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구 드디어 머리 올리다.

아내의 골프(Golf) 도전기(挑戰記) 2019.10.12.

by 박상준

이제 나와 아내의 인생이 어느덧 반환점을 돌아 원점(原點)을 향하고 있다. 나는 아내를 내 인생 거친 여정을 말없이 곁에서 지지해준 든든한 반려자이자 동지로 생각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남편에게 사랑받기 원하는 여자, 바로 청춘의 열정 그 자체다.

“나는 몸치라서 골프가 적성에 안 맞아”, “나는 승부욕이 강해 뜻대로 안 되면 화가 나서 골프는 절대로 안 배운다.”, “체력이 달려서 힘들어 골프는 무리일걸?” 등 다양한 이유를 들먹이며 30대 초반에 잠시 배운 골프를 포기한 채 거의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당시에 준비한 골프가방과 골프채는 이미 골동품이 되었으나, 아내는 이사를 할 때마다 소중하게 챙겼다. 그런 아내가 드디어 새로 골프에 도전한다.


물론 내가 항상 주장했듯이 “나이 들면 그래도 당신이 골프 멤버 한자리 채워야지”, “함께 하면서 즐겁게 놀 수 있는 운동으로 골프가 좋다.”는 감언이설(甘言利說)도 한몫을 했겠지만, 더 늦으면 배우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일종의 압박감이 더해졌을 것이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골프 연습장에 등록하고, 처형으로부터 빌린 골프채를 들고 기초부터 다시 시작한 지 벌써 꽤 시간이 흘렀다. 매일 연습 후 투덜거림과 연습 성과에 대한 기복은 여전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골프 연습에 적응해 나갔다. 무슨 일이든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 가끔은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부상과 여행으로 한 달의 공백을 거친 후 교습과 연습에 땀을 흘린 아내에게 함께 실전에 나가보자 하였으나, 준비되지 않았다며 고사하는 아내의 말을 모른척하며 10월 초 진해 용원 컨트리 챔피언의 ‘지인 찬스’를 활용하여 예약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통보하였다. 아내의 반응에는 낭패와 기대가 교차하였다. 이제 두 번째 머리 올리는 날(골프에서 처음 정규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 날)이 결정되었고, 연습만이 남았다.


평소 실내연습장에서만 훈련한 아내의 골프채 거리 측정과 실전에 대비한 감각을 높이기 위해 전장이 다소 긴 연습장에서 두 차례 정도 방문하였다. 예상대로 모든 골프채의 거리가 비슷하게 측정되었지만, 그래도 연습의 성과는 있는 듯하다. 실전의 날이 다가오자 입을 옷이 없다는 투정(妬情)을 하기 시작한다. 모처럼 휴일에 시간을 내어 골프 라운딩에 입을 옷을 장만하기로 하고 김해 롯데 아웃렛을 방문하였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먼싱웨어’ 매장에 들어서니 직원이 반갑게 맞이한다. 이게 누군가! 내가 과거 자주 다니던 백화점의 매니저가 여기서 근무하고 있었다. 반갑게 맞아주는 매니저 덕분에 편안하게 옷을 구매하고, 다음에 다시 들리겠다고 약속하고 가게를 나섰다. 골프장갑까지 샀으니 이제 실전만 남았다.


내가 처음 골프를 배웠던 시절이 불현듯 떠오른다. 당시 울산에서 신경외과 과장으로 재직하며 생기는 심한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풀었던 좋은 기억이 있고, 개원하면서 잠시 골프를 멀리한 때가 있기는 했어도 한 달에 1~2회 정도 골프를 즐겼다. 한번 라운딩을 하면 최소 6시간 이상을 함께 몸으로 부딪히는 운동이다 보니 자연히 친목을 도모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물론 예외적인 상황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름대로 많은 장점이 있는 골프를 아내가 배워 함께 필드를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수차례 아내에게 권유하였으나, 돌아오는 답은 “싫어”였다. 그런 아내가 늦은 나이에라도 연습하고 골프에 입문하니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자신도 이번 기회가 지나가면 골프를 배울 가능성이 줄어들고, 주변 사람과의 어울림에도 문제가 있을 것으로 인식한 모양이다.

날씨는 더없이 좋다. 전날 일본을 강타한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이 거세게 불기는 해도 골프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날씨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27층에 거주하는 용원 컨트리 챔피언과 함께 골프장으로 향했다.


이번에 용원 컨트리 새로운 챔피언에 등극한 조 사장은 오래전부터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이다. 올해 열린 용원 컨트리 챔피언 대회에서 15번 홀까지 3타를 뒤지다 극적으로 동 타를 만들고, 연장전에서 기어이 승부를 뒤집어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것도 4 연속 버디로 말이다. 정말 극적인 역전으로 명승부를 일군 그는 진정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이 잘 어울린다. 친절한 성격과 편안하게 라운딩을 리드하는 그의 모습에서 겸손(謙遜)을 배운다.

챔피언 깃발을 단 카트가 1번 홀에 도착했다. 이미 사전에 아내의 첫 라운딩임을 캐디에게 알리고, 조 사장의 티샷으로 골프가 시작되었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아내는 여전히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부끄럼이 많은 성격이라 더욱 긴장감이 높아지는 모양이다. 조 사장의 부인이 샷을 마치고 다음으로 아내가 티샷 한다. 결과는 예상대로 공이 앞쪽에 있는 해저드로 향했지만, 이것이 즐거운 라운딩의 시작에 방해되지는 않았다.


전담 마크를 자처한 챔피언 덕분에 나는 편안하게 지켜보았다. 처음에 긴장했던 아내도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감이 줄어들고 이내 골프에 집중한다. 하늘은 거짓말처럼 옅은 청색의 물감을 도화지에 풀어놓은 듯 빨려 드는 느낌이다. 일본을 강타한 태풍으로 라운딩이 취소될 뻔했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아내의 기운이 천기보다도 강한 모양이다. 즐겁게 깔깔거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전반 9홀이 끝났다.

그늘 집에 모여 편육을 주문하여 막걸리를 함께 나눠 먹으며 아내에게 오늘은 편안하게 즐길 것을 주문한다. 간단히 배를 채운 다음 후반 라운딩이 시작되었다. 전반에 이어 후반에도 챔피언의 지도에 따라 열심히 따라 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아내의 뜻대로 공이 높이 멀리 가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오늘의 출전은 그 목적을 달성한 것 같다.

어느덧 마지막 홀에 도착했다. 아내의 잘 맞은 드라이버샷이 물에 들어갔지만, 점차 샷이 정확해지고 있어 실망할 일이 아니라고 말해줬다. 그렇게 아쉬운 아내의 첫 라운딩은 끝났다.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조 사장의 단골집인 ‘진양 횟집’에 모여 라운딩을 복기하며 폭탄주와 더불어 회를 맛나게 먹었다. 긴 준비 기간을 걸쳐 실전에 나선 아내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오늘의 즐거운 라운딩이 가슴에 깊이 자리하여 골프에 대한 생각이 더욱 긍정적으로 변화하길 바란다. 내 생각에 오늘의 미흡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아내의 마음은 벌써 연습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른다.


모두에게 감사하다. 조 사장 부부 그리고 내 영혼의 반쪽과 함께한 오늘의 시간이 영원히 아내의 가슴에 기억되기를 기도한다. 오늘 하루를 지배하고 누릴 자격을 갖춘 아내에게 이 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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