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극적인 반전이 찾아오면 사람이 달라진다.
아프던 몸이 낫고 나자 새로운 삶을 부여받은 듯했다. 그간 나를 짓누르던 고민도 어느새 사라졌다.
‘몸은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 결혼은 할 수 있을까?’
그 와중에 뜬금없이 결혼을 떠올리고는 당시에도 어이없어 하긴 했다.
돌아보면 몸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았다.
요가, 단식, 교정, 자연식을 총동원한 자연치유법은 아팠던 만큼 명현반응도 강하게 동반했다.
건강했을 때 체중 65kg에서 이미 7kg이 빠진 상태였다.
11일간의 단식으로 몸무게는 47kg까지 줄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은 마치 빈곤국 난민을 떠올리게 했다. 단식 중 반응으로 몸도 힘들었다. 명현반응인지, 굶어서 오는 반응인지 모를 고통으로 이틀씩 밤을 새우기도 했다.
요가단식원에 들린 어머니는 내 모습을 보고 '사람 잡겠다며 당장 집에 가자'고 하셨다.
몇 년 동안 호전되지 않았던 몸을 마지막으로 고쳐보겠다는 결심으로 시작했기에,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뿐이었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셨다.
지금 돌아보면 참 다양한 이유로 면회를 오게 한 아들이었다.
학생운동으로 투옥되어 구치소와 법원을 오가게 하더니 그때 다친 후유증으로 치료하며 또 다른 면회를 오게 했다.
피골이 상접하다는 말이 실감나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그대로 밀어붙였다.
아니 견디었다. 그렇게 언제 끝나나 날짜만 꼽던 단식을 마쳤다. ‘
원장님은 단식이 끝난 후 회복하는 보식이 제일 중요하다’고 10번도 더 강조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식욕이 당긴다고 자장면이나 떡 같은 음식을 지금 먹으면 큰일 난다고 했다.
‘왜 하필 자장면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아마 단식을 마치고 자장면이 가장 먹고 싶다고 말한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보식은 천천히 진행되었다. 1kg이 느는 데 한 달이 걸렸다.
조급해 하지 말라는 당부가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눈에 모래가 낀 것 같은 불편함과 늘 손오공의 금고환을 두른 것 같은 통증이 느리지만 한결 나아졌기에 체력과 체중이 빨리 늘지 않아도 괜찮았다.
만성 요통이 나아진 것도 마음의 여유를 갖게 했다. 6개월이 지났을 때 체중은 52kg 정도 되었다. 정해진 보식을 기준으로 과식하지 않고 식사량을 지키니, 그야말로 천천히 늘어났다.
이후 나는 그토록 바라던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학교에 복학했다.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생각도 이어갈 수 있었다.
이 간단한 행위가 사람을 얼마나 편안하고 자유롭게 만드는지 알게 되었다. 결혼 생각은 잊어버렸다.
반년 정도 지나자 아팠을 때의 고통, 단식 중의 힘듦은 먼 옛날이야기처럼 여겨졌다. 사람을 대하는 마음도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편안한 듯하면서도 다소 무심해졌다.
내려놓기의 영향인가?
삶의 큰 산 하나를 넘은 여운일까?
나는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