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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분주한 가을 하루

가을 막바지는 늘 바쁘다.

by 박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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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바쁘다.

결실의 계절 가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바쁘다.

한여름 길고 길던 하루해가 점점 짧아지기 시작하면 가을이 시작된 것이다. 농촌에서는 더 추워지기 전에 수확할 농산물이 논밭에 지천으로 깔려있다. 또한 가을철에는 농사일을 일찍 시작할 수 없다. 아침에 안개가 자주 발생하다 보니 농작물에 수분이 많아 말라야 일을 시작한다. 그러니 일은 늦게 시작하고 해는 짧아져 농부는 바쁠 수 밖에 없다.

물론 농사일도 예전에 비해 수월해지긴 했다. 예전 같으면 사람이 심고 수확해야 하는 일을 농기계가 심고 수확하니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수확할 수 있어 좋다. 아마 수확기가 시작된 후 15일간이면 어지간한 농사는 마무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농부는 늘 바쁘다.

농사일은 끝이 없다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항상 입버릇처럼 하는 말에 의하면 일은 죽어야 끝난다고 한다. 농부의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할 일인 것이다. 논과 밭으로 연결되는 농사일은 한 가지가 끝나면 다른 한 가지로 연결이 된다. 논에서는 벼를 수확하고 밭에서는 들깨를 수확한다. 들깨를 수확하고 나면 마늘을 심어야 하고 마늘을 심고 나면 김장을 해야 한다. 이렇게 이어지는 일들은 말로하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몸으로 하려면 늘 힘에 부친다.

농촌에서는 하루에 해야 하는 일의 양이 정해지지 않는다.

일을 하다 날이 저물면 중단하고 다음날 이어서 해야한다. 그러니 농부는 정해진 출퇴근이 없다. 눈을 뜨면 출근이고 컴컴해지면 퇴근하는 것이다. 또한 주말이나 휴일 또한 없다. 그냥 볼 일이 있으면 잠시 일손을 놓고 볼일을 마치면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한다. 세상 모든 일에는 그 시기와 때가 있는 것처럼 농사일도 시기를 놓치면 품질이 떨어져 제대로 된 가격을 받을 수 없다.

농부는 CEO와 노동자를 겸한다.

그러니 내가 어렵고 피곤하면 쉬고 싶을 때 쉬면 그만이다.

하지만 일을 쉬어서 발생하는 손해 또한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오롯이 일 할 수 있는 시간에는 일을 해야 한다. 몸이 아프고 고단해도 일손을 놓을 수 없다.

농사는 날씨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농작물의 품종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기에 비도 내리고 햇볕도 적당히 있어야 한다. 그러니 “농자천하지대본야”라고 하는 것이다. 농부가 농사를 지어봐야 하늘의 뜻을 알 수 있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날씨에 따라 풍년과 흉년이 좌우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불편부당한 이치를 극복하기 위해 시설 농업이 발전했다. 그렇다고 날씨의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매년 태풍으로 인한 폭우나 강풍 등 농작물이 침수되고 쓰러지고 그 피해 또한 엄청나다. 그래도 가을이 되면 모진 풍파를 견뎌내고 결실을 거두는 농부는 그저 묵묵히 분주하게 움직일 뿐이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해는 점점 짧아진다.

하루해가 짧아지면 짧아지는대로 시간을 쪼개어 할 일은 해야 한다. 가을철 농작물 수확의 끝은 아마 콩 타작일 것이다. 콩도 수확의 적기를 놓치면 밭에서 다 떨어져 나간다. 결국은 세상의 모든 일은 시간과의 전쟁이나 마찬가지다. 할 일은 태산인데 해는 저물어가는 상황을 경험해보지 않는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어떻게라도 지는 해를 붙잡을 수 있다면 붙잡아 묶어 놓고 싶은 농부의 심정은 마냥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게 하루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면 농부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무거운 몸을 움직여 집으로 향한다. 겨울은 농부가 힘이 다 빠지길 기다리는 것처럼 기진맥진하는 사이 농부의 소중하고 아까운 시간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농부는 가을 막바지에 겨울을 준비하기 보다는 농사일에 치어 겨울이 어찌 오는지 조차 모를 지경이다. 다만 가을날 하루하루가 켜켜이 쌓여 어느새 겨울이 왔을 뿐이다.

농부의 몸이 피곤한 가을이지만 수확의 기쁨이 있다. 그리고 객지에 나가 사는 자식들에게 나누는 기쁨이 있다. 농부의 손끝 하나하나의 움직임은 결국 가족을 위해 만들어지고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예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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