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서(天書)를 읽고

by 솔내

수련이 조금 안정되자, 입회하던 날 받았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천서(天書)』, 부제는 “하늘이 인간 세계에 보내는 글”

아마 수련의 세계를 접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책 제목이 너무 거창하게 느껴지거나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가톨릭 집안에서 유아 세례를 받고 자라서 ‘하늘’이라는 단어가 익숙한 편이다. 게다가 대학 졸업 후 요가와 명상, 불교 공부를 하여 ‘하늘 세계’라는 말이 낯설지 않았다. 다만, '천서의 하늘은 어떤 하늘일까?' 궁금했다.


대중적으로 인정받는 종교에서 하늘을 말할 때는 거부감이 적지만, 신흥종교나 수행 문파에서 하늘을 언급하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한 걸음 물러서서 유의 깊게 보기도 한다. 나는 며칠간의 호흡수련이지만 나름 효과를 느꼈기에 부정적인 마음보다는 궁금함이 더 컸다.

책은 선도(仙道)는 정기신(精氣神) 수련이라는 설명으로 시작되었다. 수련법은 단전에 기운을 모으는 단계로, 와식(臥息)과 좌식(坐息) 수련이 있었다. 와식에서는 기운을 담을 수 있는 ‘단전 그릇’을 형성하고, 좌식에서는 그 단전 그릇에 기운을 모으는 축기를 하였다.


이 대목을 읽으며, 지금 내가 하는 수련의 단계가 무엇인지 상세히 알 수 있었다. 이후 대맥, 소주천 수련이 이어졌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무협지를 좋아했던 터라, ‘축기’나 ‘임독맥 운기의 소주천’ 단어는 익숙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책에 쓰인 대로 가능하다면, 실제로 어느 정도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무협소설에서는 소주천 경지에 이르면 생사의 현관을 뚫었다고 하여,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다고 묘사되곤 한다.


물음을 품고 책 장을 넘겼다. 소주천 다음은 온양이었다. 처음 듣는 단어였다. 소주천까지 뜨거운 양적 기운의 호흡 수련이라면, 온양은 거기에 새로 생성된 차가운 음수(陰水)의 기운이 더해져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경지라고 하였다. 절반쯤 이해되었다. 그 뒤에 대주천과 전신주천이 나왔다.


대주천은 요가에서 말하는 정수리의 사하스라라 차크라를 뚫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신주천은 12정경과 기경을 운기하는 단계였다. 예전에 침술을 공부한 덕분에 어떤 수련일지 생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다음 단계로 양신까지 이어졌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 후에 등장하는 도계 수련이었다.

‘축기한 후 전신주천까지 운기하면 기(氣)수련이 끝나야 하지 않나?

왜 도계가 나올까?

아마 이 단계 때문에 하늘 세계가 거론되는가 보다.’하고 짐작했다.

도계도 2천 도계에서 11천 완성 도계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간 가톨릭과 불교 공부를 통해 하늘 세계에 대한 경전도 접하고, 큰스님들의 법문도 자주 들었기에 초월적 세계의 개념에 어느 정도 익숙해 있었다.

‘종교 단체가 아닌 일반 수련 단체에서 이런 내용을 첫 수련서에 포함시키는 것은 부담스럽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당시에는 그런 마음이 있었다.


해당 수련의 세계관을 어느 정도 밝히는 것은 그 수련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알고 수련할 수 있게 한다.

나는 11천 도계까지 읽은 후, 이 세계가 허구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개 다른 수행문파의 세계관을 볼 때 자신의 현재 관점으로 보기 쉽듯이, 나는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수행의 세계관으로 천서를 보고 있었다.

‘이 세계는 불가에서 말하는 수많은 하늘 중, 어느 하늘쯤일까?’ 라며 추리하였다.

불교에서는 욕계 6천, 색계 18천, 무색계 4천으로 총 28천으로 하늘을 분류한다. 부처님 생존 당시의 주 종교인 브라흐만교의 하늘은 28천 중 하나인 대범천으로 분류하여 불교에 편입하였다.


반대로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부처님을 힌두교의 신인 비슈누 신의 현신 중 한 분으로 보며 자신의 종교 안으로 편입하였다. 이런 관점의 설법과 강의를 자주 들어왔기에, ‘이 수련에서 말하는 하늘은 어디쯤 될까?’하며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알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았다.

기수련의 효과는 분명하다고 느꼈기에 양신과 도계에 대한 판단은 보류하고, 지금 해야 할 수련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 가운데서도 후일 확인해보고 싶은 내용이 있었다. 하단전에서 양신(陽神)을 이루고, 그 빛의 몸이 머리 위로 출신(出神)하면, 아래로 자신의 정수리를 볼 수 있다는 대목이었다. 의식을 육신에서 양신으로 이동하여 출신하면 양신의 눈으로 육신의 자기 정수리를 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과연 될까?’ 하면서도 ‘만약 된다면 그것은 어떤 상태일까?’ 하는 궁금증이 깊게 남았다.

‘상기를 다스리면 다시 예전에 수련하던 곳으로 돌아가야지.’하는 마음과 동시에, ‘그래도 양신까지는 해볼까?’하는 마음도 들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