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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게서 배운 것

성실이라는 유산

by 불멍

어릴 적 아버지가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셨던 가치는 '근면과 성실'이었다.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던 70년대 후반, 국민학교를 다니던 내게 그 두 단어는 의심의 여지 없는 삶의 기준이었다. 아버지의 삶 자체가 그 말의 설명서였다. 집보다 회사가 늘 우선이었고, 출장이 잦아 집에 계신 날보다 외국에 계신 시간이 더 많았지만, 집에 계실 때면 늘 함께 책을 읽고 공부를 함께 해주셨다. 아빠는 책 사주는 일을 가장 즐거워하셨고, 공부에 들어가는 비용만큼은 한 번도 아까워하지 않으셨다. 당시에는 당연하게 여겼지만, 지금 돌아보면 참 대단한 일이었다.

고3이 될 때까지 아빠는 내 수학 공부를 직접 봐주셨다. 과외가 금지되던 80년대, 우리는 수학정석을 펼쳐놓고 함께 문제를 풀었다. 일본 출장길에는 일본 수학 문제집을 사오시기도 했다. 덕분에 공부는 힘든 일이 아니라, 아빠와 함께 무언가를 해내는 시간이 되었다. 그 시절 나는 아빠에게서 들은 ‘산업역군’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품고 살았다. 아빠처럼 성실하게 일하며 사회의 한 축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받은 것은 옥스퍼드 영영한사전이었다. 글씨를 참 단정하게 쓰시던 아빠의 글과 함께였다. 영어를 영어로 생각해야 한다. 앞으로 네가 살아갈 세상은 국제화된 세상일 거라며, 영어를 한글로 번역하지 말고 뜻부터 받아들이라고 하셨던 그 말은 이후 내 삶의 방향이 되었다. 전공의를 마치자마자 미국 유학을 떠났던 일도, 돌이켜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학업에 관한 한, 두 분 부모님은 언제나 아낌없이 지지해주셨다.

아버지의 장례식 날, 어느새 80대 중반이 되신 아빠의 친구분들이 많이 와주셨다. 젊은 시절의 이야기들이 무용담처럼 오갔다.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 그 시절 나라가 얼마나 가난했고,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들의 눈이 유독 반짝였다. 나는 그분들을 존경한다. 그분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누리는 삶이 있다는 사실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너무 서둘러 떠나가신 우리 아빠. 아빠 덕분에 여기까지 성실하게 잘 살아왔다고,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것이 여전히 마음에 남는다. 지금까지 근면하고 성실할 수 있었던 건 전부 아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잘하든 못하든, 나는 그저 성실하다.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으면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해왔고, 운동도 잘하든 못하든 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매일 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나는 매일 글을 쓴다. 시작하면 관성처럼, 꾸준함이 나를 끌고 간다.

지금의 사회에서도 이런 근면과 성실이라는 오래된 가치가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창의력과 순간적인 판단이 더 중요해진 시대에, 나는 어쩌면 올드클래식을 붙들고 사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 삶의 근간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이 아닐까. 오래된 고전과 역사가 지금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듯이.

내 가치의 뿌리를 지키며,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묵묵히 해보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쓴다. 아빠가 그렇게 살아오셨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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