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 후에도 단식 때 배운 요가를 꾸준히 이어갔다.
하루 1시간 정도 요가 자세를 하고, 간단한 이완 명상으로 마무리했다.
크게 한 번 몸을 다친 뒤라 관리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요가를 하게 된 것은 친구 K의 권유 때문이었다. K는 대학 시절 가장 가까웠던 동기였다.
대화가 잘 통했고, 점잖으면서도 때로는 호탕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현대에 멋있는 선비가 있다면 바로 그런 친구가 아닐까 싶었다.
요가와 단식, 자연요법으로 회복해 학교로 돌아왔을 때, K는 누구보다 기뻐했다. 동시에 놀랍다는 반응도 보였다. 본인이 권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극적인 결과가 나타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우리는 만나면 요가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 시간을 보내곤 했다. 원래 학생운동을 하며 철학, 인문학, 경제학을 두루 읽고 토론하던 시절이었기에, 대화는 언제나 풍부했다.
졸업 후에도 묘하게 행보가 비슷했다. 서양 철학과 인문학을 탐구하던 흐름이 동양 사상과 수행으로 옮겨갔던 것이다. 나는 요가와 명상으로, K는 태극권으로 길을 잡았다. 흥미롭게도 같은 시기에 수련을 시작했고, 그는 후일 미국의 화교 태극권 고수를 사부로 모시고 꾸준히 수련해 자신도 고수가 되었다.
나는 이 무렵 요가의 철학을 탐구하기 시작했고, 간간이 명상에도 몰입했다. 당시에는 단전호흡 관련 책이 많이 소개되던 시기라, 호흡 명상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갔다. 그 가운데 요가의 ‘쿰바까(Kumbhaka, 멈춤)’라는 호흡수련법을 알게 되었다. 본래 뜻은 ‘단지’인데, 단지처럼 호흡을 머금는다는 개념의 수련이었다.
처음에는 들숨과 날숨을 1:1 비율로 연습했다.
이후 날숨을 두 배로 늘려 1:2로 했다. 다시 멈춤을 포함해 1:1:1, 더 나아가 1:3:2 비율로 발전시켰다.
예를 들어 들숨이 5초라면 멈춤은 15초, 날숨은 10초가 되어 한 호흡이 30초에 이르는 식이다.
연습을 거듭하자 호흡은 점점 길어지고 집중력도 향상되었다.
하루는 음식을 불에 올려두고 잠깐 호흡 수련에 몰입했는데, 한참 뒤 타는 냄새에 놀라 깨기도 했다. 그만큼 몰입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호흡이 거의 1분 가까이 이어졌다. 눈을 떴을 때 세상은 고요하고 맑았다.
‘이것이 행복감인가?’ 싶을 만큼, 고요한 가운데 은은한 행복이 배어 있었다.
벽의 시침이 한 시간이 지난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잠깐'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지리산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평소 전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도 선명하게 다가왔다. 꼭 지리산이 아니더라도, '더 깊이 수련해야겠다'는 마음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후 수련과 체험이 반복되며 하나의 결심이 굳어졌다.
‘요가를 직업으로 삼자. 적어도 내 건강과 가족의 건강은 지킬 수 있지 않겠는가.'
큰 부상 이후라 지속적인 관리도 필요했다.
무엇보다 최근 체험한 이 정체 모를 행복감을 더 깊이 알고 싶었다.
돌아보면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데 기여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며, 사람들이 소외받지 않고 함께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지금도 여전히 ‘정의란 무엇인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는 중요한 주제이지만, 그때와 지금은 초점이 달랐던 것 같다.
당시에는 사회와 공동체적 이슈가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개인의 자아 성찰과 내적 행복이 강조된다.
이렇게 사회과학적, 심리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던 정의와 행복에 새로운 영역이 다가왔다.
자취방에서 밥 먹고 학교 다니던 일상 속에서, 한 호흡으로 전혀 경험하지 못한 고요와 행복을 맛본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개인의 체험에 머무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보편화될 수 있는가?’
만약 보편화될 수 있다면, 행복에 대한 접근은 달라져야 한다. 사회 변화를 위한 노력만큼이나 개인의 수행도 중요하지 않은가.
이 질문이 내 마음속에 자리하면서, 나는 요가를 직업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책에서 읽은 명상의 성자들이 경험했다는 행복, 삼매, 영원한 자유가 무엇인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