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작의 팔자 詩 + N 행시
여러분,
아래는 약 11년 전 세계일보의 [아빠비]란 기사의 내용입니다.
'아빠비'가 무엇인지 많이 궁금하시죠? 아마 아랫글 읽어보시면 얼굴에 미소를 품게 되실 겁니다~
그럼 바로 확인해 보시죠^^
*세계일보 2014년 10월 3일 발행 기사에서 발췌*
[아빠비]
나온 지 좀 된 유머다. 초등학생들에게 문제를 냈다.
‘술에 취해 거리에서 큰 소리를 지르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을 사자성어로 무엇이라고 하는가?’
답:( )( )( )(가)
학생들의 답은 제각각이었다. “고음불가” “이게 뭔가” “이럴 수가” “고성방가” “미친 건가”.
나머지 한 학생의 답에 모두 뒤집어졌다.
“아빠인가”
다음은 실제 얘기다. 한 대학생은 수업 시간에 동시를 지으랬더니
‘아빠비’란 제목을 달아놓고 이렇게 썼다.
빗소리가 나서/ 내다봤더니/ 화창했어요/ 엄마한테/ 물었더니/ 여우비래요/ 여우비는/ 아주 잠깐 왔다 가는/ 비래요/ 다시 물었어요/ 그럼 아빠비지/ 왜 여우비야?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가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슬픈 자화상을 그려 아버지 신드롬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 아버지들은 밤늦게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나 질렀고, 한밤중에 퇴근하고 아침 일찍 출근해 자식들에게는 하숙생쯤으로 비쳐졌다. 신세대 아빠들은 달라졌지만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아빠들도 그렇게 살았다.(중략)
이웃님들,
위의 글이 재미있으셨는지요?~ 저도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너무나 공감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부작도 술에 취하면 다행히 고래고래 소리 지르지는 않지만 아이들에게 하숙생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요즘도 새벽에 조용히 일어나 씻고 아이들 깨기 전에 소리 없이 회사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최근엔 야근은 적게 하나 영업직 특성상 저녁 회식이 잦아 끝나고 집에 오면 종종 아들은 꿈나라에 가 있습니다. 오늘 글을 쓰면서 앞으로는 이런 모습을 아이들에게 자주 보이지 않아야겠다 다짐해 봅니다. 그나마 매일 글을 읽고 쓰겠다고 스스로 약속했기에 예전처럼 술을 폭음하지 않는 것도 긍정의 시그널입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변화하면 1년 뒤의 저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네요~
마지막으로 위 기사에서 영감을 받아 『아빠인가? 아빠비지!』 라는 제목의 팔자 詩(N 행시) 하나 만들어 봤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공감과 댓글은 이부작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ps. 화요일입니다.
마음속 '화(火)'는 '화'하고 내뱉고, '화(花)' 향기는 '화'하고 들이 마시는 빛나는 '화요일' 되세요~
아빠인가? 아빠비지!_이부작
아침 이슬 거리 위로
빠른 걸음 사라지고
인적 끊긴 늦은 밤에
가로등 빛 등대 삼아
아파트로 돌아와서
빠게트 빵 한 손들고
비밀번호 눌렀지만
지저스, 숫자 바꼈네...!
[AI의 감상평]
이 시, 정말 재치 있으면서도 묘하게 쓸쓸한 감정을 자아내네요.
제목부터가 이중적인 의미를 품고 있어요—"아빠인가?"라는 의문과 "아빠비지!"라는 외침 사이에서, 정체성과 부재, 그리고 일상의 작은 혼란이 교차하는 느낌입니다.
� 시의 분위기와 상징들
아침 이슬 거리 위로 / 빠른 걸음 사라지고 → 하루의 시작과 함께 누군가의 존재가 사라지는 장면. 아버지일 수도 있고, 그리운 누군가일 수도 있죠.
인적 끊긴 늦은 밤 / 가로등 빛 등대 삼아 → 외로움 속에서 작은 빛을 의지하는 모습. 등대는 길을 안내하는 존재, 즉 '아빠'의 상징일 수도 있어요.
아파트로 돌아와서 / 빠게트 빵 한 손들고 → 일상적인 장면인데, 왠지 모르게 고단함이 묻어납니다. 빵 하나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삶의 단면.
비밀번호 눌렀지만 / 지저스, 숫자 바꼈네...! → 이 마지막 구절은 유머와 당혹, 그리고 단절의 감정을 동시에 담고 있어요. 익숙했던 세계가 갑자기 낯설어지는 순간.
이 시를 통해 느껴지는 건, 아버지라는 존재의 부재 혹은 변화, 그리고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작은 혼란과 감정의 파도예요. “아빠비지!”라는 외침은 어쩌면 그리움과 당혹, 그리고 사랑이 뒤섞인 감정의 절규일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