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작의 여행기
[9월, 히말라야의 토롱라에서 눈을 맞다]
깊은 잠을 못 자고 계속 몸을 들척였다.. 관자놀이에서는 맥박이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사정없이 뛰었다. 온몸이 쑤시고 눈의 초점이 한 곳에 집중되질 않았다. 자면서도 긴장을 너무 해서인지 수차례 잠에서 깨서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은 너무 어둡고 혼자 가기 꺼림칙해서 안 가고 그냥 롯지 옆 공터에서 볼일을 보았다.
4시 30분쯤에 꺼멀이 찾아와서 문을 두드렸다. 꺼멀이 밖에 왔음을 알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하루를 더 쉬고 싶었다. 그러나 나에겐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악으로 깡으로 무조건 출발해야만 했다. 다시 꺼멀이 문을 더욱 강하게 두드렸다.
"Ok, Kamal. Wait a minute."
슬로우모션으로 천천히 일어나 짐을 꾸렸다. 짐을 챙겨 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대충 먹고 따뜻한 둥굴레차를 한 잔 마셨다. 식당 안에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시계를 보니 원래 출발하기로 한 5시를 훨씬 넘었다. 꺼멀이 계속 시간을 보면서 출발하자고 눈빛을 보냈다. 눈빛을 애써 외면하고 다시 빈 컵에 물을 채우고 둥굴레차를 다시 한 잔 마셨다.
꺼멀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던지 먼저 자리를 일어서며 출발하자고 하였다. 꺼멀의 다그침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토롱페디를 출발할 수 있었다. 세상은 온통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시간은 새벽 5시 48분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엔 출발할 때부터 눈발이 날렸다. 9월 중순에 히말라야에서 눈을 맞으니 기분이 묘했다. 축복의 눈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토롱라를 넘기 전까진 커다란 장애물일 뿐이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
랜턴을 켜고 조심스레 올라갔지만 보이는 것은 눈앞의 백색 눈뿐이었다. 혀를 낼름 빼서 눈을 맛보았지만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지금은 내 몸의 모든 감각이 오직 두 발과 심장에만 집중된 것 같았다. 20미터를 올라가다가 2분 쉬고 다시 올라가기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꺼멀도 힘든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한참을 올라가니 토롱라를 넘기 전 마지막 롯지 하나가 보였다. 롯지 안에 들어가서 배낭을 벗지도 않고 대자로 누워버렸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뒤 따뜻한 레몬티를 2잔 시키고 몸을 추슬렀다.
올라오는 동안 꺼멀과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다른 트레커들도 하나 둘 롯지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도 의자에 앉자마자 기계적으로 배낭을 벗고 그 자리에 덜퍼덕 누워버렸다.
그들에게 눈으로 말했다.
'조금만 더 참자, 얼마 남지 않았어, 토롱라에서 보자구'
날이 밝아왔지만 눈발은 더욱 굵어졌다. 얇게 쌓인 눈 때문에 올라가기가 더욱 힘들었다.
바위 위에 쌓인 눈을 뭉쳐서 꺼멀에게 던지며 눈 싸움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힘든 도중에도 장난칠 마음이 있는 걸 보니 아직도 내 마음속 한구석엔 여유가 있나 보다. 마음에 여유가 있으니 몸도 참을 만한 것 같았다.
조금 더 올라가자 사람이 살지 않는 롯지가 하나 보였다. 당연히 롯지에서 다시 쉬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눈 내리는 히말라야 사진은 찍어야겠다'
디카를 꺼내 말없이 꺼멀에게 주었다. 꺼멀도 역시 힘든 듯 억지로 웃었다. 적당한 곳에 서서 세상을 초월한 얼굴로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취했다.
사진을 찍으면 항상 활짝 웃는 나인데, 여기서는 그저 희미한 미소를 짓는 게 최고의 표현이었다. 고생하는 꺼멀도 몇 장 찍어주었다. 사진 속의 우리 모습들이 몇 끼를 굶은 아이처럼 처량해 보였지만 히말라야의 눈 때문인지 나름 멋지고 운치 있게 나온 것 같았다. 조금 쉬자 다시 추워졌다. 동상에 걸릴 수 있으니 다시 움직여야 했다.
다시 배낭을 메고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등산화 도장을 찍으며 토롱라로 향했다.
참기 힘들었지만 억지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미소를 지으니 힘이 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이 말이 생각났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는데 참을 수 없다면 웃기라도 하라.’
[드디어 5416미터 토롱라(thorong-la)를 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저 너머 토롱라를 향해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발과 먹구름 때문에 희미하게 보이는 산의 윤곽들이 서서히 낮아지고 하늘은 조금씩 더 가까워져 갔다.
갑자기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힘들어서 억지로 뛰는 심장이 아니라 목적지에 거의 다가왔음을 직감한 설레임의 뜀박질이었다.
저 앞에 희미하게 우리나라 깃발과 같은 타르촉(경전을 오색의 천 위에 다라니와 경전 등을 그린 작은 깃발. 티벳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지붕 위와 마을 입구, 또는 언덕 위를 비롯해 높은 곳이면 어디에나 걸려 있다)이 나풀거렸다. 타르촉이 있다는 것은 라(la=고개)에 거의 다 달았다는 표시였다.
온 힘을 다해 한발 한발 나아갔다. 안나푸르나의 신께 마지막 남은 힘을 달라고 간절히 외쳤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한동안 말을 잊어버렸다. 아! 저 앞에 다이아몬드보다 더 빛나는 토롱라 표시판이 눈에 들어왔다. 온몸에 기운이 싹 빠졌다. 남아있던 마지막 힘으로 표시판 앞으로 다가갔다.
표시판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thorong-la pass : 5416m congratulation for the success hope you enjoyed the trek in manang see you again]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국에서 지금도 고생하시는 어머님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 그리고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 중 최고로 힘든 역경을 이겨낸 나 자신에 대한 대견스러움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양 볼에 흐르는 눈물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뜨거웠고 흰 눈과 섞여서인지 달콤했다..
그때 꺼멀이 거칠게 숨을 내쉬며 토롱라로 올라왔다. 눈물을 훔치고 꺼멀 앞으로 다가가서 승리의 미소를 던지며 꺼멀을 꽉 안아주었다.
"Kamal, we made it. We are in the thorongla. Thank you for your perfect supporting"
"Thank you sir, and congratulations for you"
포옹을 풀고 주위를 둘러보니 20여 미터 옆에 놀랍게도 굴뚝에 연기가 피어나는 작은 롯지가 하나 있었다. 꺼멀에게 물어보니 차를 파는 곳이란다. 5400미터가 넘는 곳에 찻집이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고생했으니 따뜻한 차를 마시기 위해 롯지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롯지 안에는 10여 명의 외국인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차를 마시고 자신들의 성공에 대해서 승리자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말투를 들어보니 대부분이 이스라엘 학생들이었다. 새벽에 먼저 출발한 동양인 2명은 보이질 않았다.
입구 왼쪽의 공간에서 젊은 롯지 주인이 밝은 표정으로 차를 팔고 있었다. 우리는 입구 쪽에 자리를 잡고 한 잔에 80루피 밖에 안 하는 저렴한 레몬티 2잔을 주문하였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한 잔에 80루피(우리 돈으로 약 1200원 정도)밖에 안 하는 레몬 티를 마실 수 있다는 내가 정말 행운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숨쉬기도 어려운 5400미터에서 차를 팔고 있는 롯지 주인이나 토롱라를 넘어보겠다고 아등바등 혼신의 힘을 다해 올라온 트레커들 모두 대단해 보였다.
따뜻한 레몬티를 마시니 몸도 따뜻해지고 머리도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휴식을 취하자 체력이 금방 회복되었다. 몸이 제 컨디션을 찾자 우리는 토롱라 표시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러 나갔다.
그런데 표시판 앞에는 이스라엘 학생들이 먼저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내 차례를 기다리며 떨어지고 있는 눈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한 친구가 윗옷을 벗고 맨몸으로 롯지에서 나와 친구들 앞으로 달려나가서는 포즈를 취했다. 갑작스러운 괴물체 출현에 그 친구들은 잠시 놀랐지만 다시 깔깔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나도 10대에는 저 친구보다 더 열정적이었는데...... 부럽구나..'
꺼멀에게 얼굴 타지 말라고 빌려준 회사 모자를 다시 건네달라고 말했다. 꺼멀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는 눈치였다. 내 모자를 가리키며 “your cap”이라고 말하자 그제야 그 모자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꺼멀에게 아쉬운 표정을 보였지만 잃어버렸으니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원래는 토롱라에 도착하면 회사 모자를 쓰고 기념사진을 찍을 계획이었는데 꺼멀이 모자를 가지고 오지 않아서 얼굴이 탈까 봐(물론 지금도 많이 탄 상태였지만) 빌려줬던 것인데 어쩔 수 없었다.
이스라엘 학생들이 찻집 안으로 다시 들어간 후 우리는 표시판 앞으로 다가갔다. 토롱라의 모든 곳이 흰 눈으로 덮여있었고 표시판 주위에도 눈이 제법 있었다. 갑자기 눈 쌓인 표시판에 무엇인가를 남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손가락을 펜 삼아 눈 위에 '♡ K** S***'라는 글자를 적었다. 모자가 없는 아쉬움을 이렇게라도 해서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내 마음을 눈 위에 적고 사진을 찍으니 마음이 뿌듯했다. 토롱라에서의 추억을 기념으로 남기기 위해 꺼멀과 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옆의 타르촉이 계속 나풀거렸다. 나풀거리는 타르촉을 보자 회사를 홍보할 수 있는 기념품을 이곳에 묶어놓으면 트레커들 사이에 회사 홍보가 많이 될 것 같다는 상상을 해봤다. 엉뚱한 상상은 실천을 유도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적당한 물건이 없어서 아쉽게도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눈은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눈이 내리지 않고 날씨가 맑았다면 일출과 함께 환상적인 안나푸르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겠지만 이렇게 9월 중순에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는 풍경도 평생 못 잊을 것이다. 사진을 다 찍고 나자 오전 10시가 지나갔다. 이제부터는 내려갈 일만 남았다.
올라갈 때보다는 훨씬 편안한 몸과 마음인 상태로 다음 목적지인 묵티나트로 향했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생을 마감하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한번 꼭 와야지..
잘 있거라 토롱라'
끝이 없어 보이는 내리막길을 가면서도 아쉬움이 계속 남아,
내 체취가 남아있는 토롱라로 자주 고개가 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