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가 아름다운
주말이다.
한 낮에는 더워서 놀다가 오후 느지막한 시간에 일을 시작했다.
농사일이란 것이 하다 보면 이것저것 잡다한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늦기도 했지만 씻고 나가기가 귀찮아 시골집에서 하루 쉬고 아침에 집에 가기로 했다. 우선 저녁을 먹어야 하기에 쌀을 담그고 텃밭에서 고추와 오이를 땄다. 냉장고에 막걸리도 한 병 있기에 혼자만의 만찬을 준비했다. 노란 냄비에 밥을 하고 빨간 고추는 새우젓에 무쳐 놓고 짠 무도 송송 썰어 간을 빼고 아삭이 고추는 된장을 찍어 조촐하지만 입맛에 맞는 한 끼 만찬을 즐겼다. 물론 막걸리도 한 잔하면서 말이다.
시간이 흘러 창밖은 사방이 컴컴하다.
예당저수지에 낚시꾼들의 좌대 불빛과 저수지 건너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보인다. 주변은 조용하고 TV 소리와 풀 벌래 소리가 전부이다. 또한 어쩌다 한 번씩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밤의 고요를 깬다. 주말이라 그런지 오락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방송되지만 혼자 보는 TV를 그리 즐겁지는 않다.
그렇게 밤이 깊어 불을 끄고 TV도 끄고 쇼파에 누었다.
컴컴하고 조용한 가운데 잠을 청하려 누었더니 갑자기 후드득 후드득 함석지붕에 난리가 났다. 오랜만에 듣는 빗소리다. 도시생활에서 듣지 못하는 그런 소리다. 아파트에서는 비가와도 바람이 불어도 창밖을 내다보기 전에는 알 수 없지만 함석지붕은 바로 알 수 있다. 어찌 생각하면 시끄러워 짜증도 나겠지만 이 또한 시골 함석지붕이 있는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리인 것이다. 잊혀져가는 소리 그리고 앞으로는 듣고 싶어도 영영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될지 모른다.
그런 비는 밤새 함석지붕을 두드리다 지치면 쉬고 다시 두드리기를 몇 번 반복했다.
후드득 후드득 빗소리에 잠을 설쳤는데 왜인지 모르지만 별로 피곤하지는 않다. 아마 도시에서 이런 소리를 들었다면 어떠했을까? 소리도 듣는 장소나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음을 새삼 알았다. 세상은 즐거운 소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때로는 듣기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한다. 누구는 함석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시끄럽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런 소리가 모두에게 추억을 회상하며 운치를 느끼는 것인 아니다.
다만 그날은 내가 느끼기에 그랬을 뿐이다.
나 역시 마음이 복잡하고 짜증이 날 때 그런 빗소리를 들었다면 나 또한 추억 따위는 상상도 못하고 밤잠만 설쳐 피곤한 그런 날이었을 것이다. 컴컴하고 적막한 시골에서 들리는 소리는 너무도 깨끗하게 들린다. 오롯이 그 소리만 나기 때문이다. 지붕에서 똑똑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음악처럼 들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누구에게는 잠을 설치는 소음공해일 수도 있다.
하긴 예전에 시골집 천정에 쥐가 뛰어다니는 소리는 듣고 자란 사람들이야 추억이라 말하겠지만 요즘 아파트 문화에서는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인 소음공해일 뿐이다. 사람은 상황이나 여건에 따라서 느끼는 감정이 다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모든 일을 내 기준에 공정시켜 놓고 좋고 싫음을 판단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시끄러운 소음도 음악이라 생각하면 음악이 되고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도 소음이라고 생각하면 듣기 싫어지는 것이다. 세상의 이치는 후드득 후드득 함석지붕을 때리는 소리는 소음이고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은 음악이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가 다 순리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 기준으로 빗소리도 음악처럼 들리면 행복할 뿐이다. 세상이 그냥 모두가 그냥 각자의 위치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았으면 좋겠다.
철판을 두드리는 소리도 망치질을 하는 소리도 음악처럼 느끼면서 말이다.
나를 위해 우리 모두를 위해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