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눈물 꽃 소년_박노해님

이부작의 책 소개

by 이부작

『아직 피지 않은 모든 것을

이미 품고 있던 그날,

우리의 소년 소녀 시절에』

* 눈물 꽃 소년_박노해 *



여러분,

지난 토요일(13일) 박노해 님의 책과 詩 3권을 도서관에서 빌려 왔습니다. 한 권은 수필 '눈물 꽃 소년'이고 한 권은 여행 에세이 '다른 길', 나머지 한 권은 시집 '겨울이 꽃 핀다' 였습니다.


책을 빌리고 어떤 걸 읽을지 생각하다가 '빛나는 구구단'이 수록되어 있는 '눈물 꽃 소년'을 먼저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부작은 속독을 못해서 한 권의 책을 읽는데 나름 시간이 많이 드는데요,

그런데 그날은 255페이지의 책을 느리지만 늦은 시간까지 집중해서 모두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드는 첫 번째 생각이 '이 책을 사서 소장해야겠다'였고 두 번째 드는 생각은 좋아하는 분들과 아끼는 후배들의 생일이나 기념일에 '이 책을 선물해 줘야겠다'였습니다. 그만큼 이 책은 저에게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참 궁금합니다. 박노해 시인님은 어떻게 국민(초등) 학교 시절의 멀고도 오랜 옛이야기를 이렇게 구수하게 살아있는 전라도 사투리로 단어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었을까요?

또한 '눈물 꽃 소년'을 읽고 있으면 자연스레 마음속 영사기가 가동되어 작가님의 고향 풍경과 슬픔과 기쁨 그리고 불행과 행복의 추억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만큼 이 수필은 다름 아닌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이자 인생극장입니다.


글 이웃님들,

기회가 되시면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여기 바쁘고 시간이 없으신 분들을 위해 총 33개의 이야기 중 두 단락 '장날, 할무니 말씀''당골네 아이' 일부를 발췌해 소개해 드립니다. 책에 담긴 나머지 따뜻하고 때론 슬픈 에피소드도 나중에 꺼내 가을바람에 전보로 부치겠습니다.


▶ 목요일 : 뜻하는 대로 '목'적을 이루는 '목'요일 되세요~


'장날, 할무니 말씀' 中

(23 page)


할머니는 그랬다. 봄바람같이 난들난들 사람들을 대하다가도 개한(참되지 아니한) 자를 만나면 굽은 허리를 세워 서릿발처럼 지나쳤다.


"저이는 얼간이다. 시류 따라 요리조리 쏠려감시롱, 줏대도 배알도 지조도 없어야. 얼 나간 이는 나쁜 영이 들어서 그이를 숭악한 길로 가게 해불제."


"저이는 멋없는 아여. 가진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제. 풍류도 모르고 공경도 모르고 하늘도 모르는 멋대가리 없는 사람이랑께. 가진 걸 제대로 쓸 줄도 모르니께 살아도 사는 맛을 모르는 거제."


"할무니, 멋이가 머시다요?"


"그랑께...멋이란 그 머시기제이. 사람은 말이다, 다 제멋을 타고나는 거여. 눈에는 안 보이는디 맘에는 보이는 그 머시기 말이다. 하늘을 보고 꽃을 보고 별을 보면은 그 머시기가 맘에 안 오냐아.


아까 그 부잣집 양반들 거동 좀 봐라. 화려하게 차려는 입고 겉멋은 부렸는디, 경망스럽고 거만하고 천박하지 않드냐. 긍께 그 머시기가 안 없냐아, 잘 먹고 잘 살고 잘 입어도 안에서 빛이 없고 얼이 어리지가 않으니 멋이 없지야.


쩌그 가는 이마다 반가이 인사하는 서가네 어르신을 봐라. 마을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인정 있게 베풀고, 자라나는 아그들이 이 나라 기둥이라며 장학금을 쾌척하고, 마을 길에다가 꽃이랑 나무를 심어서 멋드러진 꽃길을 만들고, 뒤에서 독립운동가를 돕다가 고초를 겪으면서도 지조를 지켜온 분 아니냐. 그 고귀한 마음이 자태에서 그냥 품기지 않느냐.


그리고 저기 저 나뭇짐 이고 오는 숙이 좀 봐라. 시방 가장 남루해도 말이다. 봐라, 눈빛이 맑고 표정이 환하고 차암 기운이 좋제. 힘들게 할믄서도 착하고 강하게 큰 아그다. 주는 것 없어도 괜시리 맘이 끌리고 나서지 않아도 은미한 빛이 안 나오냐.

평아, 니도 참하고 귄있는 사람으로 한세상 멋지게 살아부러라잉."


그 뒤로 장터를 지날 때마다 할머니 말씀이 울려왔다.

개한 사람인가 참한 사람인가.

주변머리 있는 사람인가.

얼이 든 사람인가.

멋, 그 무엇이 있는 사람인가.


'당골네 아이' 中

(105 page)


3학년 등교 날. 한 책상을 쓰는 내 옆자리 짝꿍이 된 가시내한테서는 향불 내음이 났다.

아그들은 첫날부터 그 애의 길게 땋은 머리를 잡아댕기며 당골네(무당네)라고 놀려먹었다.

짓궂은 아그들의 놀림에도 그 애는 말없이 눈을 내릴 뿐 울지도 않았다.


(중략)


또 치마가 들춰지고 박꽃같이 하얀 허벅지가 드러날 때, 나는 "이 베락 맞을 놈들아!" 고함을 치며 돌멩이를 손에 쥐고 달려갔다. 아그들이 움찔움찔 뒷걸음질로 흩어지고, 나는 돌을 땅에 패대기치며 그 애한테 외쳤다.


"야아, 니는 목석이냐. 반편이냐. 왜 카만히 있냐고오. 잡아 뜯고 물어뜯어 부러야제. 울고불고 소리라도 처야제."

애기 짐승처럼 풀썩 쪼그려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애가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더니 말했다.


"나는 울며불며 하며는 안 되는디...글면은 울 할무니가 못 사는디..."

그 애가 어깨를 들먹이며 울음을 삼켰다.


"기냥 울어부러야! 소리 내 울어부러야!"

내가 다시 소리치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참이나 소리 없이 들썩이던 그 애가 일어나더니 말했다.


"난 인자 괜찮아야. 근디 어쩌까이. 니가 운이 없는 갑다. 나랑 짝꿍이 걸려서. 나가...미안해야..."

그러고는 나를 향해 해맑게 웃는 것이었다.


(중략)


다시 지게를 지고 일어서려는데 저기 저 황톳길 언덕 위로 그 애가 보였다. 지팡이를 든 눈이 먼 무당 할머니를 이끌고 머리에는 큼직한 광주리를 이고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은빛 억새 사이로 느릿느릿한 할머니와 그 애의 걸음을 바라보다 청둥오리 떼 울며 나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다 바람에 우수수 날리는 낙엽을 바라보다가, 괜시리 목이 메어와서 그 애가 더 가까이 오기 전에 지게를 지고 싸게싸게 걸었으나 하, 오늘따라 욕심껏 재운 나뭇짐이 무거워서 자꾸만 느려지는 것이었다.


"아따 장사다이, 안 무겁냐아. 요 나무 아래서 좀 쉬어가제이."

그 애가 뒤에서 노래하듯 불렀다.


"아가, 누구 아는 이냐."

"네에, 할무니, 우리 반 내 짝꿍이요!"

"안녕하시지라, 할무니요."


나는 큰 소나무에 지게를 받쳐 세워놓고 허리 숙여 인사를 드렸다.


"아, 듣던 대로 낭랑하네이. 뭐라드라, 세상에서 젤 낭송 좋고 글씨 좋고 맘씨 깊고 용기 있는 짝꿍이라드만."

그러자 노을빛에 더해 홍옥 사과처럼 붉어진 볼로 그 애가 말했다.


"아이고오, 할무니, 나가 언제 그랬다고요. 나 암 말도 안했구만요."


할머니가 옆구리에 손을 집고 허리를 두드려 펴고 서셨다. 눈은 멀었으나 훤칠하고 반듯한 생김에 귀티가 났다. 바람은 불어서 으름꽃 빛 치마에 옥색 고름이 날리고 가늘게 웃음 띤 고운 주름의 얼굴이 환히 시렸다.


(중략)


ps. 이 이후의 이야기는 책으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s://blog.naver.com/smile_2bu/224004549758

https://blog.naver.com/smile_2bu/224006222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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