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의 길
요가단식원에 근무하던 중 주말이면 가끔 짧은 나들이를 나가곤 했다.
마을버스를 타고 15분을 가면 신촌사거리였다.
연세대 정문에서 신촌사거리까지는 걸어서 10여 분 남짓. 대학 시절 이 거리를 자주 오갔다.
1학년 때는 연대 친구들과 축제에 왔다. 당시에도 연대 축제는 유명했다.
2학년부터는 주로 시위에 참여하러 왔다.
그 길을 이제는 명상 수련자의 발걸음으로 걸으니, 시끌벅적하던 거리도 한층 고요하게 보였다.
지하철로 내려가는 계단 앞, 모퉁이에 홍익문고가 있었다.
1957년부터 자리한 신촌의 상징 같은 대형 서점이었다.
유리로 된 전면과 넓은 간판, 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펼쳐지는 밝은 조명과 종이 냄새. 주말이면 책을 찾는 학생과 연인들로 북적였다. 의자에는 약속 시간을 기다리며 책을 훑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곧장 2층 한쪽에 있던 ‘명상·정신세계’ 코너로 향하곤 했다.
두꺼운 명상서적과 요가 책, 그리고 선(禪)과 심리학 책들이 나란히 있었다.
그날 손에 잡은 책은 ‘나는 누구인가’였다. 인도의 성자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을 담은 책이었다.
이 책은 단식을 하러 왔던 연세 지긋한 분이 권해 주었다.
선명상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책을 사고 큰길 건너 가게에 가서 과일과 야채를 사서 단식원으로 돌아왔다.
보식 중인 사람들의 식사를 챙겨준 뒤 첫 장을 펼쳤다.
역은이의 글, 이어서 추천사가 나왔다.
칼 구스타프 융의 글이었다.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이 현대인에게 주는 메시지의 의미를 언급하였다.
칼 융의 추천사
칼 융이 이런 추천사를 쓴 것은 그의 이력을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는 인간의 무의식 세계를 탐구하며, 꿈과 상징, 원형(原型)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서양 심리학자였지만, 그 시선은 동양의 지혜와도 맞닿아 있었다. 불교의 명상, 인도의 요가, 그리고 노장 사상 속에서 마음의 치유와 자아 초월의 길을 발견했다.
융은 의식과 무의식이 조화를 이루는 ‘개성화 과정’을 인간 삶의 중요한 목표로 보았다. 이는 요가의 자아통합과도 닮아 있었다.
추천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인간성이 점점 상실되는 현 시대에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은 본질을 일깨우는 중요한 메시지다.
의문의 일주일
이후 본문을 읽기 시작했다.
별생각 없이 책장을 넘기던 나는 두 페이지를 채 넘기지 못했다.
첫 페이지에는 ‘나는 누구입니까?’ 물음에 대한 답이 나왔다.
그리고 두 번째 페이지, ‘언제 진아(참나)를 깨달을 수 있습니까? 물음이 있었다.
그 답은 간단하고도 명료했다.
'현상계가 실재한다는 인식이 사라질 때 진아를 깨달을 수 있다.‘
나는 여기서 멈췄다.
충격이었다.
마치 망치로 세게 맞은 듯했다.
주옥같은 진리의 말을 기대했는데, 나의 상식을 뒤집는 대답이었다.
눈에 보이는 세계가 실재하지 않는다니,
그렇다면 무엇이 실재란 말인가?
며칠 동안 그 의문에 몰입했다.
방바닥을 두드려보고 머리를 손으로 '쿵쿵' 쳐보았다.
이렇게 선명한 감각이 실재가 아니라면, 그럼 무엇이 실재인가?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의문덩이리였던 시간에서 틈이 생겼다.
이렇게 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겠다고 느껴졌다.
그제야 다음 책장을 넘겼다.
왜 그렇게 인식해야 하는지, 어느 때에 현상계가 사라지는지에 대한 답이 이어졌다.
'참나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마음이 사라질 때 현상계가 사라진다'고 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첫 번째 생각이 ’나‘이고, 마음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먼저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 공부방법이 '나는 누구인가' 자신에게 묻는 것이었다.
다른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그 모든 생각을 ’나‘로 되돌리고 나에 대한 물음을 따라 근원을 향해 가는 명상이었다.
이 과정이 무르익어 삼매에 들면 근원의 지혜를 통찰하여 자신을 알게 된다고 했다.
이 공부는 불교의 선명상과 닿아 있었다.
특히, '이 뭐꼬' 화두와 비슷했다.
'이 뭐꼬' 화두란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통해,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대상과 생각의 근원을 직접 돌이켜 보는 수행법이다. 스승이 제자에게 던지는 짧은 한마디 질문이지만, 그 안에는 ‘생각 이전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를 통해 분별이 멈추고, 본래의 마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렇게 의문의 일주일을 넘기고, 한숨 내려놓고 차근차근 공부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시간이 지나며 다른 수련도 하였다.
지금은 그 의미를 나름대로 인식한다.
‘나는 누구인가’는 의문의 생각을 굴리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 묻는 그 순간 바로 자신의 본성에 들어가는 공부라고.
수행은 간절한 마음이 있더라도 그 시기에 바로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부가 무르익어야 하고 때가 무르익어야 한다.
공부 중인 수행자는 자신의 때를 알 수 없으니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