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단식원이 있는 곳은 여느 동네와 달랐다.
서울 생활이 5년을 넘었지만, ‘동네’라는 단어를 쓴 적은 없었다. 그냥 서울의 한 곳이었다.
안산 자락의 봉원사 근처 동네는 달랐다. 스님들의 집들이 여러 채 있었고, 그 사이에 일반인들의 집도 간간이 섞여 있었다. 그중에는 명상 서적을 여러 권 쓴 유명 작가 S가 있었다.
B 원장님의 소개로 알게 되었는데, 단발머리에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섞여 있었다.
서른여덟 살쯤 되었을까. 목소리는 작고, 살짝 미소만 지으며 말을 아꼈다.
명상가 중에는 이런 대비되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다. 쉽고 재미있게 명상과 수행 이야기를 풀어내는 달변가가 있는가 하면, 수줍은 소년처럼 눈을 내리깔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 있다. S는 후자였다. 책 한 권을 선물 받아 단식원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는 가끔 길 가다가 마주쳐 인사하는 정도였다.
하루는 B원장님과 걸어서 이대 후문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마을버스를 놓치면 15분을 기다리기보다 잰걸음으로 일반 버스를 타러 걸어갔다. 그때 골목에서 나오는 말총머리에 훤칠한 키, 남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과 마주쳤다. 원장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어떻게 지내는지 등의 예의 바른 대화였다.
짧은 만남 뒤, 다시 돌아서서 걷다가 원장님이 “M 시인이야.”라고 슬쩍 말했다. 나는 “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으며, 단박에 누군지 알았다. 가끔 들리던 서점의 명상 시와 에세이 코너에 그의 책이 눈에 띄게 진열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 동네는 뭔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더 재미있었던 것은 단식원 뒤편 방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었다. 영화감독이라고 했다. 명함을 받았는데, 영화 제목이 위에 적혀 있고 그 아래 ‘000 감독’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영화 제목이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준비 중인 작품이라 했다. 몇 년 동안 투자자를 찾고 있다고 했다. 4년 뒤, 익숙한 그 제목이 영화관 간판에 걸린 것을 보고 ‘아, 결국 찍었네.’ 하고 떠올렸다. 은연중에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했는데, 실제로 가능하구나'라고 느꼈다.
원장님에게는 아들과 딸이 1명씩 있었다. 단식원에 와서 아빠에게 인사한 뒤 근처 친구 집에 자주 놀러 가곤 했다. 그 집 아들과 딸이 다 동갑내기여서 남매가 동반 친구였다. 그래서인지 자주 왕래를 한 터라 그 아이들 이름까지 알게 되었다. 나중에 원장님에게 들은 사실은, 그 집이 지금은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철학자의 집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에도 유명했지만 나는 몰랐었다. 유명세가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원장님은 아이들 덕에 그 철학자에게서 책을 선물 받기도 했다. 얘기를 들으며 '이 동네는 참 특이하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그때 원장님은 이곳의 풍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안산 봉원동의 땅 형세가 여성이 연꽃 속에 앉아 있는 모습 같아서 기운이 고요하고 깊다고 했다. 그래서 예술가와 철학자들이 많이 모이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날은 작가들이 단식원으로 놀러 오기도 했다. 일과 요가에 대해 쓴 L작가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이전에 단식할 때 그분의 책을 인상 깊게 읽은 적이 있었기에 한 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어느 날 누군가 문밖에서 “B 원장—” 하고 부르길래 나가보니 바로 그분이었다. 단식원은 담도, 문도 없어서 사람들이 마당으로 바로 들어와 찾는 사람을 부르곤 했다.
B원장님도 책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었기에 두 분은 요가계와 책 얘기를 주로 나누았다.
요가 실용서도 중요하지만 교재로 쓸 수 있는 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나중에 원장님은 결국 요가책을 썼다. 실용서를 먼저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 뒤에 요가의 총론 책도 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말 그대로 ‘작가의 동네’라고 할 수 있었다. 후일 요가 관련 책들을 살펴보며, 원장님의 책이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 나도 요가책을 출간했다. 준베스트셀러 정도 되었으니, 요가계에서 스승과 제자가 동시에 책을 내고 DVD까지 낸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아마 내가 책을 쓰게 된 흐름에는 이런 환경에서 보고 들은 것이 은근히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주변 환경은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느끼게 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