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단식원이 드물지만, 예전에는 수도 많았고 시내 요가원에서도 단식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 적지 않았다.
졸업 후 봄, 나는 B 원장님의 요가 단식원에서 요가 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강사가 된 것은 아니었다. 수습생으로 들어가 단식원 일을 거들며 선생님의 지도를 보고 배우는 도제식 교육이었다. 요즘은 보기 드문 방식이지만, 돌아보면 그때의 교육은 체계적 커리큘럼은 없었어도 매우 수준이 높았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남다른 능력이 있었다
하루 세 시간씩 요가와 명상, 일상생활 속 공부에 대해 끊임없이 말씀을 들려주셨다.
손님으로 들을 때와 제자로 배울 때는 달랐다.
일상에서 가르치시는 편이라 자연스레 듣게 되는 말씀이 많았다.
때로는 쉬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반쯤은 강제로 들어야 할 때도 있었다. 한동안은 말씀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지만, 나중에는 일이 밀리기도 하여 말씀을 들으며 일을 하거나 “선생님, 잠깐만요” 하며 양해를 구하는 요령도 생겼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원장님의 서재였다.
한국, 일본, 인도의 다양한 요가 서적이 큰 방 두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른 강사들이 접하기 어려운 수많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6개월쯤 지난 어느 날, 선생님이 물으셨다.
“이제 물구나무서기 1시간 할 수 있니?”
몇 달 전, 선생님은 자신의 수련담을 들려주시며 물구나무서기를 1시간 해본 적이 있다고 하셨다.
“지도자가 그 정도는 해봐야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지 않겠나.”
그 말씀이 마음에 남았다.
나는 날을 잡아 타이머를 맞추고 도전했다.
평소 10분 정도는 매일 연습했기에 30분까지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40분이 넘어가자 어깨가 뻐근해지고 압박감이 느껴졌다. 지금 돌아보면 근육통이 꽤 있었지만, 당시에는 목표 의식에 몰입해 고통을 잊은 듯했다. 결국 무사히 물구나무서기 1시간을 완수했다.
그 성취는 자신감을 주었고, 오래 서 있을 때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제자들에게 이를 권한 적은 없다. 이야기로만 들려주었을 뿐이다.
물구나무서기 1시간은 나에게는 의미 있는 과제였지만, 무리하면 어깨를 다칠 수도 있고 요가의 본질과는 직접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수련이었다.
그 무렵 나의 일상은 단순했다.
아침마다 산을 한 바퀴 뛰고, 요가 수업을 하고, 단식원 회원들을 살피며 지냈다.
밥도 직접 해 먹고, 절의 행자처럼 생활했다. 주말에도 따로 쉬는 날은 없었다.
단식원에는 주말에도 사람들이 머물렀기 때문이다. 1년에 두 번, 명절 때만 고향에 다녀왔다.
요즘 관점에서 보면 ‘열정 페이’ 같은 생활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선생님 역시 강의와 업무 외에는 같은 생활을 하셨기에 당시에는 불만이나 의문이 없었다. 무엇보다 많은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었고, 요가와 명상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매일 들을 수 있었던 그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집중된 배움의 시기였다.
지금도 요가지도사 교육을 하다 보면 가끔 ‘물구나무서기 1시간’ 이야기를 꺼낸다. 그것은 제자들에게 권하는 과제가 아니라, 요가지도사 초년생 시절 내가 기울였던 열정과 노력을 전해주는 추억의 이야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