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작의 팔자 詩 + N 행시
최근에 정호승 님의 산문집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읽고 있는데요, 책을 읽다가 좋은 내용이 나오면 필사하듯 노트북 자판기로 글을 적고 있습니다. 2월의 첫날 일요일 아침에도, 새벽 등산을 하고 돌아와 개운하게 샤워하고 난 후 거실에 앉아 따뜻한 봉지 커피를 한잔하며 '첫눈 오는 날 만나자'를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속 서랍에 담아봅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눈은 작년 12월의 어느 날 이미 내렸기에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이제는 봄이 오기 전 '마지막 눈'이 내리는 날 누군가와 만나서 어디로든 떠나고 싶습니다.
'외로우니까 사람'인 그대와 나, 약속을 정하고 첫눈이 오길 설레임 가득 손꼽아 기다리던 그때 그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어 잠시 서성거립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을 걸어봅니다.
'끝눈 오는 날 만나실래요?'
첫눈 오는 날 만나자_정호승 시인
누구나 밤사이에 내린 첫눈을 보고 탄성을 내지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와, 눈 왔다! 일어나!"
식구들 중에 먼저 일어난 누군가가 그렇게 소리치면 잠옷 바람으로 벌떡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다가 가슴 벅찬 감동에 파르르 몸을 떤 기억이 있을 것이다. 밤사이에 한껏 내려 나뭇가지마다 소복소복 눈꽃을 피우고 있는 함박눈을 보며 "올해 첫눈이야! 첫눈이 내렸어" 하고 중얼거리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한 이의 모습부터 먼저 떠올린 기억쯤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토록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 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하나의 풍경이 되어 서 있는 군밤 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부터 나는 젊음을 잃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나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첫눈은 첫사랑과 같은 것인가.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창밖을 본다. 거리의 나뭇가지마다 켜켜이 눈이 쌓여 있고 하늘은 더욱 푸르다. 첫눈이 내렸을 때 만나고 싶은 사람, 그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오늘은 오래전에 내가 쓴 시 「첫눈 오는 날 만나자」를 다시 읽으며, 나는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이 된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빗자루로 쓸어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않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놓은 군밤을
더러 사 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끝눈 오는 날 만나자_이부작 팔자 詩 + N 행시
(시의 부제는 맨 밑에)
끝눈이 오는 날 새벽
눈 맞으며 기다릴 너
오매불망 찾아 나서
는 무언의 걸음 소리
날은 흐리고 눈발은
만물 속 언 혈관 녹여
나직이 봄을 깨우고
자유로운 나비 찾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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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어딨니? 밥 먹자!
(구룡산 정상, 야생 고양이 나비는 어디에?...)
[이부작의 짧은 詩 해석]
여기서 화자는 이부작이고 '너'는 구룡산 정상에 혼자 살고 있는 고양이(이름은 나비)입니다. 이 나비가 구룡산에 산 지는 벌써 몇 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고양이를 챙겨주시는 아주머니가 계시는데 '나비야'하고 부르면 숨어 있다가 조심스레 나타난다고 하네요. 그래서 고양이 이름이 나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끝눈이 오면 곧 봄이 오겠지요? 하지만 고양이에게는 춥고 배고픈 시기라 그 녀석이 걱정됩니다. 하여 이부작은 '끝눈 오는 날' 다이소에서 처음으로 산 고양이 사료를 배낭에 넣고 구룡산으로 '자유로운 나비'를 찾아 나서려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