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반찬
정말 하늘이 높아 보인다.
비가 온 후 갑자기 추워지기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고 기온이 떨어져 출근길에 자동차 히터를 가동하고 온열 시트 전원을 켰다. 우리는 이렇게 온도에 민감하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참으로 간사하다. 어제까지 더워서 에어컨을 켜고 다니다 갑자기 추워지니 히터를 켜야 하는 우리는 자연의 변화에 따라 그저 순응하고 살아야 한다.
요즘 가을 들녘은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벼, 들깨, 콩 등 더 추워지거나 비가 오기 전에 수확할 작물들이 많다. 더구나 추워지기 시작하면 해가 일찍 떨어져 일을 할 시간이 부족하다. 해가 지고 나면 바로 어둑어둑해지고 이슬이 내리기 시작하면 농작물이 축축해져 수확할 수 없다. 그러니 시간은 부족하고 일손도 부족하고 농부는 마음만 바빠지게 마련이다.
그래도 가을은 수확에 계절인 만큼 먹을 것 또한 풍성한 계절이다.
나는 가을이 시작되면 텃밭에 뿌려 놓은 무가 칼자루만해 지기 시작할 때부터 뽑아서 무생채를 해서 먹는다. 여기서 칼자루라는 말은 옛날부터 어머님들이 하는 말씀이다. 무가 부엌에서 쓰는 칼의 손잡이 만큼 크면 먹을 만큼 자랐다는 뜻이다. 10월 중순부터 무를 뽑아서 생채를 해서 먹는데 싱싱한 무로 만든 생채는 식감도 좋고 맛이 아주 좋다. 밭에서 바로 뽑은 무는 마트에서 파는 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신선하고 좋다.
우리집 무 생채는 주로 내가 직접 만든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일주일에 한 두 번씩은 생채를 만들어도 부족하다. 식구들이 생채를 무척 좋아하기도 하지만 환절기 입맛이 없을 때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는 반찬이라서 자주 해서 먹는다.
가을무 생채는 만들기에 번거롭지도 않다.
무를 뽑아서 무청은 잘라 말려도 되고 삶아서 국이나 된장찌개를 끓여 먹어도 시원하고 맛있다. 무를 흐르는 물에 잘 씻어 채를 치고 소금에 절려 고춧가루, 파, 마늘, 젓갈을 조금 넣어서 간을 하면 그만이다. 파는 대파와 쪽파 둘 중 한 가지를 사용하고 젓갈은 새우젓을 다져서 넣기도 하고 멸치액젓이나 까나리액젓을 넣기도 한다. 또한 취향에 따라 식초를 조금 넣기도 하고 설탕을 넣기도 한다.
딱 이맘때 먹는 가을의 맛 생채는 삼겹살과 같이 먹어도 좋고 밥에 비벼 먹어도 좋다.
물론 무는 사계절 마트에 유통되고 있다. 하지만 제철 음식이 맛도 있고 우리 몸에 좋다고 한다. 음식도 불 조절과 조리하는 시간에 따라 맛이 변하는 것처럼 음식 재료 또한 그 시기에 따라 맛이 가장 좋을 때가 있는 것이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상큼하고 아삭한 무 생채를 만들어 먹어보는 것도 가을의 맛을 느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