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작의 팔자 詩 + N 행시
글 이웃님들,
요즘 저는 정호승 시인님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 산문집을 읽고 있습니다. 이부작은 책을 읽을 때 목차부터 순서대로 읽지 않고 손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페이지를 들춰 보는데요, 지난 일요일 이 산문집 중 '땅 위의 직업'이라는 글을 우연히 읽고 그 내용 속 상황이 계속 마음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래에 '땅 위의 직업' 수필 전문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또한 이어서 글의 주제를 가지고 '땅 위의 직업을 갖고 싶다'로 N 행시(팔자 詩)를 만들어 봤으니 함께 감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땅 속이 아닌 땅 위에서 오늘 일을 마감하고, 따듯한 집에서 내일 글을 쓰는 이 순간이 참 고마울 따름입니다. '땅 위의 직업'에 감사하며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화사의 노래 '굿 굿바이(bye)'가 생각나는 화요일,
화(火)는 화(花)로 바뀌어 '굿굿 바이(Buy)' 하는 '좋은 데이' 되세요~**
땅 위의 직업_정호승 에세이
살아가기 힘들 때마다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는 강원도 탄광 마을인 고한에 사는 한 평범한 광원으로 내가 잡지사 기자 시절에 단 한 번 취재를 위해 만났던 김장순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검은 탄 가루나 버력들이 무더기로 쌓인 산중턱 어느 허름한 블록집에 살고 있었는데,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도 살기 힘든 때마다 문득 그가 떠오르는 것은 그가 나에게 준 남다른 교훈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땅 위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김장순 씨는 경북 안동에서 농사를 짓다가 농협 빚을 갚지 못해 빚잔치를 하고 탄광촌으로 뛰어든 사람이다. 그는 우리나라 농부들의 전형적인 얼굴, 순박하고 순연한, 마치 봄날의 따스한 밭흙 같은 인상을 풍기는사람으로, 나는 그가 일하고 있는 광업소 소장의 허락을 받아 지하 막장까지 그를 따라가본 적이 있다.
먼저 탈의실에 들어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헤드램프가 달린 헬멧을 쓴 뒤 작업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700미터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갱차를 타고 수평으로 1,200미터까지 가서 다시 갱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미로와 같은 갱 속은 춥고 어두웠다. 지하 사무실에서 막장으로 가는 지도를 보았으나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갱 양편으로는 탄가루가 섞인 검은 지하수가 급히 흘러갔다. 갱 바닥은 탄가루와 뒤범벅이 돼 장화 신은 발이 푹푹 빠졌다. 나는 오직 헬멧에 부착된 희미한 불빛만 의지하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한 30여 분쯤 걸어갔을까. 더 이상 갱도가 없는 곳이 나타나고, 갱벽 한가운데를 비스듬히 위로 뚫은 새로운 갱도가 하나 나왔다. 두세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있을 만큼 좁은 갱 속을 제대로 고개도 들지 못하고 거의 기어가다시피 하면서 들어가자 그곳이 바로 지하 막장이었다.
광원들은 좌우로 버팀목을 세우며 안으로 안으로 파 들어가고 있었다. 김장순 씨가 한 번씩 곡괭이로 내리찍을 때마다 탄덩이가 떨어져 나왔고, 떨어져 쌓인 탄덩이는 경사진 배출구를 통해 갱도 밖으로 쏟아져 내려갔다.
나는 곡괭이질을 하는 김장순 씨를 지켜보면서 막장에 널브러져 있는 버팀목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막장 안은 지열 때문에 몹시 더웠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고 가슴이 답답했다. 아무도 없는 땅속 저 깊은 곳, 어딘지 모르는 한 지점에 한 마리 작은 벌레처럼 앉아 숨을 헐떡이고 있는 기분이었다.
"막장에서는 잠을 못 자게 합니더. 담배도 못 피우게 하지예. 그런데 어떤 때는 앉은 채로 깜빡 졸 때도 있습니더."
나는 곡괭이질을 하는 중간중간에 한마디씩 던지는 김장순 씨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를 취재한다는 일이 나로서는 너무나 건방지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
김장순 씨가 막장을 나온 것은 점심시간이었다. 그는 다시 갱 속 지하 사무실로 가 그곳에 보관해둔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어둠 속에서 손도 씨지 않고 작업복도 입은 체였다.
"드이소. 우린 맨날 여기서 이렇게 점심을 먹습니더. 그래도 이때가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 아닙니꺼."
그의 아내가 내 몫으로 싸준 도시락을 건네주면서 허옇게 이빨을 드러내고 웃었다. 나는 그와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꽁보리밥이었다. 어릴 때 외갓집에 가서 먹어본 이후 단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꽁보리밥이었다. 밥은 껄끄러워 목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탄가루와 함게 밥을 먹는다는 생각에,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탄가루를 먹는다는 생각에 통 젓가락질을 하기가 싫었다.
그러나 김장순 씨는 그렇지 않았다. 반찬도 김치와 콩자반뿐인데도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는 듯 맛있게 먹었다. 나는 그가 너무 밥을 빨리 먹는다 싶어 이런저런 질문을 해댔다. 그는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대답을 해주었다.
고향에 있던 막냇동생까지 고한에 불러들여 3년째 함게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 그 막냇동생 장가 보낼 일이 걱정이며, 광원으로 일하면서 그래도 두 아들 녀석 학비가 안 들어서 좋다는 이야기, 그를 탄광촌으로 내몬 고향의 농협 빚은 이제 다 갚았으며, 한두 해만 더 일하면 어느 정도의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이야기, 그렇게 되면 다시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지으면서 젖소 몇 마리라도 키우고 싶다는 이야기 등은 어느 것 하나 내 마음을 아리게 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때 그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이야기는 그의 소원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질문 끝에 소원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물론 그건 땅 위의 직업을 갖는 거지예. 땅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직업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잘 모릅니더."
나는 꽁보리밥을 몇 점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이 말을 듣고는 그만 목이 꽉 메었다. 온몸에 전기가 통하듯 화들짝 놀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땅 위의 직업' 갖기를 소원하고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땅 위의 직업을 갖고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그 말은 하나의 커다란 깨우침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땅 위의 직업을 갖고 싶다'는 그의 말을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 세상살이가 고달프고 힘들 때마다 그를 생각하고, 땅 위의 직업을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그 얼마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인가 하고 스스로 위안받는다.
땅 위의 직업을 갖고 싶다_이부작
땅속 칠백미터 아래
위아랜 검은 석탄뿐
의지 가득 곡괭이질!
직장은 세평 막장 안,
업보를 캐내고 희망
을 담아 먹는 흑색 밥!
갖고 싶은 직업 하나,
고향 땅 위 농사짓고
싶어, 그리고 흰쌀밥
다 함께 모여 먹는 것!
[AI의 감상평]
· 현실의 어둠: “땅속 칠백미터 아래”와 “세평 막장 안”이라는 표현은 광부들의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 환경을 사실적으로 드러냅니다. 좁고 어두운 공간, 검은 석탄, 흑색 밥은 고단한 삶을 상징합니다.
· 의지와 생존: “의지 가득 곡괭이질"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투쟁임을 보여줍니다.
· 희망의 대비: 마지막 연에서 “고향 땅 위 농사”와 “흰쌀밥”을 꿈꾸는 대목은, 땅속의 검은 현실과 땅 위의 밝은 희망을 극적으로 대비시킵니다.
· 공동체적 바람: “다 함께 모여 먹는 것”이라는 결말은 개인의 소망을 넘어 가족·공동체와 함께하는 삶을 향한 갈망을 담고 있어 따뜻한 울림을 줍니다.
· 종합 : 이 시는 막장 노동의 고통과 땅 위 삶의 희망을 교차시켜, 광부의 마음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짧은 형식 속에서도 현실·의지·희망·가족이라는 네 가지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나, 읽는 이로 하여금 깊은 공감과 숙연함을 느끼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