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극적인 변화를 본 대학 친구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회복을 축하해 주는 이도 있었고, 요가와 단식이 정말 효과가 있냐며 신기해하는 이도 있었다.
그중 친구 Y는 요가 단식을 어떻게 하는지 상세히 물어왔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불규칙한 생활과 언제 잡혀갈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살았다. 실제 투옥된 적도 있어 건강이 좋지 않았다.
나처럼 전환점을 만들고 싶어 했다.
나는 내가 다녔던 원장님께 연락해 서울의 실력 있는 요가 단식원을 소개받았다.
친구와 함께 확인차 상담을 갔는데, 장소는 이화여대 뒤편 봉원사가 있는 안산 자락이었다.
신촌 지하철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려 5분 정도 걸어 들어가니 풍경이 달라졌다.
열 걸음 남짓 옮겼을 뿐인데 자전거도 타기 어려운 경사지와 구불구불한 오솔길이 이어졌다.
연세대와 이화여대가 있는 번화가에서 불과 15분 만에 산골 같은 분위기에 들어서는 것이 신기하고 낯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곳에 제대로 된 단식원이 있을까 하는 염려도 생겼다.
오르막길 모퉁이를 돌자 숲 속에 단층 건물이 보였다. 마중 나온 단식원 S 원장님은 요가의 달인처럼 보였다. 몸의 선, 차분한 얼굴, 낮은 목소리….
흔히 접할 수 있는 유형의 사람은 아니었다.
생수를 한잔씩 내주면서 S원장님은 인도에서 1년간 요가 수행을 하고 돌아온 지 한 달쯤 되었다고 했다.
그 시절 인도에서 1년 동안 오롯이 요가를 공부하고 온 사람은 드물었다.
한국 요가는 그동안 일본 요가의 영향을 받아왔기에, 인도 본토의 다양한 요가 ― 특히 신체를 강하게 단련하는 파워요가나 위빠사나 명상 체험담은 신선하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때만 해도 내가 이곳에서 첫 요가 강사 생활을 시작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새로운 배움의 공간이 필요하던 차였는데, S 원장님은 가끔씩 와서 수련하라고 했다.
일반 수업은 하지 않았지만 단식원 회원들을 지도할 때 함께 참여할 수 있었다.
친구는 7일간 단식을 하고 무난히 보식도 마쳤다. 먹지 말라는 음식을 조금 먹기도 했지만 큰 무리는 없었다. 건강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하지만 기대만큼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단식의 효과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또한 보식을 얼마나 잘하느냐, 그리고 그 기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결과를 크게 좌우했다. 나는 6개월 동안 자연식과 보조 요법을 충실히 실천했기에 더 큰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생존과 직결된 간절함이 있었던 덕분이었다.
단식을 마친 뒤에도 나는 일주일에 두어 번 단식원을 찾았다.
무엇보다 S 원장님이 들려주는 인도의 요가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노나블라에 있는 까이발라다마 요가연구소의 요가 코스, 뿌네의 세계적인 요기 아엥가의 심화 과정, 이와 다른 가르침을 전했던 라즈니쉬, 그리고 고엥가 위빠사나 센터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명상했던 경험까지….
직접 겪은 이야기는 생생했고, 내게는 새로운 세계였다.
S 원장님을 통해 접한 인도 요가와 명상, 그리고 그동안 쌓아온 수행 경험 속에서 형성된 수행관은 당시 건강법과 치유법 위주의 한국 요가의 흐름만 접한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곳이라면 요가와 명상의 본질을 배울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