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작의 여행기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의 스릴을 아는가?]
볶음밥을 먹은 후 오전 10시경에 호텔 차량을 빌려 타고 10분 거리인 포카라 공항으로 왔다.
빛바래고 낡은 공항 건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네팔만큼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진리와 약간 동떨어져 있고 변화가 너무 느린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작년하고 올해 트레킹을 하면서 공항, 도로 사정, 건물 등 달라진 게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다른 개발 도상국들은 하루가 다르게 눈부시게 성장하는데 여기 네팔은 변화의 속도가 너무 더디어서 걱정이 들 정도였다. 택시에서 내려 입구 경비에게 비행기표를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바로 예띠 항공 데스크에서 비행기표와 짐을 체크하고 2층 매점에서 콜라와 사이다를 마시며 포카라의 황량한 공항 풍경을 바라보았다.
11시쯤 비행기 시간이 되어 소지품을 점검하는 검색 대를 통과하자 조그만 라운지가 나왔다. 라운지라고 해봐야 긴 나무의자 몇 개와 90년대 말에나 만들어진 낡은 삼성 TV 한 대가 전부였다. 그리고 정돈되지 않은 간이매점에 화장실은 대부분 고장이 나서 소변용 물은 흐르지 않았다. 딱 우리네 80년대 시골 간이 기차역 대합실과 너무나 비슷했다.
이처럼 공항 시설은 열악하고 지저분했지만 비행기표 값은 만만치 않았다. 외국인은 인당 세금 포함 98달러였고 내국인은 2955루피였다. 꺼멀의 표까지 지불하고 보니 근 1만 루피(15만 원 이상) 이상을 비행기 비용으로 소비해 버렸다. 원래 포카라에서 카트만두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하려고 했는데, 이동시간도 오래 걸리고 몸도 피곤할 것 같아서 이번에도 비행기를 선택했다.
비행깃값이 조금 아까웠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또다시 타볼 수 있을까 생각하며 마음을 위로했다. 갑자기 사람들이 출구에서 줄을 서기 시작했다. 아마도 비행기 탑승 준비가 완료된 것 같았다. 우리도 서둘러 줄을 섰다. 줄을 서는 이유가 국내선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에는 지정좌석이 없기 때문에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이며 또 창가에 앉아야 히말라야의 좋은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출구가 열리자 사람들이 거의 달리기하듯 쌍발 비행기로 향했다. 우리도 뒤질세라 잰 걸음질을 했다. 비행기는 약 30여 명이 탈수 있는 것 같았고 통로를 기준으로 왼쪽은 1인승, 오른쪽은 2인승 의자가 있었다. 우리는 히말라야를 볼 수 있는 왼쪽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비행기를 타고 올 때는 반듯이 오른쪽 창가 자리를 잡아야 하고, 반대로 카트만두로 갈 때는 왼쪽 자리를 잡아야 만년설의 히말라야를 감상할 수 있다.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지만 여승무원도 한 명 있었다. 승객들이 자리에 앉자 기장이 안내방송을 한 후 잠시 후 프로펠러가 굉음을 내며 활주로로 천천히 이동하였다. 작년에도 카트만두-포카라 노선을 2번이나 이용해 봤지만 비행기가 낡아서인지 잔뜩 긴장이 되었다.
처음 네팔 트레킹을 계획하고 있을 때 신문에서 읽었던 뉴스가 생각났다.
내용을 요약해 보면 네팔에도 국영 항공사가 있는데 항공사 이름이 네팔 항공으로 국제선 항공기 보유대수가 단 2대라고 했다.(2024년 기준으로 확인해 보니 6대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2대중 한 대가 고장이 나서 항공 스케줄에 많이 차질이 빚어졌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고장 난 비행기 1대를 격납고에 두고 앞으로 고장 나지 말라고 염소를 잡아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물론 기계적인 결함을 보완한 상태에서 제사를 지냈겠지만 신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게 힌두교의 특징이었다. 그래서 네팔 사람들은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이나 현재의 빈부의 차가 모두 신의 뜻에 의해 이루어져 있기에 항상 신에게 공양을 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내세에는 더 좋은 신분으로 태어나게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종교는 없지만 이곳이 네팔이고 나의 목숨이 이 비행기와 조종사의 손에 달려있으니 힌두의 신들께 무사 비행을 기원하였다. 네팔의 신이 나의 소원을 들어줬는지 비행기는 활주로를 무사히 벗어났다. 그런데 갑자기 비행기가 좌우로 날개를 흔들며 고도와 방향을 조절하였다. 몸은 당연히 한쪽으로 쏠리자 앞좌석을 꽉 쥐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자 비행기가 수평을 유지했다.
'휴, 오줌 쌀 번 했네..'
비행기가 안정적으로 이동하자 여승무원이 일어나서 콜라, 사이다, 오렌지주스와 사탕을 나눠줬다. 사이다를 한잔하고 사탕을 두 개 먹으니 긴장이 풀렸다. 잠을 좀 자보려 했지만 가끔씩 덜컹 흔들리는 기체 때문에 수시로 눈이 떠졌다. 그런데 조종사가 곧 있으면 착륙한다고 방송을 하였다. 20여 분도 안 지났는데 벌써 착륙하는 것 같았다. 버스로 가면 대여섯 시간씩 걸리는 이 거리를 하늘로 가니 이리도 빨랐다. 곧 착륙한다고 하지만 이제부터 진짜 긴장을 해야 했다.
다행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그래도 속으로 하느님, 부처님, 힌두의 시바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 그리고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 비행기를 무사히 인도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그때 비행기가 45도 각도로 기울더니 활주로와 일직선상이 되기 위해서 둥글게 회전을 하였다. 다시 몸이 왼쪽으로 쏠렸다. 숨이 멈추고 주먹이 자연스레 쥐어졌다.
베니 가는 길에 난폭한 개를 만났던 상황보다도 훨씬 더 긴장이 되었다.
얼마 후 비행기가 활주로를 정면으로 하고 서서히 고도를 낮췄다. 눈을 감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비행기 바퀴가 쿵 하고 땅에 안착하였다. '휴우......' 굳었던 몸이 스르르 풀렸다. 다음 번 네팔 여행 때는 국내선 비행기를 탈지 말지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