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작의 여행기
[요즘 젊은이들은 싸가지가 없다]
방금 전 롯지 밖에서 약간의 소란이 있었다. 바로 앞에 보이는 히말라야 산들을 사진에 담고 2층 방에 들어와서 쉬고 있는데 10대로 보이는 이스라엘 여학생들 몇 명이 롯지로 와선 올드 나마스떼 숙소의 안주인에게 방만 이용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이 친구들은 안나푸르나 라운드 내내 방만 사용하고 음식은 시켜 먹지 않았던 그 친구들이었다.
그러면서도 화장실이나 샤워장은 이용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네팔 음식이 맞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학생이라 돈을 아끼려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구두쇠처럼 돈을 아끼려고 이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곳은 네팔이다.
이 친구들이 이스라엘에서는 어떻게 행동해도 누구 하나 간섭하거나 관심을 두진 않겠지만 이곳은 이스라엘이 아닌 히말라야 땅 네팔이다. 네팔에 왔으면 네팔의 룰을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네팔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주된 수익 원은 바로 트레킹 관련 관광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즉 트레커들이 가이드와 포터를 고용하고 트레킹을 하면서 비행기나 버스를 이용하고 롯지에 들려 숙식비용을 지불함으로써 네팔의 경제가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네팔에 왔다고 돈을 물 쓰듯이 사치를 하면 안 되겠지만 적당한 소비를 해줘야 이 사람들도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깍쟁이들 같이 트레킹 내내 잠자는 방만 찾고 있고 포터비도 노랭이처럼 깎고 있는 수십여 명의 이스라엘 학생들을 볼 때마다 평안한 마음에 균열이 일어났다. 결국은 여학생들이 방을 얻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행이다’ 고 생각하려는 찰나에 이번엔 이스라엘 남학생들이 찾아와서 똑같은 질문을 하였다.
그런데 목소리를 들어보니 마낭에서 나를 자기들 파티에 초대한 이스라엘 학생이 틀림없었다.
나이도 젊은 친구가 무례하기도 하고 왠지 정이 안 가서 그때 파티에도 참석 안 하고 트레킹 중에 가급적 만나지 않았으면 했는 데 며칠 만에 다시 lete의 롯지에서 그 목소리를 들으니 왠지 신기했다.
그리고 자꾸 이 친구가 나와 전생의 악연이 있어서 그걸 풀려고 더욱 나를 찾는 것 같다는 헛 생각도 들었다. 나는 2층 방안에 누워서 롯지 주인과 학생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2청까지 올라와서는 방을 보고 샤워장도 체크한 후 만족했던지 거의 이 롯지에 머무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방은 깨끗한데 샤워할 물이 차갑다며 한 양동이로 물을 데워주면 얼마냐고 영어로 계속 주인아주머니를 귀찮게 하였다. 주인아주머니는 가뜩이나 방만 사용하는 게 기분이 안 좋았는데 이 친구들이 감독관처럼 계속 롯지 점검과 질문, 그리고 추가 요구 사항을 말하니 마침내 화가 나서 네팔어로 고함을 질렀다.
이 친구들은 갑작스러운 주인아주머니의 행동에 놀라며
"Ok, take it easy. Have a good night. Good bye.”
하면서 슬그머니 롯지 밖으로 나와 위쪽으로 올라가 버렸다.
'예의 없는 것들,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냐...... 저러니 네팔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욕을 먹지'
고요했던 마음에 다시 물결이 일었다.
‘나쁜 이야기만 생각하면 내 마음도 안 좋아지니 다른 긍정적이고 재미난 생각을 해야겠다'
꺼멀과 저녁식사 시간에 방금 전의 해프닝을 이야기해주었다. 꺼멀이 말하길 이스라엘 학생들이 너무 구두쇠같이 굴어서 트레킹 주위의 각 마을마다 소문이 퍼져서 별로 인심이 안 좋다고 한다. 꺼멀에게 내가 봐도 너무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이들은 싸가지가 없다'라는 말을 네팔어로 어떻게 쓰는지 적어달라고 했다.
내 말의 뜻을 꺼멀이 확실하게 알아들었는지 모르지만 내 수첩에는 짧은 네팔어 한 줄이 적혀있다.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나면 이 네팔어를 보여주며 히말라야 트레킹 이야기를 해주며 산 교육을 시켜줘야겠다.
"आजकालका युवा अभद्र छन्।"
* 당시 수첩이 없어서 AI에 물어보니 "요즘 젊은이들은 무례하다"를 위와 같이 네팔어로 번역해 주었습니다~
- 트레킹 9일차(9.16.화) –
[원수는 철제 다리에서 만난다]
레떼에서 오전 7시 20분에 출발했다. 그런데 출발한 지 약 2시간 정도 지나서 길이가 약 100미터쯤 되는 거대한 철제 다리를 만났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다 보면 이러한 다리를 수십여 개 볼 수 있고 또 반드시 이 출렁다리를 지나쳐야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래서 고소공포가 있는 사람들에겐 안나푸르나는 결코 밟을 수 없는 절망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트레킹을 하면서 하도 많은 다리를 건너다보니 이번에도 별생각 없이 다리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조랑말들을 이끌고 있는 카라반을 보았다. 카라반(caravane)은 우리말로 대상(隊商)이라고 하며 사막이나 초원과 같이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지방에서, 낙타나 말에 짐을 싣고 떼를 지어 먼 곳으로 다니면서 특산물을 교역하는 상인의 집단을 말한다. 히말라야에서는 카라반 상인들을 수시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앞쪽에는 10여 마리 이상의 당나귀들이 좁은 다리를 통해 정면으로 내게 다가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뒤로 돌아가기가 싫어서 나도 앞으로 다가갔다. 옆으로 지나갈 공간은 충분하겠지 생각했는데 조랑말들과 가까워질수록 등에 배낭을 메고 통과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랑말은 계속 앞으로 다가왔다. 순간 왼쪽으로 최대한 몸을 붙였다. 만에 하나 잘못하면 약 40미터의 높이에서 번지점프하듯 떨어질 것이고 또한 물살이 너무 사나워 뼈도 추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조랑말 들은 내가 하나도 무섭지 않은 듯 내 몸을 계속 치고 지나갔다. 그런데 한 마리가 아예 내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필사적으로 왼쪽 난간을 잡고 배낭으로 조랑말 머리를 막았다. 조랑말의 짐과 내 배낭이 지지직거리며 긁히는 소리가 났다. 다행히 조랑말 들은 나를 지나 반대쪽으로 유유히 사라져 갔다.
그때 조랑말 뒤에 따라오는 카라반 중 한 명이 왜 무리하게 건너오냐고 하는 듯 네팔 말을 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괜히 기분이 상해 나도 인상을 확 썼다.
‘나도 죽을 뻔했다고, 그리고 내가 먼저 다리에 들어왔거든. 먼저 들어온 사람이 임자 아니니?!’
그렇게 인상을 쓰며 다리를 건넜다. 꼭 10여 명이 넘는 원수들을 철제 다리에서 만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