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氣)수련이 안정되면서 일상의 안정감도 함께 높아졌다.
일을 하다 잠시 가게 밖의 의자에 앉아 거리를 바라보았다.
이전과 달리 눈앞의 풍경이 고요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게 다니고 배달 오토바이와 차량도 쉬지 않고 지나가는데 그 모든 풍경이 여유롭게 보였다.
거리가 변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변한 것 같았다. 일상 속에서 새롭게 발견한 고요함과 여유였다.
수련이 한 단계 오르면 단전의 안정감이 더 깊어진다고 했다. 대맥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단전의 기운이 달라진 것인지 궁금했다.
일을 마치고 도장에 갔다. 오늘은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갔다.
대맥 수련의 행공과 본수련을 지원장님께 배우기로 했다. 마침 배도반도 대맥 단계에 올라 두 사람이 함께 자리했다.
배도반은 나보다 3개월 늦게 입회했지만 어느새 같은 단계에 도달했다.
늦게 들어온 사람이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니, 조금 있으면 추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진도에 대한 조급함을 내려놓았다 싶었는데 또 다른 상황에서 다시 마음공부를 하고 있었다.
도장에 오기 전 대맥에 대해 미리 예습을 했다.
예전에 한방(韓方)을 공부할 때 보던 경혈학 책을 꺼내 보았다.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대맥은 12정경과 8기경 가운데 유일하게 가로로 순행하는 띠 모양의 경맥이다. 허리 주변을 한 바퀴 감싸며 몸통을 지나는 모든 경맥을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대맥에 문제가 생기면 배가 더부룩하고 기운이 가라앉으며, 여성의 경우 하복통이나 월경 불순이 나타난다.’
지원장님께 들은 대맥의 설명은 미리 찾아보았던 지식과 비슷했지만, 기운의 흐름과 체감에 대한 내용은 훨씬 깊고 풍부했다.
대맥은 상체와 하체의 기운을 조화롭게 이어주고, 단전의 기운을 더욱 안정시켜 준다고 했다.
또한 아랫배를 따뜻하게 해 주기 때문에 여성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경락이라고 했다.
이어 다음 단계인 소주천에 대한 설명도 간략히 해주었다. 소주천은 인체를 세로로 감싸고 있기에 좌우뿐 아니라 상·중·하를 모두 조화롭게 한다고 했다. 머리의 상단전에서 가슴의 중단전, 그리고 아랫배의 하단전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주는 수련이었다.
대맥과 소주천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인체 기운의 가로축과 세로축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단전을 중심으로 가로 세로로 원형의 경락이 도는 것은 마치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이 도는 모습과 비슷하게 보였다.
대맥 행공 12동작은 이전 행공에 비해 수월했다.
근력이 필요한 동작보다는 유연성이 요구되는 자세가 더 많았다.
기지개를 켜는 자세, 다리를 넓게 벌리고 몸을 수평으로 만드는 자세가 있었다.
신체가 유연하면 자세의 형태를 만드는 데 유리하다.
관절이 경직되어 있으면 특정 자세를 만들 때 불필요한 힘을 쓰게 된다. 그런 점에서 행공 전에 하는 체조는 전신을 부드럽게 풀어 유연성을 높이는 준비운동이었다. 행공 중에는 하지 근력을 요하는 동작도 있어 몸을 충분히 데워야 했다. 체조의 마지막 순서인 ‘뛰면서 발바닥 치기’는 근육을 데워주는 효과가 있어 수련 준비에 적합했다.
대맥 행공을 마친 뒤, 심법(心法)을 걸고 자리에 앉았다.
“하주대맥을 운기한다.”
대맥은 하단전·중단전·상단전 각각에 하나씩, 총 세 개가 있다. 그중에 하단전에 있는 하주대맥을 운기했다. 의식은 계속 단전 쪽에 머물렀다. 단전에 70%, 대맥에 30%의 비중으로 의식을 나누어야 한다고 했는데, 아직은 단전에만 집중되었다. 의식 분배에 익숙해지려면 꽤 시간이 걸릴 듯했다.
아마 대맥 수련을 마무리할 즈음이면 의식을 조절하는 능력이 크게 향상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의 일도 겉보기에는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의식을 나누어 복합적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운전할 때는 정면의 길에 집중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의식 작용이 동시에 일어난다.
속도에 맞춰 엑셀과 브레이크를 조절해야 하고 기어 변속도 해야 한다.
또한 도로 흐름에 따라 핸들을 세밀하게 조작해야 한다.
이 모든 의식 작용과 몸의 움직임이 한 흐름으로 통합되어야 비로소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
하지만 운전자 본인은 ‘길에 집중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 이유는 나머지 행동들이 숙련을 통해 거의 자동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전에 능숙해지면 운전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가능해진다.
호흡 수련도 이와 유사한 면이 있다고 느껴졌다.
대맥에 집중하더라도 기본적인 의식의 중심은 계속 단전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아랫배의 단전을 중심으로 복부를 부드럽게 불리고 수축하는 근육의 움직임도 이루어져야 했다. 자세 또한 허리를 곧게 펴서 호흡의 흐름이 아랫배까지 원활하게 전달되도록 해야 했다. 이 모든 요소가 하나로 통합될 때 비로소 대맥 수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짐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앞 단계에서 했던 와식과 좌식 수련은 기운만 모으는 과정이 아니었다. 운전할 때 목적지로 안전하게 가기 위해 다른 행동들이 자동화되듯이, 대맥 운기에 집중하려면 단전 집중, 아랫배 호흡, 바른 자세 유지가 이미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질 만큼 숙련되어야 했다. 그동안의 수련은 그 기초를 닦는 과정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