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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Jan 10. 2022

나를 상처 입히는 사람

-공감 능력은 부족해도 큰 상처는 주지 않는다 (사고형 인간에 대한 변)

나는 보통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포인트에서도 잘 울지 않고, 타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보다는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가를 이해하고 납득하려고 하는 MBTI 성격유형으로는 ENTP, 에니어그램은 7번에 8번 날개를 강하게 쓰는 전형적인 사고형 인간이다. 

사람은 다 다르고,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기에  사람들을 이해하고 잘 지내보고자, 성격유형 검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쭉 공부(계속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사람에 대해서 고민하고 탐구하는 정도)하고 있다.

작년 내가 응원하는 배구팀 선수가 개인적인 물의를 빚어 1,2라운드는 경기를 뛰지 않고 법적인 문제가 해결된 후 3라운드부터 경기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쭉 지켜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사람이 어떤 물의를 빚었는지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사람들이 화가 나고, 감정이 상하는 포인트를 나는 완전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그렇게 오랫동안 상한 감정을 움켜쥐고 있는 것도 사고형인 나로서는 아리송한 부분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물론, 아끼고 오랫동안 응원했던 선수가 사생활은 엉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참 기분 나쁜 일이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실상은 그런 면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실망이란 사실 내게 상처가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상처 입은 나는 그를 비난한다. 그가 나에게 직접적인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널 좋아했고 응원했던 나를 부끄럽게 하고 실망시켰기 때문에 나는 그를 비난한다. 

'눈치가 없다, 그 얼굴 좀 안 보게 해 달라, 팬들 마음은 신경도 안 쓰냐, 경기는 이겼지만 그 인간 세리머니 하는 꼴 보기 싫다. 져도 좋으니 빼라. 그건 기억이 안 난다면서 어떻게 배구는 안 까먹었냐, 등등'


이 선수가 워낙 출중한 실력을 갖춘 선수라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반응들이 줄어들긴 하지만 인신공격도 마다하지 않고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가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좋은 모습을 보이고, 축하받을 만한 기록을 세워도 인스타 계정에 구단이 올린 축하 메시지도 견디지 못하고 화를 낸다. 내가 응원하는 팀은 인기구단이라 경기장 직관이 쉽지 않다. 티켓 예매가 오픈되면 곧 매진이 되고, 그 선수가 경기에 나오는 것을 알면서도 경기장은 여전히 만석이다. 그가 점수를 올리면 그곳에 있는 팬들은 박수를 친다. (전부는 아니어도) 그런데도 그를 욕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옳다는 입장이다. 꼴 보기 싫으니 치우라는 것이다.  그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그럼에도 그 선수를 받아들이기로 한 다른 팬들의 마음은 절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그 감정과 반하는 반응을 하는 사람들을 싸잡아서 비난한다.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깔아뭉갠다. 


나는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을 스스로 알고, 또 그런 얘기도 여러 번 들으며 살았다. 상대방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려고 하는 것이 내게는 정말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너는 나와 다른 사람이니까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려고 나 역시 노력한다. 어렵지만 애쓴다. 그래서 벌써부터 그런 비난하는 댓글에 나도 반박하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화가 나고, 이 선수가 보기 싫은 마음도 이해가 되어서 지금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이런 반응에 내가 상처를 입는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만 너무 중요하다. 큰일이 아닐 때는 타인의 감정을 잘 배려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에 맞춰주려고 하는 착한 사람들이지만 자신의 감정이 크게 상하면 물불 가리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감정만 소중하다. 


나는 보통 감정형의 사람들에게서 많은 배려를 받고, 그들에게서 따뜻함을 느끼지만 솔직히 나를 상처 입히는 사람들도 감정형의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어지간해선 상처를 받지 않는데, 내가 '상처를 받았다'라고까지 느낄 때는 감정형의 사람들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보다 더 오버해서 공감하는 것도 난 원하지 않고, (나보다 더 슬퍼하거나 화내는 것도 나는 뭔가 어색하고 불편하다) 타인이 내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것(누구 때문에 내가 계속 부정적인 감정에 머무르는 것도 자존심 상한다)도 용인하기 싫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에 함몰되어 타인의 감정을 무시하는 것이 제일 싫다. 내가 관찰하며 얻은 결론인데 이들은 자신의 감정에 빠지면 자신들이 느끼는 그 감정이 아주 당연하고 옳다고 여긴다. 감정이 곧 진리가 된다. 


이 글을 감정형의 누군가가 읽고서 감정형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너무 슬픈 일이다. 나는 감정형인 당신으로 인해 사랑과 따뜻함을 느끼지만, 때때로 지나치게 자신의 감정에 함몰되어 타인을 상처 입힐 수도 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지, (감정형인 그대가 항상 타인의 감정에 잘 공감하고 그들을 배려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감정형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이런 명제는 참일 수가 없다) 그리고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해 상처를 주는 것으로 오해받고 있는 모든 사고형을 대신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작은 일에도 감정을 느끼는 그대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당신이 느끼는 감정이 내가 느끼는 감정과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비난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당신이 느끼는 감정이 그럴만하다고 생각이 되고, 납득이 된다면 그 누구보다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사고형 인간이다.


느껴지는 감정을 막을 수는 없지만, 당신과 다른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존중해주세요. 모든 사람이 당신이 화가 나는 포인트에 화가 나는 것은 아니고, 당신만큼 오랫동안 그 감정에 머물러 있지도 않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전적인 공감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주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는 것 역시 당신에게 진짜로 도움이 되고 싶어서라는 것을, 당신을 아끼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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