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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을사년 달집 만들기

정월대보름 소원지 및 달집 태우기

by 박언서

지난 연말에 마을 총회에서 이장이 새로 선출되었다.

새로 선출된 이장은 예전에도 이장을 본 경험이 있는 문중의 형님이다. 이장의 사업계획 중 하나인 정월대보름 달집 태우기 준비를 위해 임원 회의를 하고, 달집 만드는 날을 1월 25일로 정했다. 달집을 미리 만드는 이유는 설 명절에 고향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추억과 향수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정월대보름도 명절이다.

농촌에서는 정월대보름이 지나면 일손이 시작되는 기점으로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농한기 마지막날인 정월대보름에는 새해 소망을 담은 소원지와 달집을 태워 액운을 날려 버리고 풍물을 치며 한바탕 먹고 놀았다. 또한 어른들의 놀이에 동참하는 동네 꼬맹이들은 형들을 따라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밥을 훔쳐먹고 불깡통을 돌리던 추억이 있었다. 그런 풍습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잊히지 않는다.

우리 동네 달집 제작은 이○○ 형님이 총감독이다.

달집 만들기는 1월 25일(토) 10:00 경에 마을회관에 모여 짚가리와 대나무를 준비하여 짚으로는 이엉을 엮고 새끼를 꼬는 것으로 시작된다. 회관 앞마당 한쪽에서는 어르신들이 이엉을 엮고 새끼를 꼬느라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엉과 새끼는 경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사이 다른 사람들은 달집을 설치할 위치 중앙에 말뚝을 박고 원을 그린다. 처음에는 반지름 2m로 계획을 했는데 그리고 보니 너무 옹색한 느낌이다. 다시 조금 크게 그렸어도 영 마음에 들이 않는다. 다시 반지름 3m로 그려진 원을 따라 말뚝 6개를 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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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집 높이는 3m로 정했었다.

하지만 준비한 대나무 길이가 4m가 넘는다. 그래서 높이도 변경해 3.7m로 정하고 달집의 기본 틀이 되는 대나무 6개의 꼭대기 부분을 철사로 단단하게 묶어 여럿이 세워 말뚝에 묶으면 달집의 기초 완성된다. 세워진 대나무를 고정하기 위해 중간중간 철사로 감아가며 공간을 채워나갔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이엉 두 둥치와 새끼가 완성되었다. 달집의 빈 공간에는 태울 때 연기를 많이 나게 하기 위하여 솔가지와 짚 등 불이 잘 붙는 재료로 빈 공간이 없이 채워야 한다. 또한 불이 한꺼번에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공간에 빈틈이 없이 채워야 한다.

그럴싸한 달집이 만들어져 간다.

달집은 아랫부분부터 이엉으로 돌리고 새끼로 감 가나 갔다. 이엉은 바닥부터 중간 부분까지 돌려주고 소원지를 달을 수 있도록 새끼를 묶어준다. 그리고 달집 꼭대기에 소원을 기원하는 현수막까지 달고 나면 달집이 완성된다. 역시 경험이 많은 어르신들과 형님들이 함께 힘을 모아 만들어 놓고 보니 흐뭇하다. 점심도 부녀회원님들이 나와 맛난 꽃게매운탕을 시원하게 끓여서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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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일은 나도 처음이다.

금년부터 동네에서 총무를 보게 되었다. 새로 선출된 이장이 집안 형님이다 보니 총무를 선출하는데 나를 지명하여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일을 맡았다. 그러니 동네 일에 빠질 수도 없어 달집을 만드는 토요일이 회사에서 당직이지만 짬을 내서 일을 돕고 오후에는 조금 일찍 퇴근해서 달집 마무리까지 동참을 했다. 동네 어르신들이 회관 앞 공터에 만들어진 달집을 보며 무척 좋아하신다. 특히 내가 퇴직하고 동네 일을 보고 이런 일에 적극 참여하는 모습이 반가운 모양이다. 또한 동네에는 젊은 사람이 없고 퇴직한 내가 막내이다 보니 더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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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주민등록을 동네로 옮겼다.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도와가며 농사를 짓기 위해 주소를 예산읍에서 대흥면으로 전입을 했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허전한 마음에 가끔씩 경로당에 들러 어르신들 안부도 물을 겸해서 과일을 가져다 그리곤 했다. 나는 퇴직 후에도 직장을 다니지만 직장이 관내에 있어 아침저녁으로 시골집에 들렀다 회사로 출퇴근을 한다. 농번기 농사는 주말에 주로 하지만 평균 하루에 한 번은 꼭 시골집을 살펴보고 간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2025 을사년 정월대보름날이 며칠 있으면 다가온다. 동네 어르신들의 건강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소원지와 달집이 활활 타오를 때 지난해 액운도 함께 날리는 것이다.

정월대보름이 지나면 한 해의 농사가 시작된다.

그리고 입춘이 지나면 동네 어르신들이 양지바른쪽 텃밭에서 마른풀을 갈퀴로 끌어 모아 불을 놓는다. 하얀 연기가 나기 시작하면 어느새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산불감시원이 출동해서 주의를 준다.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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