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첫날 – 단전 자리를 잡다.

by 솔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도장에 갔다.

‘6년 동안 못했던 수련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마음은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수련실에 누워 단전 자리부터 잡았다.

지원장님은 1원 동전 크기보다 작고 동그란 살색 테이프를 꺼냈다. 배꼽 아래에 있는 한 자리에 붙여 줄 것이라고 하더니, 내 손가락을 가져가 재고 나서 테이프를 붙였다. 그곳을 석문이라고 하고, 이 자리가 단전이라고 했다. 석문(石門), ‘돌로 닫힌 문’이라는 뜻이었다. 호흡으로 봉인된 기(氣)의 문을 여는 자리였다. 보통 단전의 소개를 들어보면, 어디서 몇 센티, 아니면 배 아래쪽 어느 부위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사실 인간의 몸은 모두 다른데 동일한 치수로 적용되어 너무 일률적이거나 두리뭉실한 표현이라고 여겨졌다.


지원장님이 붙인 방식은 처음 보았다. 내 손가락을 이용하여 개인의 신체길이 차이에 따른 상대적인 비례를 감안하여 단전자리를 잡았다. 그 방법이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보여 놀라웠다.

“앞으로 수련할 때 가운데 손가락을 이곳에 짚고 하세요. 여기가 위로 올랐다가 내려가도록 숨 쉬어야 합니다.”

안내에 따라 몇 번 호흡을 하였는데 그동안 복식호흡을 하지 못했기에 잘 되지 않았다. 지원장님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 자리를 중심으로 하는 호흡을 익혀야 한다고 했다.

“기운을 모으려면 먼저 담아둘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곳이 단전입니다. 물을 퍼 담으려면 수조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바닥이나 배수구에 모을 수 없듯이 기(氣)도 담을 수 있는 곳에 모아야 합니다.”

뜻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는 체험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비유로 이해한 것이었다. 후에 수련단계가 올라가면서 그 차이를 깨달았다. 수련자들이 때론 비유로 이해한 것을 체득한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자주 들어 익숙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체험한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내가 이해한 것은 기운을 하단전에 모아 아랫배에 묵직한 기감을 느끼거나 단전의 구체를 실제로 인식한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단전 자리를 표시한 테이프에 오른손 중지를 올리고 호흡을 했다. 가르쳐준 심법을 걸었다.

“천지간의 기운을 호흡을 통해서 하단전 석문에 모은다.”

마음속으로 세 번 되뇌었다. 수련을 시작하기 전 “한곳에 집중하려고 생각만 해도 기운이 떠서 불안하다”고 지원장님에게 얘기했다.

'상기되는 기운의 흐름이 자리가 잡혀있어 그렇다며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여주었다.


지원장님은 나의 발아래 앉더니 본인의 손바닥을 나의 발바닥 앞에 두고 '기운이 뜨지 않도록 아래로 끌어내릴 테니 호흡을 해보라'고 했다. 안내에 따라 조심스럽게 호흡을 했다. 우려와 달리 석문혈에 의식을 두고 호흡을 해도 상기되지 않았다. 무언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듯하면서도 집중이 어느 정도 이어지자 조금씩 마음이 놓였다.


후에 알아보니 당시 지원장님의 수련 단계는 대주천(大周天)이었다. 대주천 수련은 단전에 기운을 모아 의식으로 몸 안을 운행하는 수련이었다. 당시에는 석문호흡 단체가 문을 연지 오래되지 않아 대주천도 고수의 경지였다. 대주천은 단전의 기운을 팔과 다리로 보내는 수련이었다. 거기에 한 곳이 더 추가되는데 머리의 정수리였다. 보내진 기운은 발바닥의 중심에 있는 용천혈을 먼저 뚫었다. 흔히 땅과 기운이 통한다고 하는 경혈 자리다. '맨발로 걸으면 좋다'는 원리도 용천혈로 숨 쉬며 대지의 기운과 소통하기 때문이다.


용천이 뚫리면 다음으로 손바닥의 중심인 노궁혈을 뚫는다. 한때 TV에서 장풍도사라고 하는 사람이 나왔다. 한강 너머에 여러 사람을 세워놓고 뻗은 손에서 장풍처럼 기운을 방사하여 넘어뜨리는 모습을 방영하였다. 대상자들은 눈가리개를 하고 있어 그 장면을 신기하게 본 적이 있다. 이때 사용하는 손바닥의 경혈자리가 노궁혈이다. 신체에서 기운을 방출하고 거둬들이는 데 가장 많이 쓰는 혈자리다. 마지막으로 머리에 있는 백회혈을 뚫는다. 이렇게 되면 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도처럼 단전을 중심으로 다섯 방향으로 기운이 균형 있게 뻗어나가며 인체의 골격 형상이 이루어진다.


지원장님은 대주천 단계였기에 손의 노궁혈을 나의 용천에 대고 뜨려는 기운을 실시간으로 끌어내릴 수 있었다. 후일 내가 대주천에 올라 기운용을 해보니 그렇게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할 수는 있지만 정성이 들고 자신의 기운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마치고 그만큼 수련으로 채워야 했다.

당시에는 그 고마움의 크기를 잘 몰랐다. 수련을 다시 하고 싶은 바람에 감사하면서도 도움을 받고 싶었다.

수련을 마치고 무사히 30분의 수련을 했다는 데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 드디어 길이 열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원장님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보세요. 괜찮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그렇게 첫 수련을 마쳤다.

들어올 때와 달리 한결 여유 있는 마음으로 도장을 나섰다.

밤 10시쯤 되어 집에 돌아오는 길은 여느 때와 조금 달랐다.

오랜만에 보는 밤하늘은 깊고 그윽하였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