모님이 손수 지으시던 땅을 놀릴 수가 없어 토요일 일요일 중 하루만 일하고 남는 하루는 웬만하면 쉬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다만 급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는 예외이지만 아직까지는 그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놀리면 잡초만 무성하여 이웃집 농사에 피해가 있어 의무감에 하는 농사일지라도 땀으로 얻은 결실은 그 무엇하고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기에 이렇게 평생 동안 농사일을 해 오시고 그 땅을 자식인 내가 심고 먹을 수 있도록 해주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감사함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앞으로 더 많은 땀을 흘리고 더 힘든 일을 한다 해도 나는 이런 주말이 정말 좋다.
내일 일요일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뒷짐을 짓고 논두렁과 밭두렁을 휘 둘러보면 그만이다.
그렇게 새로운 월요일은 또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