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내 인생은 어디쯤 일까?

by 박상준


한해의 끝이 다가올수록 그림자 길이는 짧아지고 우리 몸을 감싸는 옷 무게는 늘어간다. 늦가을, 아니 오히려 초겨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것 아닐까 생각하지만 계절의 끝자락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 싶은 마음으로 늦가을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활동이 줄어들고 괜스레 움직이기 싫어 앉아 지내는 시간은 늘어가고, 그에 따라 나른함을 동반한 피로는 커진다. 햇볕의 자극은 멜라닌 색소를 활성화해 사람 기분을 덩달아 좋게 하지만, 햇살에 노출되는 시간이 줄고 한껏 웅크리게 된다. 기온이 오르는 한낮이 아니고서야 좀처럼 밖을 나가 볼 생각을 않는 계절이다.

우리 인생의 시간에 늦가을은 어디쯤 해당할까? 모두의 관심 아래 새 생명이 탄생하고 울음이 막 그치기도 전에 팍팍한 경쟁의 세상으로 내몰리는 삶을 살아온 세대는 과거 세대와 달리 계절의 시계가 훨씬 빨리 움직이고 있다고 느끼지 않을까?

인생의 섭리가 항상 모든 인간에게 똑같이 적용되기 어렵듯이 각자가 느끼는 세월의 속도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다만, 인생의 늦가을에 추수할 그 무엇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좋겠지만, 없다 하여 슬퍼할 일도 아니라 생각한다.

충만한 인생을 살고 수확하며 다시 씨를 뿌릴 여유를 가진 자가 과연 얼마일까 하면서도 의심하면서도 나 자신이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는 마음을 갖는 걸 보면, 다 깨우친 고승처럼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실은 너무 많은 집착으로 점철된 나 자신의 인생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일갈한 성철 스님의 큰 뜻을 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냥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사는 실체를 그대로 받아들여 긍정적인 마음을 가진다면, 비록 인생의 늦가을이 남들보다 조금 일찍 닥쳐온다 해도 고민하거나 우울해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단풍의 색이 아름다운 것은 마지막 결정적 시간에 자신이 간직한 여러 색을 정제하고, 순도를 높여 햇살과 바람에 색이 바래지 않도록 잘 갈무리한 결과의 산물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여름의 녹색과 겨울의 거친 황갈색이 주는 황망함이 아닌 순수한 가을의 빛깔 그 자체다.

모든 인생이 아름답거나 숭고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자신은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가 늦가을이 오는 인생의 중간 역에 도달했을 때, 환하게 웃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런 기대가 오늘을 열심히 살게 해주는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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