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상대적으로 흐르는구나

by 솔내

명상수련이 잘될 때는 ‘잘된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평온한 흐름이 이어졌다. 점차 깊이 들어가며, 몰입이 이어졌다. 그 무렵에는 한 번 앉으면 대개 두세 시간을 앉아 있었다. 버티며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히 앉아 있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루는 종로에 있는 선방에 갔다. 일이 일찍 끝나는 날이나 주말을 이용해 일주일에 두어 번 들렀다. 오후 2시에 앉아 눈을 감았다가 떴다. 벽에 걸린 사각 시계를 보니 어느새 5시였다. 반가부좌로 앉은 다리의 위아래를 바꾸고 다시 눈을 감았다. 고요함이 이어져 시간 감각이 사라졌다. 다시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오후 7시였다. 같은 자리에서 다리 한 번 바꾸고 다섯 시간을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다리를 펴고 몸을 풀었다. ‘공부가 이제 조금 깊어졌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후 연속해서 긴 수련을 한 것은 지리산 산사의 한 암자에서였다. 일주일간 머물며 수련했다. 암자라고 해서 협소할 줄 알았는데 수련 공간은 널찍했다. 여름이라 창문을 열어두면 산 아래 풍광이 훤히 보였고, 새벽 운무가 낄 때면 신비롭기까지 했다. 스무 명 남짓한 이들이 일념정진을 했다. 잠은 자정부터 새벽 두 시까지 두 시간 자고,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종일 앉았다. 하루 15시간 이상 수련했다.

그때 ‘시간이 물처럼 흘러가는구나’ 하는 마음이 일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인위적인 노력없이 절로 이어지며 흐른다. 아마 그런 느낌이 반영된 표현일 것이다. 하루가 갈망과 아쉬움이 없이 고요 속에 흘러갔다. 15시간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며칠을 앉아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시간이 정지된 듯했지만, 멈춤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다만 ‘흘러간다’는 감각이 무뎌졌다.


그 후 알게 되었다. 생각이 많을수록 시간이 길고 지루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그래서 무언가를 하려 한다. 폰을 들여다보거나, 주변에서 재미거리를 찾는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콘텐츠가 좋으면 의미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만 수행을 하면 조용히 있는데 익숙해진다. 혼자 있으면 혼자로서 온전히 있고, 함께 있을 때는 함께 잘 있는다. 혼자 있는 외로움을 고요함으로 바꾼다.


시간의 상대성은 아인슈타인의 이론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집중과 몰입이 깊을수록 시간은 짧게 느껴지고, 불안과 산만함이 커질수록 시간은 길게 느껴진다. 시간은 물리적으로 동일하게 흐르지만, 우리의 의식 상태에 따라 그 흐름이 늘어나거나 줄어든다.

어쩌면 개인이 체험하는 시간의 상대성이 삶에서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시간을 소중히 쓰는 것도 필요하지만, 시간에 마음이 얽매이지 않고 조금 여여해지는 것도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이 아닐까.

월, 목 연재
이전 13화12시간 명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