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무생채

제철 음식이 맛있는 이유가 있다.

by 박언서

올해 처음으로 무생채를 해서 먹었다.

해마다 요맘때가 되면 밭에 심어 놓은 무를 뽑아서 생채를 해서 먹는데 그 맛은 변하지 않는다. 옛날부터 어른들이 말하는 무의 크기는 참으로 현식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가 얼마큼 자랐는지 표현할 때 무가 칼자루만 하다는 말을 듣곤 했다. 그렇다. 지금이냐 주방 도구가 발전하여 부엌에서 쓰는 칼도 세련되고 좋지만 예전에는 대장간에서 만든 칼을 사용하다 보니 크고 무거웠다. 그 칼의 손잡이를 기준으로 무의 크기를 가늠했다는 것이다.

어제는 밭에서 두 개를 뽑았다.

퇴근길에 밭에 들러 보니 밭두둑이 아닌 고랑에서 자란 무가 두 개를 뽑았다. 아마 씨를 뿌릴 때 고랑으로 튀어나간 모양이다. 크기는 칼자루 보다 조금 더 크게 자랐지만 생채를 하기에 한 개는 부족할 것 같아 두 개를 뽑은 것이다.

쪽파도 한 움큼 뽑았다.

나는 무생채를 할 때는 대파 보다 쪽파를 사용한다. 옛날부터 어머님이 그렇게 해 주셔서 그대로 따라 하다 보니 쪽파가 없을 때는 빼놓고는 항상 그렇게 한다. 김장용 무와 총각무 씨를 부릴 때 쪽파도 함께 심어서 지금이 먹기 좋을 만큼 자랐다. 그래서 무 두 개랑 쪽파 한주먹을 뽑아서 집으로 왔다.

아내는 퇴근 전이다.

몇 해 전부터 가을 무생채는 내가 전담이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요리는 내가 혼자 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각자 잘하는 음식은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하며 산다. 예를 들면 나물 무침이나 미역국 생선 조림 등은 아내가 하고 국수 삶고 간단한 국을 끓이거나 김치볶음밥, 생채 등은 내가 주로 한다. 라면은 내가 전담이다.

마트에 가면 계절에 관계없이 무가 있다.

하지만 가을무와는 맛이나 식감에서 차원이 다르다. 가을 이맘때에 생채를 하거나 무조림 그리고 무나물을 해서 먹어 보면 역시 가을무가 맛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매일 무가 얼마나 컸는지 밭은 두리번 거린다. 그날이 바로 어제였던 것이다.

이런 비슷한 작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풋마늘이다. 마늘 알이 영글기 전에 밭에서 뽑아 통째로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그 맛 또한 일품이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마늘 맛이 맵거나 하지 않고 달다. 또한 풋마늘과 궁합이 어울리는 술은 바로 막걸리다. 밭에서 바로 뽑아 흙을 툭툭 털어 껍질을 벗기고 고추장에 찍어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고 한 입 씹어 먹으면 막걸리 특유의 맛과 마늘에 알싸한 맛의 조화는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못 할 만큼 맛있다.

가을은 먹을 것이 풍성한 계절이다.

각종 과일이나 쌀 그리고 양념류 등을 수확하는 계절이다. 아마 추운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라 그런지 몰라도 제철에 나오는 식재료는 어떻게 해 먹어도 맛있다는 진리는 불변이다.

이제 남은 것은 김장이다.

그럭저럭 가을거지가 하나하나 마무리되어 간다. 벼바심도 마쳤고 들깨도 털고 마늘도 심고 시금치 씨도 군데군데 뿌려놨다.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주말에는 내년 봄에 먹을 쪽파를 심고 더 추워지기 전에 배추 김장만 하면 올해 일은 끝이다.

작은 농사지만 한 해가 바쁘다.

퇴근길에 틈틈이 일하고 주말을 이용해 농사를 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물론 마트에서 구입하면 수고를 덜고 비용은 더 저렴할 수 있다. 하지만 손수 가꾸어 계절마다 싱싱한 야채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그 비용이나 수고가 아깝지 않다.

올해 첫 무생채는 그런 수고를 보상이라도 하듯 엊저녁에 맛으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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